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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프리즘] 피아 구분
군대에서 훈련을 하면 ‘피아(彼我) 식별띠’를 왼쪽 어깨에 찬다. 띠 색상은 노란색과 파란색인데, 나와 같은 색이면 아군이고 나와 다른 색이면 적군이다. 적이면 사살을, 아군이면 협동이 기본이다. 훈련에서 사람을 확인하면 가장 먼저 띠를 봐야 한다. 자칫 내가 죽거나 잡힐 수 있기 때문이다. 피아 구분에 따른 행동 반응은 거의 동시적이어야 한다. 그것은 생존법이다.

사회에서도 피아 구분은 여전히 유용하다. 적과 아군을 구분하는 것을 ‘정치의 정의(定義)’라고 한 학자도 있다. 특정사안에 대해 취할 입장은 사실 1초도 안되는 짧은 시간안에 정해진다. 이는 개인 뿐 아니라 집단도 마찬가지다. 특정 사안을 접했을 때 취하는 거의 동시적 반응이 집단적으로 나타날 때, 이는 여론이 되고 사회를 움직이는 힘이 된다. 적에겐 광포함을, 아군에겐 협동 자세를 취한다.

최근 한국에서 뜨거운 피아구분은 예멘 난민 사안과 대체복무제 도입 두가지다. 난민을 ‘적’으로 간주하는 데에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4일 오전 현재 청와대 게시판에 등록된 ‘제주 난민 불허’를 골자로 한 청원글에는 60만6000여명이 동의했다. 청원글 등록(6월 13일) 한달도 안된 사이 기록적인 인원이 ‘예멘 난민 불허’에 동참했다. 먼나라 얘기였던 ‘난민 문제’가 우리의 문제가 되자 드러난 특유의 배타성이다.

예멘 난민 반대 입장은 크게 ▷범죄 우려 ▷세금 낭비 ▷시기상조 등으로 정리된다. 사실 ‘시기상조’는 반대 논거가 부족할 때 사용되는 ‘하기 싫어’와 같은 말이다. 논리가 아니라서 반박 불가다. 한국은 세계 11위 경제대국이지만 그래도 더 등수가 높아져야 ‘시기가 무르익었다’고 판단할는지도. 법무부는 예산 부족을 이유로 난민에게 금전적 지원을 하지 않고 있고, 그들이 범죄를 평균 이상으로 저질렀다는 집계도 아직은 없다. 한국이 국제 난민협약에 가입한지는 25년이나 지났다.

관례대로라면 제주도를 찾은 500여명의 예멘 난민신청자 가운데 난민 지위를 인정받을 사람 수는 많지 않다. 법무부에 따르면 지난해 난민 신청자는 9942명에 이르렀으나 실제 난민 지위를 얻은 사람은 121명에 불과하다. 난민 인정률은 2.0% 안팎이다. 500명 가운데 5명~10명 가량만이 난민 지위를 얻을 수 있다. 정부는 이미 6월에 예멘을 난민 불입국 명단에 포함시켜 더이상의 예멘 난민이 제주도를 찾기 어렵게하는 조치도 취해둔 상태다.

현실로 다가온 대체복무제 도입에도 피아 구분이 적용되는데, 여기서 적은 사실상 ‘여호와의 증인’ 신도들이다. ‘나는 양심이 없어 군대 갔다 왔느냐’는 심리의 기저엔 박탈감과 평등감이 도사리고, 때문에 감옥이 아니라면 산골이나 섬 등으로 ‘유배’를 보내야 나와 형평이 맞춰진다는 주장도 넘친다.

’피아 구분’은 그러나 극적일 경우에만 적용되는 것이 온당하다. 세상을 적과 아군 두가지만으로 가정하면 사회는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 상태가 된다. 어쩌면 한국이 아직 ‘휴전 상태’라 그럴 수도 있다. 오는 27일은 정전협정 65주년이다. 종전선언과 함께 이 땅에 피아구분 판단만이 뜨거운 현 상태도 함께 종식됐으면 한다. 

h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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