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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프리즘] ‘진짜’ 가짜뉴스 맞나요?
‘가짜뉴스’ 세상이다. 뉴스가 스스로 ‘가짜뉴스’라는 단어를 아무렇지 않게 쓸 정도다. 정치권에서도 하루가 멀다 하고 가짜뉴스로 상대방의 주장을 규정하고 비판하는 논평이 쏟아져 나온다.

이쯤되면 ‘가짜뉴스’가 뭔지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뉴스란 우리말로 하면 ‘새 소식’이다. 있었던 일 또는 예정된 일을 전하는 스트레이트부터, 어떤 사건이나 사실 관계의 의미를 해석하고 또 비판하는 해설형 뉴스, 특정 정파나 개인의 주장이나 생각을 전달하는 컬럼과 논설까지, 언론학에서 규정하는 뉴스의 범위는 좀 더 넓다.

요즘에는 매체의 숫자도 많아지고 유통 방법도 다양해지면서 뉴스의 범위도 과거보다 더욱 넓어지는 추세다. 허가받은 신문과 방송에서 제작한 것을 넘어, 특정 정당이나 기업, 단체에서 만든 보도자료와 논평, 심지어 SNS나 인터넷 사이트 상의 정보까지 뉴스로 취급되곤 한다.

가짜뉴스 논란도 이런 과정에서 나왔다. 과거와 같이 정부로부터 허가를 받거나, 사회적으로 공인된 언론사에서만 뉴스를 생산하던 시절에는 좀처럼 볼 수 없었던 일이다.

문제는 요즘 ‘가짜뉴스’ 논란이 특정 정치 권력에 의해 확대 재생산되고 있다는 점이다. ‘가짜뉴스’라는 자극적인 단어를 덧입혀 언론을 자신의 입맛에 맞게 재단하려는 시도라는 의심을 지울 수 없는 대목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이 이슈가 있을 때마다 ‘가짜뉴스’를 언급하는 게 대표적인 예다.

‘가짜’와 ‘진짜’를 구분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과거와 현재의 수많은 철학자들과 종교인들이 찾고자 했던 절대 진리, 즉 영원불멸한 ‘진짜’는 아직까지도 없는 듯 하다. 어제까지 ‘진짜’라고 모두가 믿었던 일들이 오늘날 ‘가짜’가 되거나, 또는 반대로 과거 ‘가짜’라고 생각했던 것들이 지금에는 ‘진짜’로 통용되는 사례는 책 속에서 또 현실 경험으로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갈릴레오 갈릴레이를 법정에 세웠던 천동설과 지동설, 이순신을 역적으로 의심했던 16세기와 성웅 이순신을 읽고 있는 21세기의 우리는 ‘진짜’가 된 ‘가짜’, ‘가짜’가 된 ‘진짜’의 혼돈 속에 살고 있는 셈이다.

그래도 정부와 정치권은 ‘가짜뉴스’를 발본색원 하겠다고 칼을 갈고 있다. 자신들이 펼친 정책과 정치가 비판받고 때로는 비난과 조롱의 대상이 되는 것이 대부분 ‘가짜뉴스’에 의한 것이라는 일종의 피해의식이 권력과 만나 생긴 현상이다.

명분은 ‘가짜뉴스’의 사회적 폐해가 심각하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과거 자신들이 만들거나, 또는 정치적으로 이익을 봤던, 지금은 가짜가 된 말과 논평, 뉴스들에 대해 먼저 사과와 반성이 있어야 한다. 지금 야당들이 여당의 이런 반성과 사과를 받아들일 수 있어야만, 진짜 ‘가짜뉴스’ 정화를 위한 정치적 공감대도 형성 가능할 것이다. ‘내로남불’만 한다면 결국 ‘자승자박’이 될 뿐이다.

물론 더 좋은 것은 어떤 주장, 뉴스에 대한 진실 평가는 독자와 유권자, 그리고 후세 역사에 맏겨두는 것이다. 지금의 정치인들이 할 일은 뉴스의 진위를 판별하는 게 아니라 그런 뉴스에 대해 설명하고, 받아들이고, 반성하고, 스스로를 수정하는 것이 먼저다. 

choijh@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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