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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 번쯤 떠올리는 자살충동…“도와달라는 말 한마디로 살았다”
죽음 대신 삶 선택한 사람들
“사는 데 거창한 이유 필요없어”


‘살고 싶지 않다’ ‘이렇게 살아서 뭐하나’ ‘죽을만큼 힘들다’. 삶과 죽음 사이를 고민하는 질문은 수시로 찾아온다. 우울증 같은 정신질환을 앓다가 자살을 행동으로 옮기는 사람도 있고, 지친 하루 끝에 텅 빈 자조처럼 ‘힘들어 죽겠다’ 한탄하는 사람도 있다. 한때 죽음을 생각하고 죽겠다 결심도 해봤지만, 결국엔 삶을 선택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비슷한 고민을 하고 있을 사람들에게 보내는 그들의 응원 메시지를 정리했다.

“‘도와달라고 한번만 말해보자’던 솔직함이 나를 살렸다.” 김모(17) 군은 열다섯에 우울증과 불안장애, 정신분열증 전단계 진단을 받았다. 죽음을 결심하고 손에 칼을 쥐어 본 적도 있었지만 1년간 치료를 통해 일상을 되찾았다.

그가 죽겠다고 결심한 계기는 엄마의 외도였다. 그는 “그때 열네살이었다. 항상 술에 취해 있는 아버지 밑에서 자라던 내게 유일한 버팀목은 엄마였다”며 “그런 엄마가 바람을 핀다는 걸 알고 난 후 속으로 절규했고 마음은 문드러졌다”고 말했다.

마음의 상처가 깊어지자 환각이 찾아왔다. 눈앞에 사람들의 형체가 떠다니고, 처음 보는 물건들이 아른거렸다. 그는 중학교 2학년 여름 어느 여름날 ‘죽으면 이 고통과 허무함도 끝날 것’이란 생각을 하게 됐다. 일단 칼을 쥐었지만 손이 떨려와 칼날이 빗겨갔다. 순간적 충동이 사그라들자 이렇게 죽어야하나. 이러다 죽어버리면 어쩌나 두려웠다. 그날 이후 학교 상담실을 찾았다.병원통원치료도 시작했다. 우울증, 불안장애, 정신분열증 전단계 진단이 나왔다. 치료를 시작하고 1년 뒤 상태가 호전됐다.

그는 “내겐 남보다 뛰어난 의지도, 단단한 마음 같은 것도 없었다. 나를 수렁에서 꺼낸 유일한 은인은 ‘도와달라’며 고백한 솔직함 뿐”이라고 말했다. 그가 죽음의 문턱에서 느낀 후회와 공포는 숨기려했던 나약함을 털어놓을 수 있는 기회를 줬다.

그는 “학교 상담실을 찾을 때까지만 해도 ‘누가 나를 구원해줄 수 있겠냐’며 비관했다. 힘들고 괴로워 가족도 친구도 남아있지 않다는 생각이 든다면, 그럴 때조차 당신을 도와줄 누군가가 반드시 있다고 말해주고 싶다”고 말했다.

“죽고 싶은 생각은 들었지만, 간장계란밥은 먹어야겠더라.” A모(27) 양에게 우울증이 찾아온 건 준비하던 고시에 수차례 떨어진 후였다. ‘이제 뭐하고 살지. 그냥 죽을까’ 하는 생각도 수십번 해봤다고 그는 말한다.

살아야할 이유가 없다고 생각하니 몇년동안 칼같이 지켰던 원칙이 무너졌다. 혼자 방 안에 웅크려 무기력하게 보낸 시간이 석달. 그는 “제때 일어나 씻고 밥먹는 것조차 힘겨운 일상이 돼있었다”며 “화장실이 어디였는지조차 생각 안나던 어느 날 수면제 여러알을 입안에 우겨넣었다가 뱉어낸 적도 있었다”고 회상했다.

그런 그를 되돌린 건 사소한 일상이었다. 그는 “여름에 너무 더우니까 자다 일어나 샤워를 했다. 손 닿는대로 아낌없이 짜낸 바디워시에서 달콤한 향이 번졌다. 비싸서 아껴쓰던 프랑스 제품이었다”며 “그때 ‘아, 나 이걸로 샤워하면 기분 좋았었지’ 하는 기억이 문득 떠올랐다.

그 작은 만족감을 발판삼아 그는 예전의 자신이 뭘할 때 행복한 사람인지 기억해냈다. 그는 “간만에 구석구석 씻고나니 간장달걀밥이 그렇게 먹고싶더라. 달걀 노른자를 반만 익혀 비비는 걸 좋아했던 게 기억났다”며 “달걀 사러 슈퍼로 나갔다. 몇달만의 외출이었다”고 회상했다. 기억 저편으로 가라앉아버렸던 일상이 하나씩 돌아왔다.

그는 ‘왜 살아야하냐’고 묻는 사람들에게 사는 데 생각만큼 원대한 이유나 목적 같은 게 필요하지 않다는 걸 이야기해주고 싶다고 했다. “그저 좋아하는 바디워시를 아낌없이 짜서 쓰는 날이 있다거나, 만화책의 다음 권을 기다려야 한다는 이유만으로도 살아야할 이유는 된다. 괜찮다.”

김유진 기자/kacew@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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