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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아미 기자의 미술여행] 현대미술의 ‘용광로’…그들이 홍콩으로 가는 이유
 [헤럴드경제(홍콩)=김아미 기자] 홍콩의 3월은 현대미술의 ‘용광로’였다. 홍콩 섬의 중심부인 완차이 지역 컨벤션센터와, 이 곳에 맞닿은 그랜드하얏트 호텔 일대에 세계 최대 규모의 아트페어인 ‘아트바젤 홍콩’을 비롯해 소더비옥션, 폴리옥션 등 세계적인 미술 경매까지 수조원 규모의 미술품이 집결했다.  
데이비드 즈워너 갤러리가 출품한 제프 쿤스 조각. [사진=김아미 기자]
뿐만 아니라, 퀸즈로드를 따라 형성된 이른바 홍콩 갤러리 디스트릭트에는 중국농업은행, 페더빌딩 등 기존 갤러리 빌딩들에 이어, 하우저&워스, 데이비드즈워너 등 글로벌 아트파워 1~2위로 꼽히는 명문 갤러리들이 분점을 낸 H퀸스 빌딩까지 들어서 전세계 미술 애호가들의 발길이 이어졌다.

홍콩 반환 21년, 2047년까지 자치권을 보장받은 홍콩은 중국 본토에서 건너 온 노동자층이 ‘홍콩 피플’과 뒤섞여 한 편으로는 혼돈의 메트로폴리스와 같은 면모를 보였다. 카페, 레스토랑, 택시 등 여행자들이 흔히 맞닥들이는 적지 않은 장소에서 서비스업 종사자들과 영어로 소통이 힘들었고, 아트바젤 VIP 프리뷰 오픈은 행사 진행의 미숙함을 느끼게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세계 미술 자본이 홍콩에 집결하는 건, 온통 시야를 뒤덮은 마천루 사이 사이마다 굴착기와 기중기가 빼곡한, 여전히 ‘건설 중’인 도시의 위용과는 대조적으로, 도시 자체의 평균적인 지적 인프라가 담아내기에는 아직까진 벅찬 이벤트가 아닐까 하는 생각마저 들게 했다.

우연찮게도 같은 시기, 대만에서도 곧 새로운 아트페어가 생길 거란 소문이 돌았다. 아트바젤 홍콩의 전신인 ‘홍콩 아트페어’를 만든 영국 출신의 매그너스 렌프루(Magnus Renfrew)가 대만에도 아트바젤 홍콩 규모의 페어를 만든다는 것이다. 

리슨갤러리가 출품한 한국 작가 이우환의 신작. [사진=김아미 기자]
지난해 첫 선을 보였던 중국 상하이의 ‘웨스트번드 아트 앤드 디자인’ 페어까지 더해 이제 아시아는 명실공히 세계 미술시장의 중심 축으로 거듭나는 중이다. 그 가운데에서 한국 미술시장은 점점 더 입지를 잃어가고 있다.

홍콩은 관광과 금융의 천국일뿐 아니라 미술품 거래에 대한 면세 혜택까지 주어지는 곳이다. 거대 자본이 이끄는 대로 흘러가는 현대미술 시장이 홍콩을 더욱 매력적으로 받아들이는 이유다. 

블랙리스트 정국에 이은 ‘미투’(#Metoo) 운동의 여파로 잔뜩 경직돼 있는 현재 한국 문화예술계 토양에서 과연 한국 미술시장이 홍콩과 경쟁이 가능한지 반문하게 된다. 

리슨갤러리가 출품한 아니쉬 카푸어의 조각 신작. [사진=김아미 기자]
▶VIP 패스 발급 까다로워졌지만…예년보다 더 많은 한국 VIP 몰려=아트바젤 행사 사전에 초대받은 이들에게만 입장이 허락되는 VIP 프라이빗 프리뷰 행사는 지난 3월27일 오후 2시부터였다.

올해 유난히 까다로워진 VIP 티켓 발급 때문에 한국 쪽 미술 애호가들 사이에서는 뒷말이 돌았다. 초청을 받기 위해서는 바젤 주최 측이 요구하는 서식에 맞게 자료를 제출해야 하는데, VIP 패스 발급의 기준이 오락가락한다는 것이다. 일부에서는 “형평성에 맞지 않다”는 지적도 나왔다.

그러나 정작 VIP 프리뷰 행사 당일에는 여느 해보다도 많은 한국인들이 눈에 띄었다. 갤러리즈 섹션에 참가한 한 한국 갤러리 관계자는 “예년보다 두 배는 늘어난 것 같다”고도 했다.

이 관계자에 따르면, 페이스, 페로탱 등 세계적인 갤러리들이 한국에 오피스 갤러리를 개관하며 한국 컬렉터들과 직접적인 연결고리가 생긴 영향이 크다. 예전에는 해외 유명 작품을 사기 위해 한국 쪽 갤러리나 옥션을 통해야 했는데, 이젠 해외 갤러리 혹은 해외 옥션과 직접 거래할 수 있게 되면서, 이들 기관에 ‘VIP 고객’으로 등록돼 대우를 받는 것이다. 

가고시안 갤러리가 내놓은 무라카미 다카시(왼쪽부터), 우르스 피셔, 앤디 워홀 작품. [사진=김아미 기자]
▶글로벌 갤러리들 다 모였지만…눈에 띄는 출품작은 “글쎄”=6회 째를 맞은 아트바젤 홍콩은 참여 갤러리들 라인업만큼은 ‘본진’인 스위스 바젤 페어에 버금가는 수준이었다. 현대미술의 패권을 거머쥔 서구 갤러리들 대부분이 메인 섹션인 ‘갤러리즈’에 부스를 냈다.

다만 출품작들은 스위스에서의 라인업과는 다르게 좀 더 대중 취향을 저격하는 작품들이 나왔다. 미술사적으로 의미 있는 작가를 소개하는 캐비넷 섹션이나 신진 작가들 위주의 인카운터 섹션 역시 크게 눈에 띄는 작품이 없었다는 것이 현장을 다녀온 전문가들의 평가다. 

스위스 바젤이 ‘언리미티드전’을 통해 현대미술의 담론을 주도할 만한 작가들을 선보이는 것과는 달리, 홍콩은 아직까지는 아트페어의 ‘상업성’이 더 두드러진다는 게 중론이다.

서구의 명문 가고시안(Gagosian) 갤러리는 팝아트 그룹전을 방불케 하는 작품들을 선보였다. 앤디 워홀의 1965년작 캠벨수프(Colored Campbell’s Soup Can, 1965)를 비롯해, 우르스 피셔, 무라카미 다카시, 글렌 브라운, 제니 사빌, 조나스 우드, 프랜시스 피카비아, 마크 그로찬, 로이 리히텐슈타인 등 다채로운 라인업을 펼쳤다. 피카소 1971년작 유화 2점도 포함됐다. 
조나스 우드의 신작. 'Shelf With Skull2'(2018) [사진=김아미 기자]
프랜시스 피카비아의 1941-1943년작 '무제' [사진=김아미 기자]
이에 비해 페어 전부터 주목받은 하우저&워스 갤러리는 알렉산더 칼더의 1950년작 유화와 모빌 조각, 로니 혼의 유리 주조 조각, 필립 구스통과 장옌리의 회화 등으로 부스를 꾸며 다소 단촐한 모습이었다. “페어가 열리는 아시아의 컬렉터들 취향을 반영한 작품 구성”이라는 평가와 “아직까지는 아시아 시장의 성장 가능성을 탐색하는 모습”이라는 평가가 나왔다.

한국 갤러리들 중에서 학고재갤러리는 상업적인 아트페어임에도 불구하고 민중미술가 신학철, 다큐멘터리를 기반으로 한 사진작가 노순택 등을 소개해 호평을 받았고, 국제갤러리는 백남준의 작품을 작가 최고가에 내놔 눈길을 끌었다. 

캐비넷 섹션에서 소개된 페데리코 헤레로(Federico Herrero)의 작품들.
▶한 건물 안에 수조원대 미술품…페어보다 경매에 몰린 대작들=작품 다양성 측면에서는 갤러리즈 섹션의 한 가운데 메인 부스들보다 주변 부스들이 돋보였다. 마닐라의 실버렌스(Silverlens) 갤러리가 출품한 가브리엘 바레도(Gabriel Barredo)의 움직이는 평면 조각 신작 ‘마담아담’(Madamadam) 앞은 작품 사진을 휴대폰에 담으려는 인파로 끊임없이 북적였다.

뉴욕·런던 스카스테드(Skarstedt) 갤러리에 걸린 카우스(KAWS)의 회화를 비롯해 베를린의 페레스 프로젝트(Peres Projects) 갤러리가 내놓은 도나 휴양카(Donna Huanca)의 퍼포먼스 페인팅 신작 ‘바디 빌더 롤라’(Body Builder LOLA), 그리고 싱가포르 야부즈(Yavus) 갤러리 전속작가인 1989년생 예오 카(Yeo Kaa)의 회화 연작까지, 강렬한 페인팅이 다수 눈에 띄었다. 불과 2~3년 전까지만 해도 단색조나 미니멀리즘 경향이 두드러졌던 것과는 대조적이었다. 

파리·브뤼셀의 나탈리 오바디아(Nathalie Obadia) 갤러리는 2017년 베니스비엔날레 필리핀관 참여 작가였던 마누엘 오캄포(Manuel Ocampo)의 회화를 내걸었다.

사실 아트페어보다 더욱 화려한 작품 라인업을 갖춘 건 경매 쪽이었다. 그랜드하얏트 호텔 1층에서 치러진 폴리옥션과, 홍콩컨벤션센터 5층에서 대대적인 프리뷰 전시를 연 소더비 경매다. 

5월 소더비 뉴욕 경매에 출품될 장 미셸 바스키아 작품 '살과 영혼'. [사진=김아미 기자]
특히 소더비는 오는 5월16일 뉴욕 경매에 내놓을 장 미셸 바스키아의 보기 드문 대작 1점을 홍콩에서 미리 선보였다. ‘살과 영혼’(Flesh and Spirit)이라는 제목이 붙은 1982-83년작으로, 높이 3.6m가 넘는 이 작품은 추정가가 우리 돈으로 300억원 대로 예상된다. 소더비는 이 밖에도 뉴욕 경매에 내놓을 잭슨 폴락, 피카소, 마네, 모네 등의 작품을 함께 전시했다. 

모네의 1896년작 'Matinée sur la seine'. [사진=김아미 기자]
중국 내수시장을 겨냥해 주로 중국 고미술품들을 선보이는 폴리옥션은 이번 봄 경매에 1,200여 점을 출품했다. 경매 추정가만 총 9억홍콩달러(약 1,214억원). 출품작 대부분이 높은 추정가를 웃도는 가격에 낙찰된다고 한다. 

페로탱갤러리에서 선보인 카우스(KAWS)의 작품. 전시에 나온 작품들은 이미 솔드아웃됐다고 한다.
▶홍콩 섬 곳곳에서 만나는 현대미술…미술여행의 다양성 더해=아트바젤 홍콩이 개최되는 시기를 전후해서 홍콩 섬 일대는 크고 작은 미술 전시들이 다채롭게 열렸다. 바젤이라는 빅 이벤트를 중심으로 홍콩 미술계 전체가 활기를 띤 모습이었다.

먼저 새로 생긴 H퀸스 빌딩을 보면, 하우저&워스(15~16층)는 지난해 베니스비엔날레 미국관 참여작가인 마크 브래드포드의 회화들로 채운 개인전을 열었고, 페이스갤러리(12층)는 일본작가 요시토모 나라, 탕컨템포러리아트(10층)는 중국 작가 아이 웨이웨이, 펄램갤러리(9층)는 이탈리아 엔지니어 출신 아티스트 아르칸젤로 사소리노(Arcangelo Sassolino), 화이트스톤갤러리(7~8층)는 미국 유리 공예가 데일 치훌리(Dale Chihuly), 데이비드 즈워너(5~6층)는 독일 사진작가 볼프강 틸만스(Wolfgang Tillmans)를 각각 개인전 형식으로 선보였다.

또 인근 중국농업은행빌딩에 위치한 화이트큐브(1층)는 영국 조각가 안토니 곰리 개인전을, 페더빌딩에 위치한 리만머핀갤러리(4층)는 쌍둥이 형제로 구성된 브라질 듀오 아티스트 오스게메오스(Osgemeos)의 개인전을 각각 열었다.

H퀸스 11층에 문을 연 서울옥션의 SA+도 새로운 공간에서 성공적인 첫 경매를 치렀다. 지난 3월29일 진행한 경매에서는 경매 참여자들 외에도 수많은 관중들로 발디딜 틈이 없었다. 

서울옥션 측에 따르면, 과거 대관 형식으로 진행했던 홍콩 경매에 비해 출품작 수 및 경매장 규모가 다소 축소됐음에도 불구하고 낙찰률 82%, 낙찰총액 100억원을 기록하며 예년과 비슷하거나 약간 웃도는 수준을 보였다. 

서울옥션 홍콩 경매 현장 모습. [사진=김아미 기자]
홍콩의 젊은 부호이자 아트 컬렉터인 애드리언 쳉이 이끄는 K11 파운데이션 역시 예년처럼 바젤 시기에 맞춰 전시를 열었다. 셩완에 위치한 코스코 타워(COSCO Tower)에서 ‘에메랄드 시티’(Emerald City)라는 주제로 선보인 기획전에서는 칼 청(Carl F. Cheng) 오스카 무리요(Oscar Murillo), 아제이 쿠리안(Ajay Kurian) 등 미술관 전시와 비엔날레 참여 작가들을 비롯한 20여 명의 다국적 작가들을 소개했다. 

아시아소사이어티홍콩의 로버트 인디애나 전과, 2019년 개관을 목표로 여전히 공사 중인 서구룡 문화지구 M+뮤지엄의 임시 파빌리온에서 진행된 홍콩 작가 삼손 영의 전시도 바젤 인파를 끌어들였다.

오래된 공장지구인 웡척항 일대에는 특색있는 갤러리들이 속속 들어서 있었다. 이 기간 로시&로시(Rossi&Rossi)갤러리는 2013년 아트선재센터 전시를 통해 소개된 바 있는 싱가포르 작가 히만 청(Heman Chong)의 개인전을 열었다. 이 밖에 페킨 파인아트(Pékin Fine Arts), 드 사르트(De Sarthe), 아트 스테이트먼트(Art Statement) 등 17개의 갤러리가 웡척항 일대에 자리잡고 도시 재생에 새로운 에너지를 불어넣고 있었다.

amigo@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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