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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라이프칼럼-정덕현 대중문화평론가] 일상이 관광 상품이 된 시대
언제부턴가 TV에는 유명 관광지가 아닌 일상 생활공간들이 더 많이 담기기 시작했다. KBS <1박2일> 같은 여행 프로그램이 대표적이다. <1박2일>은 한 때 당일치기 여행 콘셉트로 ‘북촌한옥마을’을 담아 큰 화제가 된 바 있다. 이 프로그램에서 소개된 북촌8경은 서울 시내에 그런 곳에 있었나 하는 놀라움마저 안겨주며, 많은 이들의 나들이 공간이 되었다. 특히 SNS를 통해 사진으로 찍힌 북촌한옥마을의 풍광은 외국인 관광객들의 발길까지 잡아 끌기에 충분했다. 이 마을의 골목에 서면 가까이 양편으로 늘어서 있는 한옥들과 저 원경으로 보이는 도시의 빌딩이 한 프레임 안에 들어오는 이국적인 정경을 마주할 수 있다. 그러니 한국을 방문하는 외국인들은 꼭 찾아가 사진에 담아야하는 그런 곳이 되었다.

최근 들어 가로수길, 경리단길, 연남동길, 망리단길 같은 골목길이 다시금 생겨나고 사람들의 발길을 잡아 끌게 된 것도 방송과 무관하지 않다. MBC <나혼자 산다>나 <무한도전> 같은 프로그램이 일찍이 그 골목길이 가진 일상의 정취를 담아낸 바 있고, 최근에는 아예 그 길을 주요한 테마로 삼는 JTBC <한끼줍쇼> 같은 프로그램도 생겼다. 그저 이름만 듣고 멀리서 지나치기만 했던 작은 골목길들은 방송의 카메라가 가까이 들어가면서 매혹적인 공간으로 변신했다. 한번쯤 가서 그 길을 걸어 보고픈 욕망을 끄집어냈던 것.

조금의 퇴락해가는 공간도 용납지 않고 밀어버리고 그 위에 빌딩을 세우거나 도로를 내는 것이 우리네 서울의 실상이라는 걸 생각해보면, 마치 레지스탕스처럼 골목 안에 숨어 인간적인 온기를 지켜내려 하는 골목길의 생동감은 반가운 일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오래된 시간 동안 서서히 누적되어 자생적으로 생겨난 골목길이 아니라, 마치 유행처럼 등장해 매스컴에 의해 키워진 골목길은 남는 문제들도 적지 않다.

이미 여러 차례 방송에서도 지적된 것처럼 이른바 ‘젠트리피케이션’은 골목길이 처한 가장 큰 문제 중 하나다. 솟구치는 임대료 때문에 사실상 공간에 문화를 만들어냈던 원주인들이 자본에 밀려 동네를 떠나게 되는 이 아이러니한 상황은, 마치 골목길에 재편된 부동산 투기처럼 보인다.

젠트리피케이션이 아니라고 해도, 관광지화 되어버려 주민들이 살 수 없다며 고통을 호소하는 사례도 만들어지고 있다. 최근 북촌한옥마을의 주민들이 일제히 거리로 나서 대책마련을 요구하고 나선 건, 이전까지만 해도 조용한 마을이었던 그 곳이 물밀 듯 찾아오는 관광객들로 인해 시끄러워 살 수 없는 동네가 되었기 때문이었다. 과거에는 문을 열고 지낼 정도로 이웃과 정이 넘치던 그 곳이, 이제는 꼭꼭 문을 닫아 놓고 지내는 곳이 되었다. 문에는 “제발 찾아오지 말라”는 감정이 묻어나는 문구까지 적혀 있다.

음식점을 가도 유명 음식점보다는 현지인들이 가는 음식점을 찾아가고 싶어 하게 된 건, ‘일상의 가치’가 그만큼 더 소중해졌다는 방증이다. 하지만 그래서 생겨나는 문제가 있다. 바로 일상의 상업화다. 일상을 살던 공간을 자본의 거래가 이뤄지는 공간으로 바꾸는 일상의 상업화는 결국 그 곳 주민들의 일상을 빼앗는다. 이제 더 이상 관광객이 오면 ‘살기 좋아지는 것 아니냐’며 반색하던 시대는 지났다. 일상의 소중한 가치를 지켜낸다는 의미에서 주민과 그 곳을 찾는 과객들이 공존할 수 있는 방안이 절실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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