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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세계의 기업가 ① 마윈 알리바바 회장] ‘열려라 참깨’ 같은 마법…‘전자상거래 神’ 이 되다
대학입시 낙방·취업실패·배달부 전전
인터넷 접한후 새 사업 아이디어 얻어

지인 설득 8300만원으로 알리바바 창업
글로벌 전자상거래 공룡으로 키워

물류·금융·AI분야까지 사업영역 확장
끝없는 도전정신…사회운동가 변신도


23일 스위스 다보스에서 열린 세계경제포럼(WEF)에서 발언하고 있는 마윈 알리바바 회장. [제공=AP]

1999년 2월 중국 저장성 항저우의 20평이 채 안되는 아파트. 작은 체구의 한 남자가 지인들을 모아놓고 “인터넷이 세상을 바꿀 것”이라며 열변을 토했다. 그의 달변 덕분일까. 자리에 모인 17명은 선뜻 통장을 꺼내 놓았다. 모인 돈은 50만위안, 지금 환율로 8300만원정도였다. 세상을 움직이는 중국의 거대 인터넷 기업 알리바바가 탄생한 순간이다.

보잘것 없었던 이 남자는 중국 최고의 부자 마윈(馬雲ㆍ55) 알리바바 창업자다. 세계인들은 그를 ‘작은 거인’이라고 부른다. ‘창업의 신’이라고도 부른다.

마윈은 누구보다 심한 흙수저였고 실패자였다. 하지만 이제 그의 발언은 중국 뿐 아니라 세계를 움직일 정도의 영향력을 갖는다. “당신이 성공했을 때, 당신의 말이 곧 진리가 된다”고 했던 그의 어록처럼 말이다.

불확실성의 시대, 기업들은 어렵다고 아우성이다. 취업과 희망까지 포기하는 젊은이들이 늘고 있다. ‘기업가’로서 파괴적 혁신, ‘인간’으로서 포기를 모르는 도전, 마윈의 정신이 그 어느때보다 절실하다.

▶ ‘루저’ 마윈, 알리바바의 문을 열기 전까지 모든 도전은 완전한 실패였다=알리바바 창업자 마윈은 30대 중반이까지도 일명 ‘루저(Loser)’였다. 첫 도전인 대학입시에서 낙방했다. 수학 점수 1점. 아르바이트라도 구할 요량으로 수십 곳에 이력서를 냈지만 불러주는 곳은 단 한 곳도 없었다. 사촌동생과 함께 지원한 호텔 근무직도 마윈만 퇴짜를 맞았다. 심지어 KFC 아르바이트 면접자 23명 가운데 단 한명의 불합격자가 바로 그였다.

잡지사 배달부 등 잡다한 일을 전전하며 그가 얻은 것은 인생은 길며 단 몇 발자국이 큰 차이를 만든다는 깨달음 이었다. 다시 입시를 치렀고 삼수 끝에 항저우사범대 외국어과에 들어갔다. 그것도 정원미달 덕분이었다.

졸업 후 마윈은 항저우 전자공업학원에서 영어강사로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그러다 1995년 미국 시애틀 출장길에 들렀던 친구 집에서 인터넷을 처음 접했다.

컴퓨터 앞에 앉은 그는 잔뜩 긴장했고, 보다 못한 친구가 “괜찮아. 컴퓨터가 망가지진 않아” 라며 격려까지 해줄 정도였다. 마윈은 검색창에 ‘차이나(CHINA)’라는 단어를 입력했지만 아무 내용도 검색되지 않았다. 인터넷이야말로 중국과 세계를 연결하는 거대한 비즈니스가 될 것이라고 직감한 순간이었다. 귀국 후 그는 중국 최초의 상업용 웹사이트 ‘옐로우 차이나’를 만들었다. 이 역시 실패로 끝났다. 하지만 이에 굴하지 않고 4년 후 항저우 전자공업학원시절 학생과 교사를 모아 창업했다.

‘알리바바와 40인의 도적’ 이야기에 나온 이름을 사명으로 정했다. 세계인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고, 어느 나라나 똑같은 발음을 하는 알리바바다. 스토리의 힘과 멀리 내다보는 그의 혜안이 놀라울 따름이다.

▶ ‘미치광이 잭’, 위기와 불확실성이야말로 혁신의 조건이다=알리바바는 전자상거래 업체로 출발했지만, 물류, 금융 뿐 아니라 클라우딩서비스, 인공지능(AI), 자율주행차, 카쉐어링, 스마트호텔 등 4차 산업혁명의 거의 모든 분야로 영역을 넓혀 가고 있다.

마윈은 특정한 영역에 머물지 않고 기술과 사회환경 변화에 적응해 끊임없이 새로운 사업영역을 개척해 나가야한다고 주장한다.

돌이켜보면 알리바바를 창업할 당시 상황도 지금과 크게 다르지 않다. 어느 시기건 위기와 기회가 공존한 셈이다.

1999년 당시 미국에서는 이미 닷컴 거품이 일며 IT 시장의 불확실성이 컸다. 중국에서는 인터넷 비스니스라는 개념조차 생소했다. 게다가 온라인 거래를 할 수 있는 신용시스템이 갖춰지지 않았다. 하지만 마윈은 소프트방크 손정의 회장을 찾아가 투자를 받아냈고, 알리바바에 이어 소비자간 거래 플랫폼인 타오바오(淘寶), 기업과 소비자간 플랫폼인 톈마오(T몰) 등으로 차근차근 사업을 확장해 나갔다.

판매자(또는 소비자)에 대한 불신은 실시간 상담을 통해 해소했고, 결제는 온라인 결제서비스인 알리페이를 만들어 극복했다. 알리페이는 이제 중국에서 없어서는 안될 주된 결제시스템으로 자리 잡았다.

그의 도전은 온라인 비즈니스의 원조 이베이의 중국 사업을 무너뜨렸다. 알리바바가 타오바오를 시작할 당시 글로벌기업 이베이는 중국 온라인 시장의 90%를 장악하고 있었다. 하지만 마윈은 기존의 상식을 깨고 수수수료를 없애는 파격적인 서비스를 시작했다. 이베이는 온라인 쇼핑몰의 비즈니스 모델은 무료가 불가능하다며 비웃었다. 언론은 “미치광이 잭(마윈 영어이름)”이라고 부르기까지 했다. 결과는 이베이의 패배였다. 중국 진출 3년 만에 철수했다.

쇼핑과 전혀 무관했던 ‘싱글데이(11월11일)’를 만들어 지난해 기준 하루 매출 약 34조원을 달성했다. 역시 원조 ‘블랙프라이데이’를 역전하며 중국판 창조경제라는 평가를 받았다

이 모든 것들은 “조건과 환경이 유리해지기를 기다리는 게 아니라 스스로 창조해가는 것”이라고 말하는 마윈식 기업가 정신의 증거다.

최근 항저우에 문을 연 알리바바의 인공지능ㆍ로봇 호텔인 ‘플라이주’, 무인 로봇 물류센터, 스마트 임대주택 등 4차 산업 혁명에서도 그의 혁신은 쉼 없이 계속되고 있다.

그래픽=조경란/mongsiri@heraldcorp.com

▶ ‘사회운동가’ 마윈, 또다른 혁신과 도전 위한 ‘아름다운 ‘퇴장’
=마윈은 지난해 9월 10일 또 한번 세상을 깜짝 놀라게 했다.

한창 나이에 은퇴 발표였다. 자신의 54세 생일인 이날 그는 고객과 주주들에게 보낸 편지를 통해 2019년 9월 회장직을 사퇴한다는 계획을 공식화했다. “젊은 경영진 육성과 교육 자선사업 매진을 위해 경영 일선에서 물러나겠다”고 밝혔다. 마윈은 이미 2013년 최고경영자(CEO) 자리를 장융(張勇)에게 물려주며 자신은 이사회장직만 유지해왔다.

당시 CEO 퇴임 연설에서 “창업주가 회사를 떠나지 못하면 그 회사는 건강할 수 없다”고 주장해 역시 기인(奇人)답다는 평을 받았다. 가족에게 승계가 이뤄지는 아시아 기업으로서는 보기 드문 사례다. 그의 퇴임 선언은 1인 경영리스크를 줄이는 후계구도, 가족보다 전문 경영인을 앞세우는 선진 시스템 등을 다시 부각시키기에 충분했다.

마윈은 대신 자선사업과 교육사업에 매진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마이크로소프트(MS) 창업자 빌 게이츠를 연상케 하는 행보다. 빌 게이츠 역시 경영에서 완전히 손을 떼기 전 ‘빌&멜린다게이츠재단’을 통해 자선사업에 투자했다.

마 회장은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나는 빌 게이츠에게서 배울 게 많다. 일찍 은퇴하는 게 낫다”며 “곧 교사로 돌아갈 것이고 알리바바 경영자로서보다 더 나은 일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의 자선사업은 2014년 마윈재단을 통해 농촌 지역을 중심으로 추진돼왔다. 알리바바 빈곤퇴치 작업 보고서(2018)에 따르면 400명 이상의 교사가 마윈재단을 통해 지원을 받아 농촌의 교육 현장에 투입됐고, 9개 전자상거래 교육센터가 농촌 지역에 들어서 연인원 26만명의 청년이 직업 훈련을 받았다. 알리바바그룹의 금융 계열사인 앤트파이낸셜이 은행과 손잡고 빈곤지역 주민 약 200만명에 총 1000억위안(약 16조6000억원) 이상의 대출을 제공하기도 했다. 학교가 먼 농촌 어린이들에게 평등한 교육을 제공하자는 취지에서 그가 제안한 ‘농촌기숙학교’ 설립도 속도를 내고 있다.

▶ ‘사상가’ 마윈, 혁신은 아이디어가 아니라 철학이다=알리바바는 2014년 9월 ‘열려라 참깨’ 같은 마술을 또 한번 부렸다. 자본주의 심장부인 미국 뉴욕증권거래소에서 기업공개(IPO)에 나선 것이다. 당시 최대 규모였다.

알리바바의 시가총액은 24일 현재 3941억달러(약 444조7024억원)에 달한다. 마윈의 재산은 지난해 12월 포브스 기준 354억달러(약 39조9327억원)다.

지금까지 마윈의 이름 두 자를 건 책이 중국에서만 수십권에 달하고 한국에서도 10권 넘게 출간됐다.

전 세계가 그에게 주목하는 것은 그가 단순히 성공한 사업가이고 부자이기 때문이 아니다. 그의 말 속에는 시대의 변화가 담겨 있고, 급변하는 시대에 대처하는 철학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본인의 경험에서 우러나온 명확한 메시지와 해학이 담긴 말들은 수많은 어록을 양산하기도 했다.

미국의 외교안보 전문잡지 포린폴리시는 ‘세계의 사상가’ 선정 10주년을 맞아 올해는 지난 10년간 세계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10인을 선정했다. 마윈 회장은 중국인으로는 유일하게 ‘10년 10인’에 선정됐으며, 앙겔라 마르켈 독일 총리,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에 이어 세번째 리스트에 이름을 올렸다.

한희라 기자/hanira@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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