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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어버이날 풍경 2題] “엄마, 올해도 못가 죄송해요”
결전임박 수험생들 막판 구슬땀
“부모님 주신 돈으로 선물 민망”
주변 카네이션 가게들 파리날려


부모님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하는 5월 어버이날은 노량진 고시촌에도 돌아왔다. 긴 수험생활 속에서 몸도 마음도 지쳐가지만 누구보다 보고싶은 부모님을 보러갈 생각에 수험생들 얼굴에도 웃음꽃이 폈다. 몇달만에 보고싶은 부모님을 보러 향하는 발걸음은 가볍고도 무겁다.

내년엔 5만원권 돈다발 드리고 싶다는 2년차 공무원 수험생 윤세정(26) 씨는 어버이날을 맞아 주말 집에 다녀왔다고 전했다. 서울 동작구 노량진 학원가에서 만난 윤 씨는 “어버이날을 맞아 세달만에 본가인 경기도 성남에 갔다. SNS에서 본 ‘돈 케이크(지폐로 테두리를 두른 케이크)’를 가져갔다”라며 “올해는 제과점에서 제일 작은 케이크에 만원 지폐를 직접 두를 생각이지만 합격하면 5만원권 돈다발도 안겨드리고 싶다”며 웃었다. 대학입시를 재수로 끝냈듯 공무원 시험도 올해 안에 끝낸다는 게 윤 씨의 당찬 포부다.

[노량진 인근 문구점에 진열된 어버이날 카네이션 상품들. 김유진 기자/kacew@heraldcorp.com]

19일 실시되는 9급 지방직공무원 시험에는 21만5000여명(사회복지직 포함)의 공시생이 결전을 치른며 이중 1만4974명만이 합격의 기쁨을 누리게 된다. 8일 어버이날을 맞았지만 인생을 건 시험이 2주가 남지 않은 ‘노량진 청춘’들에게는 카네이션은 커녕 부모님께 전화 한통할 여유가 없다

“좋은 선물 드리고 싶은데 그것도 부모님이 주신 용돈이라 죄송해요.” 휘황찬란한 선물은 없지만 평소 부모님을 향한 마음을 진솔하게 전하는 경우도 있다. 올해 처음으로 노량진에 입성했다는 공무원 수험생 오형식(26) 씨는 “군대도 다녀왔지만 연락 잘 되고 집 가까운 상태로 떨어져 지내니 부모님 빈자리가 크게 느껴진다”며 “새벽에 부모님 생각이 많이 나서 일기처럼 적어둔 편지가 여러통이다. 어버이날을 빌미로 전해드리려한다”고 말했다.

반면 집이 먼 지방 학생들은 귀성할 시간적ㆍ금전적 여유가 없어 마음만 보내는 경우도 많았다.

경찰공무원을 꿈꾸는 김환성(27) 씨는 “고향이 대전인데, 올해는 정말 마지막이란 생각으로 임하고 있어서 부모님께 못 찾아뵐 것 같다고 말씀드렸다“고 말했다. 그는 부모님께 “요즘 드라마 ‘라이브’보고 경찰이 위험하다고 걱정하고 계시는데, 저한테는 그런 드라마조차 아직 꿈같은 얘기인 것 같다. 노량진에서 공부하면서 나태해질 때마다 동작경찰서를 보면서 마음 다잡고 있으니 믿어달라”고 전했다.

부모님을 찾지 못하는 청년이 김 씨 뿐만은 아니다. 최근에는 어버이날을 챙기지 못하거나 챙겨도 카네이션 대신 다른 선물을 보내는 경우가 늘면서 노량진 꽃집들은 예년보다 쓸쓸한 분위기다.

노량진에서 꽃집을 운영해온 김모(63ㆍ여) 씨는 “노량진 학생들 주머니가 얼마나 가볍겠냐. 어버이날엔 저렴한 2000원짜리 카네이션 꽃 코사지를 제일 많이 만든다. 부모님 가슴에 하나씩 달아드리면 참 예쁜데, 최근 몇년새 5월 가정의 달이 돼도 판매가 예전 같지 않다”고 말했다.

연신 카네이션을 다듬는 그에게 어버이날 계획을 묻자 “어버이날이 대목이니 쉴 수가 있나. 당일에 카네이션이 제일 많이 팔리니까 저녁엔 아들 불러서 일 좀 도우라고 해야지”라며 웃었다.

인기가 시들한 건 인근 문구점에서 판매하는 카네이션 조화도 마찬가지다. 매대 가장 잘 보이는 곳에 진열한 카네이션 뱃지, 조화 등의 상품들은 처음 진열한 대열대로 가득 차 빈자리가 보이지 않았다. 이날 노트와 필기구를 구입한 후 바삐 문구점을 나서던 수험생 오모(28) 씨에게 어버이날 계획을 물자, “그저 독하게 맘먹고 빨리 합격하는 게 효도 같다”며 묵직한 발걸음을 옮겼다.

김유진 기자/kacew@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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