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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美 압박에 강경대응 고맙지만…” 실효성 놓고 고개 갸웃하는 재계
문재인 대통령이 미국의 통상 압력에 대해 연일 강수를 두며 공격적 태세로 전환했다. 안보와 통상은 별개라는 점도 분명히 했다. 세계무역기구(WTO) 제소 무용론에 대해선 ‘눈에는 눈’ 전략을 구사하겠다고 했다. 청와대를 위시한 정부의 강경 대응에 기업들은 ‘고마운 일’이라고 전했다. 다만 대책이 빠진 ‘대책회의’는 무용하고, 효과는 미지수인 대응은 각 기업의 통상업무 담당자만 힘들게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통상’ 컨트롤타워 된 靑=문 대통령이 ‘전열’을 정비해 대미 통상 기조 변화를 시사한 시점은 지난 19일이다. 설 연휴가 끝난 직후인 월요일, 문 대통령은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불합리한 보호무역조처에 WTO 제소 및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위반 여부 검토 등 당당하고 결연하게 대응하라”고 주문했다. 이는통상문제는 주무부처(산업통상자원부 통상교섭본부)가 처리한다는 기존의 입장과는 다른 행보였다. 앞으로 통상 컨트롤타워를 문 대통령이 직접 맡겠다는 의지로도 해석됐다.

시점상으로도 적절했다. 설 연휴 기간이었던 지난 16일(현지시간) 미국 상무부가 한국의 철강 제품에 ‘무역 확장법 232조’를 발동해 수입 물량을 대폭 제한하거나, 최소 53%의 관세 폭탄을 안기는 조치를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에 제안했기 때문이다. 한국을 겨냥한 무역 규제가 도미노처럼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던 시점이었다.

청와대 홍장표 경제수석의 20일 기자간담회 역시 문 대통령의 의중이 실려있다. 홍 수석은 “(미국에) 보복 관세를 취할 길이 열려있다”고 말했다. 미국이 WTO의 지시를 이행치 않을 경우 한국 역시 미국이 한국으로 수출하는 제품에 대해 보복 관세를 물릴 수 있다는 의사를 밝힌 것이다. 이는 WTO 제소 무용론에 대한 답변 차원에서 나왔다. 안보와 통상은 별개라는 판단도 문 대통령이 직접 통상 문제를 챙기겠다는 의지를 드러낸 원인이다. 예컨대 트럼프 대통령은 후보시절부터 한미FTA를 가리켜 ‘재앙’이라고 말했다. 문 대통령 취임 전부터 이미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이 그린 로드맵 대로 동맹에 대한 무역 압박을 시사한 것이다.

‘동맹국과의 무역전쟁’을 우려하는 미국 내 목소리에도 불구하고 트럼프 대통령은 취임 이후엔 미국무역위원회(ITC)를 통해 한국산 세탁기에 대한 세이프가드를 발동했다. ITC는 지난해 말 한국 반도체에 대한 특허침해 조사에 착수한 상태다. 삼성과 LG 등 TV업계도 초조하다. 트럼프 대통령은 최근 “미국 TV가 대부분 한국산인 것은 한국의 덤핑 때문”이라 말했다. 가전·철강·반도체 등 미국으로 수출하는 광범위한 한국산 제품들이 미국의 전방위 무역보복 ‘사선(射線)’에 오른 것이다.

▶업계 “고맙지만…” 실효성 의문 제기=미국의 무역 보복에 대해 정부가 ‘국익 최선’을 내세우며 적극성을 보이자 기업들은 일단 반기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한국 기업들이 미국에서 활동하는 사안에 대해 활동 반경을 넓힐 수 있다는 점에선 분명 도움이 된다”면서도 “산자부와 외교부, 부처 회의가 있는데, 각 기업 통상 담당자들이 가면 회의라기 보다는 의견 개진에 머문다. 사실 정부가 할 수 있는 것이 많지 않기도 하다”고 말했다.

실효성에 대한 문제제기도 있었다. 한 업계 관계자는 “WTO 제소를 하면 최소 2년이 걸린다. 그걸 기다렸다가 장사를 다시 재개하겠다고 생각하는 기업은 없을 것”이라며 “결과가 나올 때엔 이미 업계 판도가 다 변해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미국은 2013년 2월 삼성전자와 LG전자가 한국에서 만들어 수출한 세탁기에 각각 9.29%, 13.2%의 반덤핑·상계 관세를 부과했는데 한국 정부는 같은 해 8월 WTO에 이 사안을 제소했고 2016년 9월 최종 승소했다. 규정에 따르면 미국은 지난해 12월 26일까지 WTO 판정을 이행해야 했지만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한국은 WTO에 미국 제품에 대한 보복관세 부과 허용을 신청을 해둔 상태다. 현재는 중재 기간중이며, 결론은 몇달 뒤에야 나게 된다. 재계 관계자는 “내부 보고에 정부 회의 준비까지 기업 통상담당자만 바빠진다. 공무원들도 진짜 관심 보다는 ‘회의를 했다’는 보여주기에만 관심이 있었다”고 설명했다. 

홍석희 기자/h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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