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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도전 또 도전…‘혁신의 아이콘’으로 달리다
운동선수로 체득한 본질탐구정신 내면화
통신 -> 식품 -> 의료 넘어 교통전문가 변신
김태호 서울교통공사 사장의 ‘큰그림경영론’


“교통 쪽은 한 번도 있지 않은 사람이지 않습니까!”

2014년 8월 서울시의회 회의실이 시끄러워졌다. 몇몇 시의원이 서울도시철도공사 신임사장 이력을 보고 의혹을 제기한 것이다. 그럴 법도 했다. 그의 이력서에는 통신회사 KT부터 식품업계 하림, 차병원그룹 등 교통과는 전혀 관계 없어보이는 직업들만 나열돼 있었기 때문이다.

국내 최대 지방 공기업이면서 이제 세계 3위권의 교통기관으로 거듭난 서울교통공사의 책임자 김태호(57) 사장의 데뷔전은 이처럼 시끌했다. 하지만 ‘문외한’이라고 지적받던 그는 올해 5월 ‘적임자’란 수식어와 함께 서울교통공사로 입성했다.

어떤 기운이 그를 이끌었을까. 지난 27일 서울 성동구 용답동에 있는 서울교통공사 본사에서 그를 만났다.

김태호 서울교통공사 사장이 생각하는 지도자는 ‘큰 그림’을 볼 줄 알고 도전을 망설이지 않는 사람이다. [제공=서울교통공사]

경영자는 큰 그림을 보는 사람=“사장이란 그 업계의 특성을 알고, 이에 따른 경영을 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교통이란 게 무엇입니까. 사람과 사람을 이어주는 데 목적이 있습니다. 통신, 식품, 의료…. 그간 도전한 일들도 큰 그림으로 보면 결국 사람과 사람을 이어주는 일이었습니다. 저는 그 본질에 대한 경험이 있는 만큼 교통도 이해하는 데 긴 시간이 걸리지 않을 것이라고 봤습니다.”

서울교통공사 직원은 모두 1만6000명 가량이다. 사장은 이 안에서 지식으로 1등을 하는 사람이 아니다. 김 사장이 생각하는 서울교통공사 사장은 넓은 시야로 직원ㆍ승객 모두 편히 있을 수 있도록 판을 짜고, 혁신을 일으키는 사람이다.

김 사장은 당초 이런 생각으로 서울도시철도공사에 들어왔고, ‘구의역 사고’ 이후 서울메트로의 구원투수가 됐다. 미뤄져만 왔던 양공사의 통합도 이끌었다.

김 사장은 이 날도 바로 현장으로 가도 될 법한 ‘노타이’ 차림으로 근무 중이었다. 모든 직원들을 알고자, 또 그들 이야기를 가감없이 듣고자 고민했던 그는 직원, 승객 등 누구와도 거리낌 없이 마주하기 위해 이런 복장을 선호한다고 했다.

“몇몇 사람들은 KT 혁신기획실장이었다는 이유로 저를 통신 전문가라 칭합니다. 사실 그때도 저는 통신의 본질을 파악하고 통신이 뛰어들 새 영역을 찾기 위해 더 노력했습니다. 저는 통신선로 구축방법도 아직 모릅니다. 하지만 이 태도로 인해 저와 KT는 함께 성장할 수 있었습니다.”

실제로 김 사장은 교통업계에 뛰어들기 전부터 이런 마음가짐으로 승승장구했고, KT 혁신기획실은 ‘통신선로 구축방법’도 잘 모르는 실장의 지도 아래 사내 심장부 중 하나로 자리 잡았다. 본질 탐구와 도전 정신으로 요약되는 그의 경영 철학은 어떤 책이나 강연으로 익힌 게 아니었다. 어린 시절부터 산전수전 다 겪으며 온몸으로 익힌 내용들이었다.

운동선수 경험을 밑거름으로=“어릴 적엔 안 한 운동이 없습니다. 중학생 때 축구, 농구, 야구는 물론 육상까지 학교 대표 자격으로 출전했으니까요.”

사실 김 사장만큼 많은 분야에 있어 본 사람은 드물다. 지방에서 학창시절을 보낸 그는 원래 교내 운동선수였다. 테니스를 3일 배우고는 곧장 대표선수로 발탁되던 혈기왕성한 때였다.

김 사장이 가장 좋아한 운동은 유도였다. 이미 동네에선 통쾌한 ‘업어치기’로 유명했던 그는 유도만큼은 누구보다 잘한다고 자부했다. 도내 같은 체급 선수들을 모두 한판승으로 이긴 그는 부푼 꿈을 안고 전국 대회에 출전했다. 그리고 그 때 처음 좌절을 맛보았다.

“지고 또 졌습니다. 우물에서 벗어나니 아무 것도 아니었습니다. 작년 1등 선수가 올해 새로운 선수에게 지는 모습도 봤습니다. 영원한 1등이란 없었습니다. 이 때 생각했죠. 판 위에서 노는 선수도 좋지만, 애초에 그 판을 짜는 사람이 돼도 좋겠다고 말입니다.”

큰 그림을 보며 본질을 탐구하는 연습은 이 때부터 시작됐다. 운동은 깔끔하게 포기하고 공부에 나선 시점이다. 기초 수학공식부터 다시 봐야 했지만, 그간 쌓은 체력을 바탕으로 3년을 밤새 공부했다. 그는 몇 년 후 운동선수가 아닌 경영서적을 들고 도서관을 드나드는 공대생이 됐다.

김 사장은 도전 정신 또한 각종 운동에 임하면서 제 것으로 만들었다. 축구에서 농구, 농구에서 유도로 종목을 바꾸는 동안 새로운 환경 속에서도 지난 경험들은 어떻게든 도움을 준다는 점, 버티면 살아남는다는 점을 배웠다는 김 사장은 “모든 건 두려움만 극복하면 되는 일이었다”고 설명했다.

고민하고…또 도전하고=KT를 첫 직장으로 둔 건 기왕이면 나랏일을 돕겠다는 호기에서 비롯됐다. 회의 시간만 되면 눈 앞 업무만큼 통신의 본질도 탐구해야 한다고 강조하는 김 사장은 경영진의 눈에 띌 수밖에 없는 위치였다. 20여년 재직 동안 혁신기획실장, 상무 일을 하며 그는 어느 순간 ‘혁신의 아이콘’이 돼 있었다.

“딱 그때 쯤 제 인생에도 혁신이 필요하다고 판단했습니다. 식품업계 하림으로 뛰어들어 상무가 됐습니다. 적응할 수 있을 것이라고 본 제 확신이 맞았습니다. 소 한 마리가 어떤 영양소를 얼마나 갖고 있는지는 몰랐지만, 식품업계의 본질을 탐구한 끝에 지금 풀어야 할 문제가 무엇인지는 도출할 수 있었습니다.”

2010년 8월. 얼마 전만 해도 통신회사 상무였던 사람이 회의실에 앉아 수입 돼지고기에 맞설 판매 전략을 구상하고 있다. 우스갯소리로 들리지만 이는 김 사장의 실제 경험이며, 당시 식품업계 종사자 대부분이 외면하던 문제를 선제적으로 끄집어내 답을 찾던 과정이기도 했다. 감각을 인정받은 그는 2012년 1월 차병원그룹 본부장을 제안받아 새 도전에 나섰고, 부사장에 이어 차병원그룹 (주)차케어스 사장까지 올랐다. 이 또한 차병원그룹에 들어온 지 불과 1여년 만에 일이었다.

김 사장은 “끊임없이 성과를 낸 건 어떤 회사에 있든 그 본질을 탐구하는 데 게을리하지 않았기 때문”이라며 “그간 해 온 모든 직업들의 공통된 본질은 결국 ‘사람과 사람을 잇는 일’이었다고 최종 결론을 내린 것도 그때 쯤이었다”고 했다.

서울교통공사 CEO가 되기까지=“서울도시철도공사 사장도 잘해낼 것이란 믿음으로 도전했습니다. ‘이음’이라고 하면 교통이 바로 떠오르지 않습니까.”

김 사장이 당시 박원순 서울시장이 찾던 서울도시철도공사 사장의 적임자였다는 건 그 말고는 모두 알던 일이었다. 박 시장은 틀에 박혀있지 않은 혁신가를 생각했다. 김 사장의 프로필을 본 박 시장은 ‘이 사람이 딱이다’라며 승인했고, 서울시의회도 어떤 ‘수상한 점’도 찾지 못해 임명안에 동의했다. 비전문가가 아니냐는 지적은 금세 가라앉았다. 사람과 사람을 원활히 이어야한다는 본질 아래 취임 1년도 안 돼 5~8호선 내 전동차 등 고장건수를 크게 줄이고, 고장 수리 등 조치시간도 눈에 띄게 단축시켜서다.

김 사장은 지난해 5월 ‘구의역 사고’ 이후 서울메트로 사장 제의를 받았을 때, 다른 적임자가 없다면 가겠다고 전했다. 사실 서울메트로는 창사 이래 최대 위기를 맞은 상황으로, 쉽지 않은 선택을 한 것이다. 취임 직후 그는 조직안정화를 이끌면서 문제를 잘 봉합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위축된 직원들을 모아 ‘지나간 일은 어쩔 수 없고, 만성 적자도 어쩔 수 없다. 기본으로 돌아가 교통기관으로 할 일을 하자’고 말하며 운영 방침을 정시성에서 안전성으로 바꾼다고 선언했습니다. 데이터를 통해 우리가 매번 나아지고 있다는 걸 입증시켰습니다. 그러면서 함께 준비한 게 양공사의 통합, 즉 서울교통공사 설립건이었습니다.”

지난 5월 양공사 통합이 되기까지 지난한 과정이 이어졌다. 서울시는 물론 노동조합과도 하루 걸러 논쟁이 계속됐다. 그가 볼 때 통합은 진작 이뤄졌어야 했다. 지하철을 서로 다른 기관이 나눠 운영할 때 발생하는 혼란으로 인한 피해는 고스란히 시민 몫이었다. 교통이면 당연히 사람과 사람을 원활히 이어줘야 하며, 이를 위해서는 일원화된 시스템이 절실했다.

“현재 구조와 재정여건 상 통합으로도 적자, 노후 장비 문제 등은 즉각 해결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양공사가 노하우를 공유하면 업무효율은 높아지고, 이로 인한 불필요한 지출과 시민 불편은 앞으로도 계속 줄 것입니다.”

“혁신은 계속…호흡은 길게”=김 사장은 이제 본질에 충실한 방향에서 혁신을 진행해야 할 때라고 보는 중이다. 양공사를 통합할 때 새 이름을 서울‘교통’공사로 지은 점도 그 이유 때문이다.

첫 단계로 마을버스 운영사업이 검토되고 있다. 마을버스 운영사업은 현재 서울시와 협의 중이다. 트램(노면전차) 도입도 거론된다. 그의 뜻이 모두 이뤄질 시, 서울교통공사는 지하철 기관이 아닌 교통 기관으로 제 이름을 찾는 것이다.

김 사장의 좌우명은 ‘호흡을 길게 가져가자’는 문장이다. 당장 닥친 일보다도 큰 그림을 보자는 뜻이다. 그는 이 날 “분명한 생각을 지침 삼아 방향만 확실히 나간다면 속도는 중요하지 않다”며 “저도, 서울교통공사도 이런 신념 아래 매번 새로운 도전을 해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대담=이진용 기자/jycafe@heraldcorp.com

정리=이원율 기자/yul@heraldcorp.com


김태호 사장이  걸어온 길

▶1979년 마산고등학교 ▶1983년 서울대학교 산업공학(학사) ▶1985년 서울대학교 산업공학(석사) ▶1998년 미국 Texas A&M 대학교 산업공학(박사) ▶1986~2009년 KT 혁신기획실 실장·상무 ▶2010~2011년 하림그룹 상무 ▶2012~2013년 4월 차병원그룹 본부장·부사장 ▶2013~2014년 차병원그룹 (주)차케어스 사장 ▶2014~2016년 서울도시철도공사 사장 ▶2016~2017년 서울메트로 사장 ▶2017년~현재 서울교통공사 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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