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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감형의 조건] 감형 노리고 공탁…법원 “피해자 동의없어 인정못해”
-피해자 합의거부하자 공탁금 내고 감형 주장
-피해자 동의없는 공탁금, 양형 반영 안 해야


[헤럴드경제=김현일 기자] 지난해 10월 고등학교 교사 A(51) 씨는 2박3일 야외 체험학습 중 술에 취한 채 여학생을 끌어안고 신체 일부를 만져 위계 등 추행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진주지원은 올 3월 A 씨에게 징역 2년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했다. 피해 학생은 합의를 거부하고 A 씨를 끝내 용서하지 않았지만 법원은 A 씨가 피해자의 부모를 통해 합의하려고 노력한 점과 피해자를 위해 1000만원을 공탁한 점을 등을 양형에 고려했다고 밝혔다.


피해자와 합의에 실패했을 때 가해자는 형사공탁제도를 활용할 수 있다. 형사공탁은 가해자가 ‘피해자의 피해 회복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일정 금액의 돈을 법원에 맡기는 제도다.

대법원 양형위원회의 양형 기준을 보면 살인이나 강도, 성범죄 등의 경우 ‘상당 금액 공탁’을 감경요소로 두고 있다. 형사사건에서 통상 형을 낮추기 위한 방법으로 사용된다.

그러나 피해자의 의사와 전혀 상관없이 공탁이 이뤄지고 양형에 반영되는 현실이 종종 문제가 된다.

이달 10일 법률구조공단과 한국여성변호사회 공동 주최로 열린 학술대회에서 배수진 변호사는 “피해자의 동의없이 일방적인 공탁이 이뤄지고, 법원은 피해자의 의사확인 없이 이를 양형사유로 받아들이고 있는 것은 심각한 일”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최근 서울중앙지법과 서울고법은 피해자의 동의없이 이뤄진 공탁은 양형사유로 참작하지 않는다고 기재하고 있지만 아직도 다른 법원에선 여전히 피고인의 일방적인 공탁을 유리한 양형사유로 반영하고 있다”며 개선을 주문했다.

공탁 과정에서 발생하는 개인정보 유출 문제 역시 꾸준히 지적돼 왔다. 가해자가 공탁하려면 피해자의 성명과 주소, 주민번호 등 인적사항을 기재해야 한다.

배 변호사는 ‘데이트 폭력’ 등 연인 사이에서 발생한 성범죄의 경우 가해자가 이미 피해자의 정보를 알고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어서 이를 악용해 일방적으로 공탁을 하는 경우가 많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지난해 지인을 성폭행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B 씨는 1심 선고 직전 이미 알고 있던 피해자의 정보를 이용해 1000만원을 공탁했고, 재판부는 이를 반영해 피고인에게 징역 1년6개월을 선고했다. 피해자가 법정에까지 나와 합의하지 않겠다는 뜻을 분명히 밝힌 상황이었다.

오히려 B 씨는 양형이 부당하다며 항소했다. 항소심에서 피해자 변호사는 “피해자의 의사에 반하는 공탁을 양형에 반영하지 말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결국 항소심 재판부는 “피고인이 일부 금액을 공탁했지만 아직까지 피해자로부터 용서받지 못했다”며 B 씨의 항소를 기각했다.

joz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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