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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너네 둘이 잘해봐”…부장님 그거 ‘성희롱’입니다
-직무 관련성ㆍ피해자의 성적 굴욕감 주요 고려 대상
-동성 상사의 성희롱도 인정

[헤럴드경제=고도예 기자] ‘농담이었는데 왜 이렇게 예민해.’ 직장 내 언어 성희롱 사건의 가해자로 지목되면 흔히 보이는 반응이다. 하지만 성희롱이 소송으로 이어지는 경우도 적지 않다. 법원은 피해자가 성적 굴욕감을 느꼈다면 정신적 피해를 배상하라고 판결한다.

6일 법조계에 따르면 현행법상 직장 내 언어 성희롱을 형사처벌 할 수 있는 규정은 없다. 피해자들은 민사 소송을 내 위자료를 지급받을 수 있을 뿐이다. 법원은 ‘남녀고용과 일ㆍ가정 양립지원에 관한 법률(남녀고용평등법)’에 규정된 직장 내 성희롱 개념을 토대로 손해배상 책임을 판단한다. 직장 내 지위를 이용하거나 업무와 관련해 다른 근로자에게 성적 굴욕감이나 혐오감을 주는 언동을 했다면 성희롱으로 인정돼 배상책임을 지게 된다. 


법원은 명시적인 성적 표현이 없었더라도 성희롱을 인정하곤 한다. 의정부지법은 지난해 8월 기혼자인 여직원에게 또다른 남직원을 지칭하며 “둘이 따로 만나 잘 지내봐라”라고 말한 직장 상사 오모 씨에게 300만 원의 배상 책임을 인정했다. 재판부는 피해 여직원 주장을 받아들여 상사의 발언을 성관계를 암시하는 내용이었다고 판단했다. 이어 “피해자는 유부녀로서 남편이 아닌 제3자와의 성관계를 암시하는 이야기 역시 성적 수치심을 유발할 수 있다”며 이 발언을 성희롱으로 봤다. 오 씨가 팀원들의 카카오톡 단체 채팅방에 여러 차례 음란동영상 사이트 링크를 보낸 것도 성희롱으로 인정됐다.

법원은 발언 직후 피해자가 어떤 반응을 보였는지를 주요한 고려대상으로 삼는다. 하지만 피해자가 곧바로 문제를 제기하지 않았더라도 해당 발언은 성희롱으로 인정될 수 있다.

새내기 서울시 공무원이었던 A씨는 지난 2013년 8월 회식 자리에서 선배에게 “모텔가자”라는 공개 발언을 들었지만 즉각 대응하지 못했다. 또다른 선배가 같은해 11월 한 여성 가수의 누드 사진 유출에 관한 이야기를 하던 중 “원본 있는데 보내줄까”라고 말했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이 여성은 성희롱으로 고통받아 결국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14부(부장 이상윤)는 지난해 6월 A씨의 유족이 가해자로 지목된 공무원들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선배 공무원들의 발언을 성희롱으로 결론냈다. 재판부는 “직장에서 지속적인 관계 유지를 위해 동료의 성희롱 발언에 대해 일일이 문제를 제기하기 어려운 사정을 고려할 때 즉각 문제제기 하지 않았다고 해서 이같은 발언을 사회 통념상 일상적으로 허용되는 농담이나 호의적인 언동이라고 볼 수 없다”고 설명했다. 선배 공무원들과 서울시는 공동해서 1570만 원의 배상책임을 지게 됐다.

법원은 동성(同姓) 간 성희롱도 인정하고 있다. 신입 여성 직원에게 성희롱성 발언을 한 여성 직장 상사도 지난 2015년 서울중앙지법 판결로 500만 원의 위자료를 물게 됐다. 이 상사는 첫 출근한 신입 여직원에게 “애기 낳은 적 있어? 아니 무슨 잔머리가 이렇게 많아?”라며 매무새를 지적했다. 또 목덜미의 아토피 자국을 보며 “어젯밤 남자랑 뭐했어? 목에 이게 뭐야?”라고 물었다. 재판부는 “사회통념상 일상생활에서 허용되는 단순한 농담 또는 호의적인 언동의 범주를 넘어 굴욕감이나 모욕감을 느끼게 함과 동시에 인격권을 침해한 위법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물론 법원이 성적 굴욕감을 느꼈다는 피해자 주장만으로 성희롱을 인정하는 건 아니다. 법원은 해당 발언이 피해자와 같은 처지에 있는 평균적인 사람에게 굴욕감을 줄 수 있는가 여부를 두루 검토한다. 당사자들의 관계, 발언 장소나 상황, 목격자들의 진술을 종합해 판단한다.

이같은 이유로 서울중앙지법 민사75단독 김진철 판사는 지난달 19일 남도장학회 여직원 A씨가 상사 B씨 등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원고패소 판결했다. A씨는 상사인 B씨가 지난 2015년 가을 야유회 당시 자신을 원장 옆자리로 불러 술시중과 음식시중을 들게하는 등 성희롱을 했다고 주장했다. 자신이 핫팩 사용법을 알려주자 가슴을 빤히 쳐다보면서 “가슴에 품고다니면 따뜻하겠다”며 희롱했다고 부연했다. 인권위는 A씨의 진정을 받아들여 지난 2016년 1월 B씨에게 특별 인권교육을 받으라고 결정했지만, 법원 판단은 달랐다. 김 판사는 “회식은 많은 직원이 참석한 공개적인 행사였고 핫팩 관련 발언도 공개적인 장소에서 했다”며 “그 자리에 함께 있던 또다른 여성직원도 성적 불쾌감을 느끼지 못했다고 증언하고 있다”고 짚었다. 이어 “객관적으로 A씨와 같은 처지에 있는 평균적인 사람에게 성적 굴욕감 내지 혐오감을 느낄 정도의 말이나 행동으로 인정하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yeah@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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