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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존댓말ㆍ돈ㆍ왕따…익숙한 습관이 낳은 갑질문화

“어디서 어린 게 싸가지 없게 눈을 부릅 뜨고 말이야!!!”
“제가 처음에 이곳으로 갖다달라고 정중히 말씀 드렸잖아요.”

아무렇지 않게 다른 사람에게 반말을 하며 소리를 내지르며 침을 튀긴다.
집앞 카페 아르바이트생이 빈 컵을 캐비닛이 아닌 카운터로 갖다달라는 말에 갑자기 ‘소리 지르기 대회’가 시작된 것이다.
‘어린 것이 버릇없이~’로 시작되는 익숙한 레파토리들이 흩날린다.

그곳 아르바이트생은 59세, 손님은 66세였다.

두 노인의 모습을 보며, 요즘 말많은 갑질 문화가 갑자기 생긴 게 아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공기처럼 너무나 익숙해 모르고 있었던 몇몇 습관들이 갑질 사태를 더 심각하게 한 건 아닐까.

탑골공원에서 말다툼을 하게 된다면, 상대방이 몇 살인지 물어볼 때 절대 답하면 안된다


   “너 몇 살이야?”에 답하지 마라

노인들, 특히 남성노인들이 주중에 많이 모이는 서울 종로 탑골공원에선 통용되는 규칙이 하나있다.

[말다툼이 일어났을 때 한쪽이 먼저 “너 몇 살이야?!”라고 물으면 답하지 마라]

어떤 숫자를 내든 먼저 내면 상대방이 그 수에 몇 살을 더해 “나이도 어린게~” 기술을 쓰기 때문이 이길 방법이 없다는 것이다. 태어날때부터 죽을때까지 ‘나이’는 우리를 약자로 만들기도 하고 괜한 완장을 달아주기도 한다. 나이가 ‘관계의 질서’를 쉽게 정리해준다. 어리면 엎드리고 많으면 으쓱해 한다.

한국어 특징 중 하나인 ‘존댓말’ 역시 나이문화와 밀접한 관계에 있다. 나이가 만들어주는 질서에 따른 이러한 언어사용은 ‘갑질 문화’를 낳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불평등한’ 언어 사용으로 인해 생기는 갑을 관계와 어색함을 없애기 위해 나이가 어린 사람에게 “말 편하게 하세요” 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어린 사람 중 실제로 말을 쉽게 놓을 수 있는 사람들은 많지 않다.
서울시내 대학의 한 행정학과 교수는 “어떻게 말하느냐에 따라 그 사람을 대하는 태도가 결정되는 경향이 있는데 보통 존댓말을 내뱉게 되는 나이 어린 사람들이 을의 위치에 놓이고, 반말을 편하게 내뱉는 나이 많은 사람이 갑의 위치에 놓이는 경우가 일상적”이라며 “한번 정착된 언어문화가 하루아침에 바뀌는 건 불가능하다. 초면엔 서로 존대하면서 관계를 시작하는 등의 작은 매너 문화부터 만들어가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돈 없는 노인들은 노인정에 당당히 나갈 수도 없다 [출처: 헤럴드경제DB]


   “돈 있어야 놀아준다”

“아버지도 쓸 땐 써. 얻어먹기만 하면 돌림뱅이 당해”.
노인정에선 매일 옥수수며 감자며 간식 잔치가 열리는데 보통 노인정 회원들이 돌아가면서 ‘쏜다’. 하지만 많은 노인들은 시원하게 쏠 만큼 주머니가 넉넉치 않다. 고정수입도 없고 연금은 약값, 생활비로도 빠듯하다. 매달 용돈 챙겨주는 자식도 없는 경우가 허다하다.
형편이 넉넉치 못해 얻어먹기만 하는 노인들이 있다. 하지만 이들은 노인정에 오래 다니지 못한다. 돌림뱅이, 소위 왕따 당하기 때문이다. 왕따 당하는 노인은 노인정 잡일을 혼자 하거나, 다른 노인들의 대화에 끼지 못한 채 겉돌다 곧 노인정에 나가지 않게 된다고 한다.

가난해 보여서 누군가를 왕따 시키는 모습은 노인들에게 처음이 아니다. 초등학교, 유치원에서부터 보이는 왕따 문화. 외제 운동화 하나 없어서, 브랜드 옷과 가방이 없어서… 초라한 행색으로 왕따를 시키는 ‘있는 집’ 아이들. 문제가 발생해도 집단따돌림한 가해 학생들의 잘못이라기 보단 왕따 당한 피해자에게 ‘그럴만한 이유’를 찾아내기 바쁜 경우가 여전히 많다. 돈이 곧 권력임을 사회화하며 배우며 크는 많은 사람들.
어릴 때부터 시작된 이러한 왕따문화는 대학교, 직장까지 이어진다. 재벌들의 갑질도 이와 크게 닮아있다. 이렇게 노인정에까지 이어지는 왕따 문화.

“돈이 없으니깐 큰 소리 못치고 있는 약자를 골라 괴롭히고 착취하는 권력 남용 문화가 노인정에서까지 있는 거죠. 돈 있는 노인들의 갑질로 볼 수 있습니다.”

/korean.gu@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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