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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내일은 마약퇴치의 날②]“한국, 마약청정국 아냐…처벌 위주 마약정책은 시대착오”
-‘약물 엘리트 코스’ 출신 신용원 목사
-재활 공동체 운영…“거쳐간 중독자 수백명”
-“환경 중요…마약, 힘들지만 끊을 수 있다”



[헤럴드경제=김진원 기자]“야! 너 왜 저번 주에 안 왔어.”

백발의 짧은 머리를 한 신용원(53) 목사는 한 마디 툭 던졌다. 오른쪽 위 송곳니부터 절반가량이 무너져 내렸다. 젊어서 했던 마약의 후유증이다. 이가 성치 않아 밥은 왼쪽으로 몰아 씹는다. 주말 예배를 마치고 점심을 먹다 한 마디 들은 신자는 머리를 긁적이며 다른 할 일이 있었다고 우물댄다. 신 목사는 “다음부터는 빠지지 마라. 콱!”이라며 소리를 질렀다
마약 재활 공동체 ‘소망을 나누는 사람들’ 신용원 목사(사진 가운데 백발)가 지난 겨울 김장을 하고 있다. [사진=소나사 홈페이지 캡처]

마약 재활 공동체 ‘소망을 나누는 사람들’의 신 목사는 스스로를 “약물 엘리트 코스를 밟은 약쟁이”라고 소개했다. 본드에서 시작해 필로폰까지 손댔다. 그래서 마약에 손을 댄 사람들의 심정을 이해한다.

아홉 살에 아버지를 여의었다. 홀어머니 밑에서 가난하게 자랐지만 머리는 좋았다. 학생회장도 했다. 전국에 손꼽는 명문고에 진학했다.

그러나 신 목사는 “아버지 없는 자식이랑 어울리지 말아라”는 부잣집 친구 어머니의 말에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입었다. 이후 잘 사는 집 아이들만 골라 괴롭혔다. 복학과 퇴학을 반복하다 폭력조직에 몸을 담았다. 우울한 현실에 본드를 불기 시작했다.

1994년 조계종 폭력사태에 개입해 지명 수배를 당했다. 도피생활을 하다 경기도의 한 기도원에 몸을 숨겼다. 철물점에 빨랫줄을 사 목을 매기 직전 성경을 손에 잡았다. 전에 느껴본 적 없는 황홀경을 경험했다. ‘약쟁이’ 신용원이 목사 신용원으로 거듭나는 순간이었다.
신용원 목사가 18일 주일 예배를 마친 뒤 인근 카페에서 인터뷰하고 있다. [사진=김진원 기자/jin1@heraldcorp.com]

교도소에서 출소해 신학대 생활을 마쳤다. 같은 처지인 사람을 돕고자 교도소를 찾았다. 2001년 신혼집에서 예배를 보기 시작했다. 인천 모래내 시장에 자리를 잡았다. 마약 중독자가 많았기 때문이다.

“흔히 우리나라 마약 청정국이라고 하죠. 그런데 제가 봤을 때는 전혀 아닙니다. 이곳 인천하고 부산 같은 항구 도시 살펴보면 밝혀지지 않은 마약 중독자 엄청 나옵니다.”

신 목사는 사람들의 재활을 돕고자 떡 공장과 순댓국집을 차렸다. 한 때 공중파 방송 3사의 맛집 프로그램에 소개될 정도로 인기를 끌었다. 그러나 마약을 했던 사람들이 가게를 운영한다는 사실이 알려지자 발길이 뚝 끊겼다.

신 목사는 “현재 우리나라의 마약 정책은 처벌 위주입니다. 투약자를 찾아내서 처벌하는 게 목적이죠. 완전히 시대착오적인 정책입니다. 이젠 치료와 재발을 막는 데 주력해야 합니다”라고 했다.

신 목사를 거쳐 간 약물중독자는 못해도 수백 명이 넘어간다. 떡 만드는 기술을 배웠던 사람들은 부산, 대구 등으로 자리를 옮겨 자활을 시작했다. 일 년에 한두 번 정기적으로 모여 근황을 나누기도 한다.

앞으로 계획에 대해 물었다.

“마약을 끊으려면 내면의 문제도 중요하지만 생활환경의 영향이 더 큽니다. 전에 같이 마약을 했던 사람들과 어울리거나, 돈을 벌기 위해서 마약에 다시 손을 대는 일도 있기 때문이죠. 저는 소나사 같은 공동체를 서울, 부산, 대구와 같은 곳에 세워나갈 겁니다. 일자리와 가정이 생기면 마약, 끊을 수 있습니다.”

jin1@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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