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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터키 개헌 국민투표 가결…에르도안 ‘술탄 대통령’ 됐다
-찬반 격차 2%포인트…공정성 시비
-에르도안, 2029년 이후까지 장기집권 가능
-EU집행위 “터키 개헌, 최대한의 국가적 합의 구해야”

[헤럴드경제=김현경 기자] 터키의 정부 형태를 현행 의원내각제에서 대통령중심제로 바꾸는 개헌안이 국민투표에서 가결됐다. 이로써 그동안 ‘21세기 술탄’으로 불린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대통령은 국정 1인자로서 더욱 막강한 권한을 갖게 됐다. 또 대통령 중임 조항에 따라 2029년 이후까지 초장기 집권할 수 있는 제도적 기반을 마련했다.

▶찬반 격차 2%포인트 불과=터키 선거관리위원회(YSK)는 16일(현지시간) 밤 개헌안 국민투표의 개표가 99.45% 진행된 가운데 찬성투표가 51.37%, 반대투표가 48.63%로 집계돼 개헌안이 가결됐다고 밝혔다.

이번 투표에는 총유권자 5836만여 명 가운데 5060만여 명이 참여해 투표율 87%를 기록했다. 그러나 찬성표와 반대표의 차이가 2.7%포인트에 불과해 공정성 시비가 불가피할 전망이다. 

[사진제공=AP]

지역별로 보면 최대 도시 이스탄불, 수도 앙카라, 에게해 연안 이즈미르 등 인구가 밀집한 대도시와 마르마라·에게해 연안도시에서는 반대표가 앞섰지만 코니아, 카이세리, 요즈가트, 시와스 같은 보수적인 내륙 도시에서 찬성표로 몰렸다. 이는 에르도안 대통령의 이슬람주의, 반(反)서방 기조와 분열 전략이 주효한 결과로 풀이된다.

에르도안 대통령은 이날 밤 연설에서 “명백한 승리(clear victory)”라고 강조했다고 BBC가 전했다. 그는 “오늘 터키는 역사적인 결정을 내렸다”면서 “국민과 함께 우리는 터키 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개혁을 실현했다”고 말했다. 이어 “모두가 투표 결과를 존중해야 한다”며 “이번 투표 결과에 반대하는 사람들의 노력은 헛수고가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대통령중심제…에르도안 4연임 가능=이번 개헌안 가결에 따라 2019년 11월 3일 대선·총선 이후 새 헌법에 따른 정부 형태가 발효된다. 이로써 터키의 정부 구조는 현행 의원내각제에서 대통령중심제, 이른바 ‘제왕적 대통령제’로 전환된다. 무스타파 케말 아타튀르크가 1923년 공화국을 수립한 지 약 1세기 만에 의원내각제가 폐기되는 것이다.

새 헌법에 따르면 대통령의 임기는 5년이며 1회 중임할 수 있다. 대통령은 조기 대선·총선을 시행하는 권한을 갖고, 중임한 대통령이 국회의 동의를 얻어 조기 대선에 또 출마할 수 있다. 에르도안 대통령은 중임 조항에 따라 2029년까지 집권할 수 있으며, 임기 만료 직전 조기 대선을 시행한다면 2034년까지도 재임할 수 있게 되는 셈이다.

대통령의 권한도 막강해진다. 총리직이 없어지는 대신 대통령이 한 명 또는 복수의 부통령을 임명할 수 있다. 대통령은 장관을 비롯해 최고위 공무원들을 직접 임명할 수 있으며, 판·검사 인사에도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해 사법부 장악력을 높일 수 있게 됐다. 또한 대통령은 법률에 준하는 효력을 갖는 행정명령을 발표할 수 있고, 국가비상사태를 선포할 수 있다. 국회의원의 임기는 5년이며, 대선과 총선을 같은 날 동시에 치른다.

권력을 한층 강화한 에르도안 대통령이 난민송환협정, 유럽연합(EU) 가입, 사형제 부활 등을 추진할지도 주목된다. 에르도안 대통령은 이날 연설에서 “사형제 부활에 대한 국민투표를 실시할 수 있다”고 밝혔다. 각국 헌법재판기구 협의체인 베니스위원회는 새 터키헌법의 내용이 “터키의 입헌민주주의 전통에 역행하는 위험한 시도로, 전제주의와 1인 지배에 이를 수 있다”고 우려했다.

▶야권, 투표 부정 의혹 제기=터키 야권은 투표 부정 의혹을 제기하며 투표 결과에 불복할 뜻을 밝혔다.

터키 제1야당 공화인민당(CHP)은 선관위가 개표 직전 날인이 없는 투표용지를 유효표로 처리하기로 방침을 변경한 것은 부당하다며 총투표의 60%를 재검표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앞서 이날 터키 선관위(YSK)는 선관위 날인이 없는 투표용지라도 불법으로 유입됐다는 것이 증명되지 않는다면 유효표로 처리키로 했다는 성명을 웹사이트에 올렸다. 선관위는 날인 없는 기표용지를 받았다는 유권자 민원이 쇄도해 이같이 결정했다고 설명했다.

뷜렌트 테즈잔 CHP 부대표는 선관위 날인이 없는 투표용지를 유효표로 처리한것은 공정선거의무를 위반한 것이라면서 과오를 바로잡고 투표용지를 보호하라고 촉구했다.

쿠르드계 등 소수집단을 대변하는 인민민주당(HDP)은 “3∼4%포인트의 개표 조작이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며 총투표의 3분의 2에 대해 재검표를 요구할 것이라고 밝혔다.

민족주의행동당(MHP) 소속으로 당의 개헌 지지방침에 반발한 시난 오안 의원은 소셜미디어를 통해 “선관위의 결정은 스캔들이다. 부정투표 길을 열어주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EU집행위원회는 이날 성명을 통해 “찬반 격차가 거의 없는 국민투표 결과와 헌법 개정의 지대한 영향을 고려할 때, 터키 당국이 헌법 개정을 이행할 때 가능한 한 최대한의 국가적 합의를 구할 것을 촉구한다”고 밝혔다.

pink@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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