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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양심적 병역거부…18개월 수감변호사 재등록 ‘두번째 싸움’
“문제의식은 있었지만 설마 감옥을 갈까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고시에 합격하거나 연수원을 수료할 때까지는 대체복무제가 입법될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사법시험 합격자 중 첫 양심적 병역거부자로 유명해진 백종건(33) 변호사는 주변에선 ‘이단아’로 꼽혔다. 총을 들지 않는 여호와의 증인 남성 신도들에게 감옥이란 성인이 되면 가야하는 관문이었다. 하지만 병역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백 변호사는 재판에서 선처를 부탁하지 않았다. 오히려 6년 동안 재판을 받으며 적극 무죄 주장을 펼쳤다. 감옥은 그에게 익숙했지만 당연히 가야하는 곳은 아니었다. 그는 결국 1년 6개월의 실형을 확정받고 수감된 뒤 지난해 5월 출소했다. 

△부산 출생△대입 검정고시 합격
△제 50회 사법시험 합격△부산대학교 법학과 졸업△사법연수원 수료(40기)△병역법위반 혐의 불구속 기소△1년 6개월 실형 확정△출소

감옥을 벗어났지만 보이지 않는 창살은 여전했다. 대한변호사협회로부터 현행법에 따라 향후 5년 동안은 변호사로 재등록할 수 없다는 통보를 받았다. 수감생활이란 과제를 마친 백 변호사는 그렇게 변호사 등록을 위한 두 번째 싸움을 시작했다. 변협의 결정을 취소해달라며 법무부에 이의 신청을 제기했고, 이마저 받아들여지지 않는다면 법원에 소송을 낼 계획이다.

최근 서초동의 한 법률사무소에서 만난 백 변호사는 두 권의 책이 자신의 삶을 바꿨다고 했다.

손때가 묻은 2001년도 초판본을 사무실 책장에서 꺼내보였다. <양심과 사상의 자유를 위하여(조국 민정수석 저)> <칼을 쳐서 보습을(김두식 교수 저)>였다. 열아홉 수험생 시절 머리를 식히려 읽었던 책이 인생을 뒤흔드는 전환점이 됐다고 했다. 양심적 병역거부도 권리라는 조국 교수의 표현이 머릿속을 맴돌았다. 종교적 신념에 따라 병역을 거부해도 감옥에 가지 않고 대체복무를 하는 나라들이 있다는 걸 처음 알았다. 그때부터 ‘감옥을 꼭 가야할까’라는 생각이 백 변호사의 마음에 자리잡았다.

법대생 시절 ‘양심적 병역거부 첫 무죄 판결’ 보도를 접했다. 고시생이었던 2007년 참여정부에서 대체복무제를 도입하겠다고 발표했다. 백 변호사는 자신의 병역 문제가 곧 해결될 것이라 믿었다. 그런데 사법시험에 합격한 2008년 이명박 정부는 대체복무제 도입을 전면 취소했다. 희망은 순식간에 절망으로 바뀌었다. 미래가 불투명해지자 연수원 시절 반복적으로 슬럼프가 찾아왔다. 결국 연수원을 수료한 직후 입영 통지서를 받아들었고, 병역을 거부하면서 장기간 재판을 받게 됐다.

피말리는 재판에 비해 감옥 생활은 순탄했다. 감옥 안에서 사실상의 대체복무를 했다고 생각한다. 병역거부자들은 교도소에서 일꾼으로 통했다. 수감되는 재소자들의 담배나 라이터를 압수해 교도관에게 전달했다. 행정업무도 했다. “지난해 병역거부 재판에서 선고가 이뤄지지 않아 수감자 수가 큰 폭으로 줄어드니 교도소 관계자가 제게 ‘일할 사람이 줄어 큰일이다. 병역거부자들에게 우리 교도소로 오라고 하라’며 농담도 했습니다. 감옥에서는 병역거부자들을 죄인이 아닌 대체복무자로 여기고 있다고 느꼈습니다“

장기간 지치지 않고 변호사 재등록이란 싸움에 나설 수 있는 원동력을 묻자 백 변호사는 한 장의 사진을 꺼내들었다. 2013년 찍은 아내와의 결혼식 사진이었다. 백 변호사와 아내 뒤로 수십 명의 청년들이 활짝 웃고 있었다. 지난 2011년부터 수감될때까지 무료 변론했던 양심적 병역거부자들이었다. 이들이 먼저 백 변호사를 찾아왔다. 무죄를 주장하고 싶다고 했다. 백 변호사는 실형을 선고받고 감옥에 간 일부 피고인들에게 한 주에 한 통 씩 인터넷 편지를 쓴다. “저는 제가 그들을 도왔다고 생각했는데 시간이 지나고 보니 그들이 제가 지치지 않게 힘을 준 것 같습니다”

최근 백 변호사의 관심은 헌재 결정에 쏠려있다.

헌법재판소는 병역거부자들이 ”국회가 대체복무제를 입법하지 않는 건 위헌“이라며 낸 헌법소원 사건을 장기 미제사건으로 두고 심리하고 있다. 법조계에서는 헌재가 조만간 사건의 결론을 낼 것이란 관측이 우세하다. 지난해 전국 법원에서 양심적 병역거부 무죄 판결이 44건 쏟아지고 있고, 수백명의 병역거부자들이 헌재 결정을 기다리는 상황을 헌재가 우선 고려할 것이라는 관측이다. 헌재가 국회의 대체복무제 입법이 필요하다며 헌법불합치 결정을 한다면 전국에서 재판을 받고 있는 600여명의 병역거부자들은 무죄 판결을 받게 된다. 백 변호사가 변호사로 재등록할 길도 열린다. “아직 자녀가 없지만 대체복무제가 입법돼서 제 아들만큼은 저와 같은 고민을 다시 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저희 아버지도 아마 이런 생각을 하셨겠죠” 고도예 기자/yea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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