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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비백제 중심 화지산에서 대규모 산정 대지 발견
상류층 유물 대거발굴, 중요시설터 추정
별궁 아궁지, 망해정 비밀 풀 단서 잡아

[헤럴드경제=함영훈 기자] 백제의 사비시대는 지금의 중국 동북부 부여 고토의 회복이라는 원대한 꿈을 꾸면서 들불처럼 일었났다가 나당 연합의 국제정치 역학 구도의 변화 속에 아쉽게 스러진 기간을 지칭한다.

538년 사비(부여) 천도는 성왕의 자주성과 과단성이 돋보이는 정치행보였다. 왕권을 강화하고 서해 건너 부여의 고토회복을 꿈꾸며 국호를 남부여(南扶餘)로 개칭해 부여의 전통을 강조했다. 주지하다시피 백제 개국의 어머니 소서노는 부여왕족의 딸이다.

남부여는 비교적 ‘착한’ 중국 남쪽 왕조(남조)와 빈번한 교류를 했으며, 일본에 선진문물을 전수하면서 동맹의 확장을 꾀했다.

문헌으로만 전해지는 망해정은 황해 너머를 보기 위한 사비시대 임금들의 의지였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무창포 해안에서 35~40㎞나 떨어져 있는 부여 화지산에서 과연 서해바다를 볼 수 있었을까.

망해정(望海亭)이라는 이름의 정자가 있던 곳이다. 화지산은 높지 않은 산인데 과연 바다가 보였을까.

부여 화지산 정상부 서쪽에서 발견된 대규모 대지

화지산에 있었다는 별궁인 이궁지(異宮地)은 과연 어떤 곳이고, 왜 만들었을까. 한성과는 별도로 국방력 강화를 꿈꾸던 조선 정조의 화성과 비슷한 것일까.

화지산은 들불처럼 일어나 촛불처럼 버티다 스러진 사비백제의 비밀을 품고 있는 곳이다.

이 사비백제의 비밀을 파헤치기 위한 문화재청, 부여군, 재단법인 백재고도 문화재단의 노력이 본격화했다. 문화재청은 부여 화지산유적(사적 제425호) 발굴조사를 통해 화지산 산꼭대기 서쪽 경사면에 백제 사비기 건물지의 흔적과 대규모 대지조성 시설이 확인됐다고 26일 밝혔다.

부여 화지산유적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부소산성, 관북리유적 등과 함께 백제 사비기의 중요한 유적이다. 예로부터 이궁지, 정자인 망해정과 어정(御井, 임금이 마시는 우물)이 있었다고 전해져 백제 사비기의 중요 시설이 존재할 가능성이 제기돼 왔다.

재위 초ㆍ중기, 용맹했던 의자왕이 왕궁 남쪽에 망해정을 세웠다는 기록이 삼국사기에 나타나 있다.

화지산유적에서는 2000년 국립부여문화재연구소가 시행한 긴급발굴조사에서 초석 건물지, 벽주(壁柱) 건물지, 기단유구, 목책시설 등 다양한 백제 시대 유구가 확인됐다.

사비백제의 상류층 주택에서 주로 발견되는 연가(煙家)와 연통(煙筒)토기가 출토돼 기와를 사용한 격이 높은 건물이 있었을 것으로 추정됐다. 연기를 바깥으로 빼주는 것이 연통이고, 비나 눈이 들어가지 못하게 막는 것이 연가이다.

부여 화지산 사비백제 건물터

이번 4차 조사에서는 화지산 정상부와 남서쪽 사면부 일대에 대규모 대지조성시설(건축물을 축조하기 위해 흙을 되메우는 시설)과 백제 시대 초석 건물지 등의 유구를 확인할 수 있었다. 크고 장대한 뭔가가 있었다는 점을 말해준다.

발굴연구진은 이곳에서 통일신라 시대 화장묘와 고려부터 조선 시대에 이르는 토광묘들도 확인했고, 백제 개배(蓋杯, 뚜껑이 있는 접시)조각, 통일신라 화장묘에서 사용했던 완(질그릇)과 뼈단지(장골용기), 고려의 도자기 조각들도 발굴했다. 화지산 일대가 백제 시대부터 조선 시대까지 여러 시대를 거치면서 꾸준히 사용되었던 공간임을 알 수 있었다고 전했다.

문화재청 관계자는 “화지산유적 일대는 인근의 궁남지, 군수리사지, 동남리사지와 함께 백제 사비도성과 관련한 중요 시설물이었을 것으로 추정되는 중요 유적이지만 그 가치에 비해 아직 고고학적 조사가 부족한 상황”이라며 “이번 조사를 통해 전반적인 유구 존재를 확인한 만큼, 2018년에는 정밀발굴조사에 더욱 박차를 가하여 사비백제의 양상을 파악할 수 있는 중심 유적을 발굴해낼 계획”이라고 밝혔다.

abc@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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