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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내일은 광복절, 그러나①] 안내판도 없이 쓰레기만…방치된 우리동네 ‘독립 유적지’
[사진=대표적 항일운동 사적지 중 하나인 ‘옛 신간회 본부 터’. 그러나 표지석 주변에는 불법 주차된 자전거와 함께 쓰레기가 방치돼 있다]
-서울에만 200개 넘는 ‘항일운동사적지’…대부분 방치
-이동식 철제 안내만 ‘덩그러니’…그마저도 설명 ‘불친절’
-“역사 보존해야 하는데…주민도 못 알아볼 정도” 한숨


[헤럴드경제=유오상 기자] 서울 종로구 인사동의 한 뒷골목. 인사동 골목에서도 좁은 뒷길로 들어가야만 찾아올 수 있는 이곳은 지금은 술집과 음식점 간판만 가득하다. 언뜻 보기에 흔히 볼 수 있는 유흥가로 생각하기 쉽지만, 이곳은 113년 전 을사늑약 체결에 항의하며 스스로 목숨을 끊은 조병세 선생의 순국지로 엄연한 항일운동사적지다.

지난 1905년 11월 17일, 당시 대한제국의 원로 대신이었던 조병세 선생은 을사늑약의 부당함을 알리며 고종에게 수차례 조약 파기를 주장했다. 79세였던 조병세는 일본 헌병대에 연행돼 정동 헌병주재소에 구금되는 수모를 겪었다. 석방 후 마지막 상소운동까지 금지당한 조병세 선생은 결국 12월 1일 지금의 인사동 뒷골목에서 음독 자결했다. 품속에는 고종과 외국 공사들에게 보내는 유서 3통이 남아있었다.

그러나 지금 인사동 뒷골목에 당시의 항일운동을 확인할 수 있는 기록은 찾아볼 수 없다. 흔한 표지석 하나 없이 방치된 상태다. 10여 년 전 항일운동 사적지 조사 과정에서 조병세 선생의 순국 기록이 확인되며 정확한 위치까지 드러났지만, 정작 그 앞 가게 주인조차 이곳이 항일운동사적지라는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

[사진=김상옥 의사의 의거지는 도로정비과정에서 표지석이 철거됐다. 현재는 이동식 철제 안내판이 세워져 있지만, 관리는 부실한 상황이다]

국내 항일독립운동사적지 조사보고서 등에 따르면 현재 서울 시내에 확인된 항일독립운동사적지만 200여개에 달한다. 모두 뜻 깊은 역사를 갖고 있지만, 대부분 멸실되거나 방치되는 등 관리가 부실한 경우가 많다. 실제로 조병세 선생 순국지 이외에도 다른 항일운동사적지의 보존 상황은 좋지 않았다.

서울시 종로구 2가의 한 대형상가 앞도 항일운동사적지로 등록돼 있다. 지난 1923년 1월 12일 의열단원이었던 김상옥이 민족운동 탄압의 상징으로 여겨지던 종로경찰서에 폭탄을 던졌던 곳이다.

김상옥 의사는 최초로 이달의 독립운동가에 선정될 정도로 대표적인 독립운동가지만, 정작 의거가 이뤄졌던 사적지는 초라하기만 하다. 2년 전까지만 하더라도 의거지를 안내하는 대형 표지석이 자리했지만, 도로정비 과정에서 철거되며 현재는 조그만 이동식 안내판만 자리를 지키고 있다. 그나마 지하철 출입구와 모래함 사이에 가려져 행인들이 쉽게 지나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사진=을사늑약에 항거하며 순국한 조병세 선생의 순국지는 현재 식당가가 들어섰다. 항일운동사적지로 등록돼 있지만, 안내 시설은 찾아볼 수 없다]

그나마 지나가는 외국인 관광객들은 제대로 된 영어 설명조차 없어 이곳이 사적지인지 조차 몰랐다. 이날 종로를 찾은 미국인 관광객 패트릭 벨(40) 씨는 “영어로 작게 이름이 쓰여 있지만, 뭘 말하는 것인지는 잘 모르겠다”며 “처음에는 옆에 있는 상자를 열지 말라는 경고문인 줄 알았다”고 했다.

안내 시설이 있더라도 정작 관리가 부실한 경우도 있다. 김상옥 의거지에서 500m 떨어진 서울 종로구 관수동 143번지에 위치한 옛 신간회 본부 터 앞에는 대형 표지석이 설치돼 있다. 그러나 표지석 위에는 행인이 버려놓은 커피잔이 올려져 있었고, 주변은 자전거 주차장처럼 이용됐다. 실제로 지난 주말 표지석 인근에는 불법 주차된 자전거로 주변이 어지러웠다.

방치된 사적지를 보는 주민들도 안타까움을 나타냈다. 인근에서 음식점을 운영하는 구정수(51) 씨는 “평일에는 바로 앞 학원을 찾는 학생들 탓에 자전거가 늘어져 표지석이 가려질 정도”라며 “좋은 역사는 널리 알리고 지켜야 하는데, 표지석조차 지키지 못하는 것 같아 주민으로서 안타깝다”고 말했다.

osyoo@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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