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위기시계
실시간 뉴스
  • [세상속으로-최영진 중앙대 정치국제학과 교수] 지방분권 개헌이 답이다
지난 15일 국민의당, 바른정당, 자유한국당 원내대표들이 모여 4년 중임의 분권형 대통령제를 골자로 한 개헌안에 합의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정략적이라는 비판이 거세다. 제1당인 더불어민주당을 배제한 것도 문제지만, 제대로 된 논의과정도 거치지 않았다는 절차상 하자가 더 크다. 심상정 정의당 대표가 잘 지적했듯 “충분한 공론과정과 국민적 합의”가 절대 필요한 것이 개헌과정이다. 대권도전에 자신 없는 정당들이 모여 국무총리라도 한자리 해볼 요량으로 만든 개헌안이라면 정략적이라는 비난도 결코 심하지 않다.

그럼에도 많은 국민은 개헌논의 자체에 반대하는 건 아니다. 개헌 내용과 시기에 대해 적지 않은 논란이 있겠지만, ‘87 헌정체제’를 고쳐야 한다는 데는 대체로 동의하고 있다. 여기에는 현행 헌법이 ‘실패한 대통령’을 만드는 제도적 원흉이라는 생각이 깔렸기 때문이다. 대통령 개인이 잘못한 걸 갖고 헌법을 탓하는 것은 잘못이라는 유시민 작가의 주장도 일견 그럴듯해 보인다. 하지만, 민주화 이후 집권한 대통령들이 개인적 자질과 무관하게 모두 실패했다면, 구조나 제도의 차원에서 문제의 원인을 찾는 것이 과학적이다.

그렇다면, 지금 정치권에서 제시되고 있는 4년 중임제나 분권형 대통령제(이원집정부제)가 문제의 해결책이 될 수 있을까. 4년 중임제는 집권 후반기 레임덕을 차단하고 안정적 국정운영에 도움이 될 것이라는 생각에서 나왔지만, 중임제의 폐해를 간과하고 있다. 재집권을 위한 청와대의 결의는 국가권력의 편향적 행사와 선거 전략화를 막기 어렵게 만들 것이다. 국회도 대통령의 재선전략에 포섭될 가능성이 크다. 대통령이 국정운영의 책임자인 동시에 대선 후보가 되기 때문에, 국정운영 자체가 권력투쟁의 대상으로 전략하기 마련이다.

분권형 권력구조 역시 구조적 문제를 안고 있다. 분권과 타협의 정치문화가 빈곤한 한국의 현실에서 현재권력으로서 대통령과 미래권력으로서 국무총리 사이의 대립과 갈등은 피하기 어렵다.

그런 점에서 지방분권의 강화만큼 확실한 방안은 찾기 어렵다. 현재 중앙과 지방의 역할은 7:3 정도로 심하게 중앙에 편중돼 있다. 일이 많은 만큼 인력, 예산, 그리고 권력이 집중될 수밖에 없다. 한국 대통령이 제왕적일 수 있는 구조적 이유다. 중앙과 지방의 역할을 5:5 수준으로 낮춘다면 대통령의 권한도 그만큼 줄 수밖에 없다. 중앙정부나 국회에서 관장하던 일이 지방정부나 지방의회로 이양된다면 지방자치는 그만큼 역동적이고 실질적으로 작동하게 될 것이다. 중앙정부가 ‘꼭 해야 하는’ 일이 아니라면 모두 지방에 맡길 수 있지 않을까. 헌법과 법률에 위배되는 것이 아니라면, 재정과 인사를 비롯한 모든 영역에서 광범위한 자치를 인정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분권이 지방에만 좋은 것이 아니다. 오히려 과중한 업무에 허덕이는 중앙정부를 구원해줄 방책이다. 중앙정부의 일이 반으로 준다고 생각해보자. 청와대와 각 부처가 국가적 주요 의제에 역량을 집중함으로써 더욱 유능한 정부로 거듭날 수 있다. 국회도 마찬가지다. 입법과 행정감시 영역이 대폭 줄어듦으로써 그만큼 철저한 의정활동이 가능해질 것이다.

이런 점에서 지방분권의 강화는 단순히 대통령의 제왕적 권력을 축소하는 데서 그치지 않는다. 오히려 더 좋은 국가, 보다 유능한 정부를 만들기 위한 새로운 헌정질서의 수립으로 간주해야 한다. 87체제로는 ‘세방화(glocalization)’의 시대정신을 담아내기 어렵다. 전통적인 중앙집권국가였던 프랑스가 2013년 개헌을 통해 ‘지방분권 국가’(제1조)임을 선언한 것도 이런 맥락에서 이해될 필요가 있다.

꼭 개헌이 아니어도 된다. 지방자치제법의 개정을 통해서도 많은 변화가 가능하다. 이미 개정법안도 발의돼 있다. 이제 국회가 응답할 차례다. 제발 말만 앞세우지 말고 실천을 통해 국회의 존재이유를 보여주기 바란다.
맞춤 정보
    당신을 위한 추천 정보
      많이 본 정보
      오늘의 인기정보
        이슈 & 토픽
          비즈 링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