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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마음약방’ 2년 운영 결산] 가장 많이 팔린 처방은 ‘미래 막막증’
-‘급여 상실증’, ‘의욕 상실증’도 불티
-‘급성 연애세포 소멸증’도 상위 랭크
-“의사보다 낫다”…소소한 위로 전달

[헤럴드경제=이원율 기자]#. 이모(27ㆍ여) 씨는 2년 전 사립대 법학전문대학원에 입학했다. 졸업도 전에 변호사가 된 느낌을 받았다. 그러나 설렘은 오래가지 못했다. 첫 시험을 보고 한숨이 나왔다. 어디서도 공부로는 빠지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낮은 점수가 더욱 충격으로 다가온 이유였다. 이 씨는 “수백만원 학비를 보태기 위해 야간 아르바이트를 한 것이 화근이 아닐까 싶다”며 “그렇다고 (공부 때문에) 아르바이트를 그만 둘 상황이 아니라 답답하다”고 했다. 이 씨는 대학로 서울연극센터에 있는 ‘마음약방’ 자판기 앞에 다가섰다. 500원 동전을 넣고 버튼을 눌렀다. 약 상자가 바닥에 떨어졌다. 이 씨가 처방 받은 병명은 ‘미래 막막증’이었다.

시민들이 마음약방 자판기를 이용하기 위해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다.

한치 앞을 볼 수 없는 요즘 세상에 미래를 걱정하는 시민들도 늘었다. 마음약방을 찾은 시민들이 가장 많이 호소한 병도 ‘미래 막막증’인 것으로 나타났다.

4일 서울문화재단에 따르면 2015년 2월부터 지난해 12월까지 마음약방 1호점에서 팔린 ‘미래막막증’ 처방전은 모두 3945개다. 197만2500원 수익을 냈다. 이어 ‘의욕상실증’(3873개), ‘현실도피증’(3820개), ‘유행성 스마트폰 중독’(3811개) 순이었다.

‘급성 연애세포 소멸증’(3791개), ‘월요병 말기’(3762개), ‘분노조절장치 실종’(3369개) 증상을 호소하는 시민들도 많았다. 기간 내에 처방전은 모두 6만5965개가 팔렸고, 수익은 3298만2500원으로 집계됐다.

서울문화재단은 2015년 2월 서울시청 지하 시민청에 마음약방 1호점 문을 열었다. 20개 증상들은 2014년 12월 시민 849명 대상으로 한 여론조사를 통해 결정했다. 500원을 넣고 마음 증상을 입력하면 치료 방법이 담긴 처방전이 나오는 식이다. 이 씨가 고른 ‘미래 막막증’ 처방전에는 서울 전통시장 지도와 이철수 화백의 ‘잡초 인생’, 사탕 엿 등이 들어있었다.

2015년 12월 대학로 서울연극센터에서 운영을 시작한 2호점에서도 결과는 비슷했다. 개소일부터 2016년 12월까지 가장 많이 팔린 처방전은 ‘급여 상실증’이었다. 1098개가 팔리며 54만9000원 수익을 올렸다. ‘미래막막증’(1091개)은 근소한 차이로 2위를 차지했다. ‘분노조절장치 실종’(1083개), ‘과민성 멘탈장애’(1079개)가 뒤를 이었다.

한 시민이 마음약방 자판기 앞에 서서 마음에 드는 처방전을 고르고 있다.

이외에 ‘작심 3ill-ness’(1066개), ‘용기부전’(1049개), ‘피터팬 증후군’(1046개) 등 온라인 설문조사를 통해 선별했던 처방전도 인기를 끌었다.

사연은 다양했다. ‘자존감 바닥’ 처방전을 산 김용빈(27) 씨는 “상반기 기업 공채가 다가올수록 스스로 계속 작아지는 느낌을 받아 골랐다”며 “처방전을 이리저리 살펴보며 조금은 위안을 얻었다”고 했다. ‘급여 상실증’을 구매한 직장인 하지용(39) 씨는 “들어오기 무섭게 새어나가는 월급을 보면서 불면증에 시달릴 지경”이라며 “(마음 약방을 통해)의사 상담만큼의 위로를 받았다”고 했다.

서울문화재단은 마음약방 1ㆍ2호점을 통해 얻은 수익을 시민들의 마음 치유를 위한 각종 사업에 기부한다. 1099여만원을 마음약방 2호점 개설에 투자한 후 지난달 기준 남아있는 수익금은 모두 3190여만원이다. 서울문화재단 관계자는 “서울 곳곳 마음약방 자판기를 확대해갈 것”이라며 “예술가와 기업의 많은 참여를 기다린다”고 했다.

마음약방 1ㆍ2호점은 올해 초 휴식기간을 가졌다. 아직 문을 닫은 상태인 1호점은 현재 공간이동 등이 논의되고 있다. 2호점은 지난달 22일 다시 문을 열었다.

yul@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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