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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반도 크기’ 카슈미르는 어떻게 ‘피의 땅’이 됐나
인도-파키스탄 무력 충돌
영국서 분리독립후 70여년간 3차례 전면전
인구 70%는 무슬림…지배층은 힌두교
핵보유국간 군사대결…전면전될까 우려 고조

인도 공군 관계자들이 27일 인도령 카슈미르 지역에서 파키스탄군에 격추당한 인도 공군기 잔해를 살펴보고 있다.[AP]

[헤럴드경제=한희라 기자]핵보유국이자 오랜 앙숙인 인도와 파키스탄이 분쟁지역인 카슈미르에서 공습을 주고 받으면서 양국 갈등이 1971년 3차 전쟁 이후 최악으로 치닫고 있다.

파키스탄 공군기는 지난 27일 카슈미르 분쟁지역에서 인도 공군기를 격추하고 지상에 폭탄을 투하했다. 인도 공군이 지난 26일 48년 만에 휴전선격인 정전 통제선(LoC)을 넘어 파키스탄을 공습하자 바로 다음날 보복 공격을 가한 것이다. 앞서 인도는 지난 14일 잠무 카슈미르주에서 발생한 자살폭탄 테러로 경찰 40여명이 사망하자 파키스탄을 배후로 지목하고 보복을 선언했다.

‘서남아시아의 화약고’로 불리는 카슈미르에서 해묵은 분쟁이 다시 폭발하면서 70년 이상 끈질기게 이어온 양국간 갈등의 역사에 새삼 관심이 쏠리고 있다.

인도와 파키스탄은 1947년 영국에서 각각 독립한 뒤 지난 70여년 동안 3차례의 전면전과 수차례의 무력 충돌을 겪어왔다. 양국 분쟁의 핵심은 카슈미르였다.

카슈미르는 세계에서 가장 높은 히말라야 산맥의 서쪽 끝부분에 자리 잡고 있다. 인도 북부와 파키스탄 북동부, 중국 서북부와 접하고 있다. 넓이는 22만㎢로 한반도와 비슷하다. 인구의 대부분이 무슬림(70% 이상)이고 힌두교 신자는 소수다.

분쟁의 씨앗은 1947년 영국의 식민지배에서 벗어난 인도대륙이 인도와 파키스탄으로 분리 독립할 때 뿌려졌다. 당시 카슈미르는 두 나라 가운데 하나를 선택해야 했다. 무슬림 주민은 파키스탄에 편입되기를 희망했지만 힌두교를 믿는 지도자 마흐라자 하리 싱이 카슈미르를 인도에 귀속해버렸다.

이에 반발한 무슬림 주민들이 같은 해 10월 폭동을 일으켰고, 파키스탄이 지원 병력을 파견하자 하리 싱의 지원 요청으로 인도가 무력 개입하면서 제1차 전쟁이 발발했다. 유엔의 중재로 휴전이 된 후 카슈미르는 파키스탄령(아자드-카슈미르)과 인도령(잠무-카슈미르)으로 분단됐다.

이후 인도는 주민투표를 통해 잠무-카슈미르의 미래를 결정하겠다고 약속했지만 이를 미루다가 잠무-카슈미르를 연방의 하나로 편입해버렸다. 현지 주민과 파키스탄은 강력하게 반발했고 파키스탄은 1965년 수천 명의 게릴라를 앞세워 2차 전쟁을 일으켰다.

3차 전쟁은 인도가 1971년 동파키스탄 독립 문제에 개입했다가 발발했다. 인도는 이 전쟁에서 일방적으로 승리했고 동파키스탄은 방글라데시로 독립했다.

하지만 카슈미르 문제는 여전히 해결되지 않은채 1947년의 휴전선을 LoC으로 교체하는 등 현상만 유지하는 데 그쳤다.

갈등은 핵 경쟁으로도 이어졌다. 인도는 1974년 핵실험을 단행하며 핵보유국이 됐고, 파키스탄은 1998년 핵실험을 하면서 인도와 더불어 ‘비공인 핵클럽’의 일원이 되었다.

1999년 파키스탄 무장 세력이 다시 인도령 카길 지역을 침공하면서 양국은 다시 총을 겨눴지만 인도 공군기가 LoC를 넘어가지 않는 선에서 마무리됐다.

하지만 인도 공군이 지난 26일 1971년 이후 처음으로 LoC를 넘어가 공습에 나서면서 48년만에 처음으로 전면전으로 확대될 수 있다는 위기감이 고조되고 있다.

hanira@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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