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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광화문 광장-김준형 칼럼니스트] 나쁜 사람 혹은 나쁜 시스템
1971년 미국의 스탠포드 대학의 교수 ‘필립 짐바르도’는 새로운 심리 실험을 계획했다. 그는 감옥에서의 생활에 대해서 알아보기 위해서, 대학 건물의 한쪽을 막아 교도소를 만들었다. 그리고 24명의 청년들을 모집해서, 무작위로 죄수와 간수 역할을 맡겼다. 처음에는 단순해 보였던 실험이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문제가 나타났다. 점차로 죄수 역할을 맡은 사람은 진짜 죄수처럼, 간수 역할을 맡은 사람은 진짜 간수처럼 행동한 것이다. 여기서 그치지 않고, 간수 역할의 실험자들이 죄수 역할의 실험자들을 학대하기 시작했다. 매트리스를 빼앗아 딱딱한 바닥에서 자게 만들고, 발가벗겨서 수치심을 느끼게 만들었다. 죄수 역할 실험자의 얼굴에 종이봉투를 씌우고, 공포감을 조성하는 모습도 보였다. 원래 2주로 계획되었던 이 실험은 6일 만에 중단되었다. 죄수 역할 실험자의 일부는 정신 착란에 빠지기도 했다. 이 실험은 엄청난 충격을 불러왔다. 하지만 충격은 이것으로 끝나지 않았다. 2004년 이라크의 ‘아부그라이브’ 수용소에서 미군들이 이라크 포로들을 학대한 사건이 발생했다. 그런데 포로들의 학대 사진을 보면, 포로들을 발가벗겨서 조롱하고, 포로들의 얼굴에 종이봉투를 씌워서 위협하는 장면들이 있다. 이 장면들은 30년 전 스탠포드 감옥실험의 사진과 놀랍도록 닮은 것이었다.

스탠포드 감옥 실험에 참가한 한 실험자는 이렇게 말했다. “‘나는 그렇게 안 했을 거야.’라고 말하기는 쉽습니다. 그렇지만 모르는 일이에요. 진짜로 모르는 일이라니까요!” 실험자들은 모두 중산층의 정신적으로 건강한, 그야말로 평범한 청년들이었다. 아부그라이브 수용소의 미군들도 평범한 젊은이들이었다. 하지만 그들은 악마로 변했다. 이 사건들은 인류에게 소중한 교훈을 던져 주었다. 사람은 착한 사람, 나쁜 사람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처한 상황에 따라 착한 사람이 될 수도, 나쁜 사람 될 수도 있는 것이다. 특히나 ‘권력과 복종’이라는 특수한 관계가 지배하는 상황은 사람을 악마로 만들어 버리기도 한다. 이런 현상을 짐바르도 교수는 ‘루시퍼 효과’라고 불렀다. 루시퍼는 악마 ‘사탄’의 다른 이름이다.

얼마 전, 서울의 어느 장애인학교에서 사회 복지요원이 장애 학생들을 폭행한 사건이 발생했다. 피해 학생들과 부모들의 가슴에 큰 상처를 남겼을 뿐 아니라, 수많은 사람들의 공분을 일으켰다. 그런데 이런 문제가 터졌을 때, 우리 정부가 문제를 해결한 방식은 천편일률적이었다.

우선 높은 사람이 사과를 하고, 철저한 조사를 약속한다. 이어 사법기관이 관련자들을 조사하고, 처벌한다. 그리고 지금보다 더 복잡한 법과 규정을 만들어낸다. 물론 중요한 과정이다. 그러나 이것으로 충분한 것일까? 혹시 이번 사건은 스탠포드 대학의 감옥실험처럼 ‘권력과 복종’이라는 특수한 상황이 만들어낸 비극은 아닐까?

만약 지금까지 발생한 문제가 사람의 문제가 아니라, 시스템의 문제라면, 가해자를 아무리 처벌해도 문제를 해결하지는 못 할 것이다. 악마를 만들어내는 시스템을 그대로 둔 채, 그 곳에 사람만 바꿔 투입한다면, 비극은 끝없이 반복될 뿐이다. 복잡한 규정 역시 마찬가지이다. 너무 많은 규정을 지키라는 강요는, 아무 규정도 지키지 말라는 강요와 같다. 물론 규정을 지키는 척하겠지만, 모두 수박 겉핥기가 되고 만다. 뿐만 아니라, 새로운 규정은 새로운 단속을 만들고, 단속은 ‘갑과 을’의 관계, 즉 또 다른 ‘권력과 복종’의 관계를 만들어 내는 문제도 있다.

사실 이런 비극은 장애인 학교만의 문제는 아니다. 어린이 집의 아동학대 사건, 학교 폭력, 군대에서의 가혹행위, 사회 곳곳의 ‘갑질’, 모두 어딘가는 루시퍼 효과가 숨어있는 사건들이다. 이제 우리에게는 새로운 실험이 필요하다. 정부는 겸손한 마음으로 각계의 전문가에게 도움을 청하고, 시스템을 면밀히 검토해야 할 것이다. 물론 힘들고, 오랜 시간이 걸리겠지만, 포기해서는 안 된다. 이런 노력은 장애인 학교뿐만 아니라, 우리 사회 전반적인 시스템 개선의 단초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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