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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음주산행 가상체험]‘음주 고글’ 쓰자마자 비틀비틀…“정상주 마시면 큰일 나겠다” 실감
지난 14일 서울 도봉구 도봉산 입구에서 ‘음주 산행문화 개선을 위한 가상 음주체험’ 캠페인 현장. 한 등산객이 음주 고글을 끼고 가상 음주 체험을 하고 있다. [정세희 기자/say@heraldcorp.com]

-도봉산국립공원 입구 가상음주산행 체험 열려
-소주 1병 마신 상태와 비슷…“어지럽고 흔들거려”
-“실제 더 높은 바위와 계단…음주 산행은 위험”

[헤럴드경제=정세희 기자]“우이암은 통과하셨습니다. 아이고 신선대에서 다리를 다치셨네요!”

지난 14일 서울 도봉구 도봉산 입구에서 ‘음주 산행문화 개선을 위한 가상 음주체험’ 캠페인이 열렸다. 음주 고글을 낀 상태에서 바닥에 놓인 높이 약 40㎝의 고깔모양의 장애물(러버콘) 4개를 넘어뜨리지 않고 걸으면 미션 성공이다. 음주 고글을 끼면 소주 1병 마셨을 때와 비슷한 상태가 된다.

60대 남성이 음주 고글을 끼자마자 지그재그로 걷기 시작했다. “어이쿠” 소리를 내면서 바닥에 있는 장애물을 모두 넘어뜨렸다. 술 마시면 신체 제어 능력이 떨어진다고는 알고 있었지만 평지에서도 장애물을 피하지 못한다는 게 믿겨지지 않았다. 

기자도 직접 음주 고글을 끼고 가상 음주산행을 해봤다. 고글을 끼자마자 어지러워서 제대로 걸을 수가 없었다. [정세희 기자/say@heraldcorp.com]

기자도 고글을 쓰는 순간 시야가 팽팽 돌았다. 고개를 좌우로 움직여보니 더욱 어지러웠다. 눈을 크게 뜨고 바닥을 바라봤더니 장애물이 흔들렸다. 조심조심 걸음을 뗐지만 두번째 바위인 신선대를 발로 치고 말았다. 세번째 장애물을 통과했나 싶었지만 마지막 지점 고깔이 보기 좋게 넘어졌다. 이를 지켜보던 유성철 국립공원 자연환경 해설사가 “대피소에서 크게 다치셨어요. 얼른 헬기를 부르셔야겠어요”라고 말했다. 주위에서 웃음소리 터져 나왔다.

실제 가상 음주 산행을 해보니 사물 지각능력, 신체 통제 능력이 현저히 떨어진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캠페인에선 작은 고깔을 피해 걷는 수준이었지만 실제 산에서는 더 높은 바위와 계단을 넘어야 하니 훨씬 위험할 것 같았다. ‘시작주고 정상주고 절대 마시면 안 된다’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다른 등산객들도 마찬가지였다. 서울 송파구에서 온 장천수(78) 씨는 체험이 끝난 뒤 “산행 중에 술을 마시면 큰일 나겠다“면서 “국립공원에서 술 먹지 맙시다!”를 크게 외쳤다. 

도봉산 등산객들이 가상 음주체험 캠페인에 참여하고 있는 모습 [정세희 기자/say@heraldcorp.com]

환경부에 따르면 2012∼2017년 국립공원에서 음주로 인해 발생한 안전사고는 64건으로 이 기간 전체 안전사고(1천328건)의 4.8%를 차지했다. 추락사ㆍ심장마비 등 음주 사망사고도 10건으로 전체 사망사고(90건)의 11.1%에 달했다.

음주로 인한 사고가 줄지 않자 환경부는 올해 3월 전국의 자연공원 (국립ㆍ도립ㆍ군립)에서 음주를 하면 과태료를 내야 하는 ‘자연공원법 시행령’이 개정을 개정해 본격적인 단속에 나섰다. 9월까지의 계도기간이 끝났기 때문에 10월부터는 음주 행위 시 1차 5만원, 2차부터는 10만원의 과태료를 내야 한다. 

캠페인 현장에 놓인 음주 산행 금지 안내 포스터. [정세희 기자/say@heraldcorp.com]

본격적인 단속을 시작하면서 북한산국립공원도봉사무소는 매일 오전 9시부터 12시까지 등산을 시작하는 사람을 대상으로 음주 산행 금지 캠페인을 벌이고 있다. 음주 고글 체험뿐만 아니라 현장 곳곳에는 ‘술길 싫어요, 숲길 좋아요’, ‘술 한잔 대신 맑은 공기 한잔 어떠신지요?’ 등 금주 포스터가 놓여있었다. 이날 오전까지 1만5800명의 등산객이 캠페인을 직간접 경험하고 산행을 시작했다. 이중 직접 음주 고글 체험은 줄을 서서 기다려야 할 만큼 인기가 많았다. 40여명의 사람들이 음주 고글 체험현장을 지켜봤다.

조혜진 북한산국립공원도봉사무소 계장은 “술을 무조건 마시면 안된다고 금지하는 것보다 왜 안 되는 건지 직접 체험하는 게 홍보에 효과적이었다”면서 “위험한 음주 산행 문화가 사라지고 안전하게 등산하는 건강한 문화가 정착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say@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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