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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강남역 살인 1년①] ‘아직도 화장실이 무서운 그녀들’…CCTVㆍ안심벨은 없었다
-남녀공용화장실 여전히 ‘안전 사각지대’
-분리설치 의무화 담은 개정안은 낮잠

[헤럴드경제=이현정ㆍ박로명 기자] 15일 오후 9시께 서울 마포구 도화길의 한 상가 건물. 해가 지자 노래방과 호프집을 방문하는 손님들로 북적였다. 대부분 취기가 오른 손님들로 일부는 만취한 듯 몸을 휘청거렸다. 한 남성이 몸을 비틀거리며 1층과 2층 계단 사이에 위치한 화장실을 찾아갔다. 문이 잠겨있자 남성은 차례를 기다렸다. 곧이어 화장실에서 나온 여성이 남성을 발견하고는 당황해하며 황급히 자리를 피했다. 화장실은 여성용 변기와 남성용 변기가 한 곳에 있는 남녀 공용화장실이었다. 화장실 앞 복도에는 CCTV는 커녕 안심벨이나 출입문의 비밀번호형 잠금장치도 없었다.

무고한 20대 여성을 숨지게 한 강남역 살인사건으로 공중 화장실의 안전 문제가 대두된지 1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많은 건물의 화장실은 범죄에 노출되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강남역 살인사건으로 공중 화장실의 안전 문제가 대두된지 1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많은 건물의 화장실은 범죄 사각지대에 노출되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사진=박로명 기자/dodo@heraldcorp.com]

당시 사건이 발생했던 건물의 남녀 공용화장실은 남녀 화장실이 분리 설치됐고 경찰을 출동시킬 수 있는 안심벨도 설치됐다. 그러나 공중 화장실 대다수는 여전히 분리되어 있지 않았다. 일부는 비밀번호형 잠금장치가 설치되어 있긴 했지만 안심벨과 CCTV가 없는 곳도 대다수였다.

공중 화장실의 안전이 개선되지 않으면서 여성들의 ‘남녀 공용화장실 공포’는 여전하다.

직장인 박선영(32ㆍ여) 씨는 “어딜 가더라도 남여 공용화장실이 있으면 최대한 사용하지 않으려고 한다”며 “어쩔 수 없이 사용해야 하는 경우가 생기면 정말 불안하다”고 했다. 이어 “강남역 살인사건 당시 남녀 공용화장실이 이슈가 되기 했지만 분리 공간이 실제로 늘어났거나 공중화장실이 안전해졌다는 등의 변화를 체감하지 못했다”고 했다.

강남역 살인사건 이후 정부는 공중화장실법 시행령을 개정해 신축 건물의 남녀 화장실 분리설치 의무대상 범위를 확대하겠다고 밝혔다. 현재는 업무시설 3000㎡ 이상, 업무ㆍ근린생활시설 2000㎡ 이상의 건축물만 남녀 화장실을 분리 설치하도록 되어 있다.

새누리당 심재철 의원이 2004년 이전에 설치된 건물도 화장실 분리의 적용범위에 포함되도록 하는 공중화장실법 개정안을 지난해 발의했다. 그러나 해당 개정안은 현재 국회에서 계류 중으로 법안이 통과될 지는 미지수다. 

강남역 살인사건으로 공중 화장실의 안전 문제가 대두된지 1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많은 건물의 화장실은 범죄 사각지대에 노출되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사진=박로명 기자/dodo@heraldcorp.com]

정부는 기존 공용화장실을 성별에 따라 분리설치하는 건물주에게 인센티브를 주는 방안도 추진했다. 그러나 이에 참여한 민간사업자는 단 한곳도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공용화장실 분리 설치를 하지 않는 것은 재정적인 이유보다 공간적인 문제가 크다는 것이 건물주들의 주장이다.

서울 마포구에서 카페를 운영하는 이모(42) 씨는 “사건 당시 남녀 공용화장실의 문제점을 개선해야겠다는 생각을 많이 했지만 건물 자체가 25년이 넘은 노후 건물이다 보니 공간이 부족해서 화장실을 분리 설치하기에 한계가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화장실을 사용하는 손님들에게 정말 미안한 마음 뿐”이라고 덧붙였다.

전문가들은 화장실의 안전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현실적인 여건에 맞춰 ‘공동체적 책임’을 추구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한다.

이수정 경기대 범죄심리학과 교수는 “무조건 건물주에게 건축물을 개조하라고 할 수 없다” 며 “지자체, 경찰, 그리고 남녀 분리 화장실이 설치되어 있는 주위 민간 건물 사업주들의 협조를 바탕으로 치안을 확보하는 방안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ren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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