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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건 X파일 - 독거노인 덮친 보이스피싱범] 겁 없이 경찰관 아내에게… 속는 척 지하철역 유인 검거 “피해자 고통 실감하는 계기”
박종화 당시 서울 종로경찰서 소속 수사관이 지난해 1월 서울 종로구 경복궁역에서 보이스피싱 인출책을 검거하는 모습. [제공=서울 종로경찰서]

보이스피싱범도 실수 아닌 실수를 한다. 한 보이스피싱범이 전담 수사관 아내에게 전화를 걸어 곧바로 체포되는 일이 있었다.

80대 독거노인 보이스피싱 사건을 담당했던 박종화 당시 서울 종로경찰서 지능팀 수사관은 사건을 마무리 지은지 몇달 안돼 아내로부터 ‘보이스피싱범에게 전화가 왔다’는 연락을 받았다. 보이스피싱범으로 3억5000만원 전재산을 날린 할머니의 사건 후유증이 채 가시기 전이었다. 그는 아내에게 “보이스피싱범에에게 속아주는 척하라”고 지시했다. 역으로 덫을 만들어 보이스피싱범을 검거할 계획이었다.

박 수사관의 아내도 반은 경찰이었다. 아내는 보이스피싱범과 지속적으로 연락을 하며 속는 연기를 펼쳤다. 그들의 지시대로 아내는 은행에 들어가 4000만원을 뽑는 척을 하면서 A4용지로 만든 가짜 종이돈 뭉치를 들고 나왔다. 그러고선 남편을 포함한 수사관들이 미리 잠복하고 있던 서울 여의도의 한 초등학교로 보이스피싱범을 유인했다. 20대 중국인 인출책은 현장에서 곧바로 체포됐다.

아내와의 공조로 인출책을 잘 검거한 사건이지만, 박 경위는 당시를 떠올리면 마음이 무거워진다고 털어놨다.

아내가 돈을 찾고 인출책을 기다리는 과정 등을 지켜보는 내내 피해자들이 얼마나 고통스러운지 온몸으로 느꼈기 때문이다. 그는 “그동안의 제3자 입장이었기 때문에 이토록 피해자들의 고통을 온전히 느낄 순 없었다”면서 “가상이었지만 보이스피싱범과 연락을 하고 은행에 가고 돈을 들고 기다리는 모든 과정이 매우 힘들다는 것을 경험했다. 이 사건 이후 수사를 할 때도 피해자 심정을 더욱 헤아리게 됐다”고 전했다.

80대 독거노인 보이스피싱 사건은 그래서 더욱 아픈 사건으로 자리잡았다. 비록 인출책 등 3명을 구속시켰지만 단돈 몇 만원이라도 할머니 손에 쥐어주지 못한 게 평생 죄책감으로 남을 것 같다고 그는 말했다. 그는 사건이 종료된 이후에도 할머니에게 전화를 걸어 안부를 묻곤 한다. 그는 “지금도 정보접근권이 떨어지는 혼자 사는 노인들을 겨냥한 보이스피싱은 해마다 계속해서 발생하고 있다”면서 “1차적으로는 이들에게 보이스피싱 범죄에 대해 알리는 교육이 필요하고, 은행에서도 노인들이 한꺼번에 많은 돈을 인출할 때는 보이스피싱 가능성을 열어두고 경찰에 신고하는 등 협조를 해줬으면 좋겠다”고 당부했다.

정세희 기자/say@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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