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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용운의 북향집 ‘심우장’ 사적 지정

  • 기사입력 2019-02-12 1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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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ㆍ1운동 100주년 항일독립유산 문화재 등록
이봉창 의사 관련유물도 등록 예고

만해 한용운 심우장 [사진제공=문화재청]

[헤럴드경제=이한빛 기자] 3ㆍ1운동 100주년을 맞아 항일 독립 문화유산 2건이 각각 사적과 문화재로 등록된다.

문화재청(청장 정재숙)은 ‘만해 한용운 심우장’과 ‘이봉창 의사 선서문 및 유물’을 사적과 문화재 등록을 예고 했다.

서울 성북구에 위치한 만해 한용운 심우장은 승려이자 독립운동가인 만해 한용운(1879~1944)이 1933년 건립해 세상을 떠날때 까지 거주하던 곳이다. ‘심우(尋牛)’란 불교 설화에서 따온 것으로, 선종(禪宗)의 깨우침을 찾아 수행하는 과정을 잃어버린 소를 찾는 일에 비유한 것에서 유래한다. 집의 오른편에 걸린 현판은 독립운동을 함께 했던 서예가 오세창(1864~1953)의 글씨다.

문화재청은 “독립운동 활동과 애국지사들과 교류 흔적이 남아있어 문화재적 가치가 높다”고 했다.

심우장은 북동향의 집이다. 남향을 선호하는 일반적 한옥과는 다르다. 이에 대해 남향을 바라보면 조선총독부를 보게 돼 반대로 지었다는 일화가 전해진다. 

이봉창 의사 선서문 [사진제공=문화재청]

또한 이봉창 의사(1900~1932)와 관련된 유물도 문화재로 등록예정이다. ‘이봉창 의사 선서문’, 백범 김구에게 보낸 ‘이봉창 의사 친필 편지와 봉투’, ‘이봉창 의사 의거자금 송금증서’ 등 3건으로, 모두 독립운동과 연관이 있다. 선서문은 이봉창 의사가 일왕 처단의 결의를 기록한 국한문 혼용의 글로, 이봉창 의사의 대표적 항일투쟁 유물이다. 이 선서문은 1931년 12월 13일에 김구 선생이 이봉창 의사를 안중근 의사의 아우인 안공근의 집으로 데려가서 선서식을 거행하고 작성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봉창 의사 친필 편지와 봉투’는 1931년 12월 24일에 이봉창 의사가 김구선생에게 의거자금을 요청한 편지다. 의거 실행을 ‘물품이 팔린다’로 표현, 검열을 피하기 위해 대체 용어를 사용 했음을 알 수 있다.

‘의거자금 송금증서’는 같은해 12월 28일 김구선생이 중국 상하이에서 일본 도쿄에 있는 이봉창 의사에게 의거 자금 100엔을 보낸 송금증서다. 문화재청은 “이는 이봉창 의사가 1932년 1월 8일 도쿄에서 일본 국왕을 향해 폭탄을 던진 의거의 전개과정과 항일독립 의지를 드러내고 있으며, 이봉창 의사의 유물이 거의 남아 있지 않다는 점에서도 문화재적 가치가 높다”고 밝혔다.

이봉창 의사의 의거는 같은 해 4월 29일 윤봉길 의사의 상해 의거에 기폭제로 작용,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비롯한 항일독립운동 전선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었던 역사적인 사건으로 꼽힌다.

이번 ‘만해 한용운 심우장’과 ‘이봉창 의사 선서문 및 유물’은 30일간의 예고 기간 중 의견을 수렴하고, 문화재위원회의 심의를 거쳐 최종 지정·등록될 예정이다.

/vicky@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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