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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노인을 위한 즐거운 요양시설은 있다
日 ‘다쿠로쇼 요리아이’의 실험
집밥, 나무향, 카페…시설 맞아?

이웃들이 수다떨러 오는 장소로
노인요양시설의 새 모델 제시

[헤럴드경제=이윤미 기자]치매 노인들이 살고 있는 노인요양시설은 흔히 칙칙하고 어두운 곳으로 연상된다. 기억의 회로가 닫혀 짙은 안개에 갇힌 이들이 느릿느릿 유령처럼 걸어다니고, 환자를 제어하는 힘센 간호인과 싸늘한 표정들이 떠오르게 마련이다.

후쿠오카 시 조난구 주택가에 자리잡은 ‘다쿠로쇼 요리아이’란 노인요양시설은 이런 통념을 벗어난 셰어하우스 같은 환하고 활기넘치는 곳이다. 이가 몇 개 남지 않은 노인이 음식을 씹느라 식사시간을 넘겨도 재촉하지 않고 탱글탱글한 계란말이를 충분히 즐기며 식사를 마칠 때까지 기다린다. 시폰케이크, 찹쌀경단, 슈크림, 젤라토 등 오후 4시엔 맛있는 간식이 제공되고, 때로 직원들은 드라이브를 좋아하는 노인을 차에 태우고 시장에도 간다. 일주일에 한 번, 개방하는 ‘요리아이’카페는 케이크와 빙수를 먹으러 오는 동네 사람들로 북적이는데, 치매노인이 옆에 앉아도 아무도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요양시설에 들어가고 싶지 않은 이들을 위한’ 이 특별한 시설은 한 사회복지사가 대소변과 오물 속에서 살고 있던 한 치매노인을 만난 게 계기가 됐다. 시설에서 받아주지 않자 사찰을 빌려 시작한 특별한 데이 서비스는 소문이 나 노인이 늘어났다. 사찰에 더 이상 신세를 질 수 없게 된 복지사는 유령 주택을 구입, 주변인들의 도움으로 8백만엔을 모아 시설을 갖추게 된다. 갈 곳 없는 노인과 부모를 차마 감옥같은 병동에 보낼 수 없는 이들에게 ‘내 집 같은’ 시설은 큰 환영을 받는다.

‘정신은 좀 없습니다만, 품위까지 잃은 건 아니랍니다’(푸른숲)은 일거리가 없어 프리랜서 편집일 마저 그만두려던가노코에게 어느 날 이 시설 관계자로부터 잡지를 만들어달라는 제안을 받게 되면서 시작된다. 가노코는 이 노인요양시설에 근무하는 직원들 뿐 아니라 일반인들이 재미있게 읽을 만한 잡지로 만들고자 한다. 잡지 제목도 ‘비틀비틀’이란 뜻의 ‘요레요레’. 책은 이 시설에 발을 담그면서 관찰자라기 보다 돌보미가 돼 가는 가노코가 경험하고 보고 들은 대로 적은 요리 아이 이야기다.

요리아이의 특별함은 곳곳에 있다. 세 끼 모두 직접 조리한 음식을 내놓고 배식판이 아닌 밥공기와 대접 등 집밥 다운 집밥을 제공하고, 소독약 냄새가 나는 병실 같은 바닥이 아닌 편백나무 냄새와 따뜻한 조명, 아름다운 창밖 풍경을 볼 수 있는 그런 곳, 노인 한 사람 한 사람에게 맞추는 간병 등 일상생활을 하듯 살 수 있는 곳, 그런 누구나 바라는 노인시설이 어떻게 가능한 것일까. 이런 시설이 동네마다 있을 순 없을까.

다쿠로쇼 요리아이는 사실 빈손으로 시작했다. 한 푼 한 푼 주변인들의 도움으로 1억2000만엔을 모아 땅을 사고 추가 보조금 1억1100만엔을 받아 건물을 지었다.

시설을 지을 때 우선적으로 염두에 둔 건 개방적인 구조였다. 특히 넓은 우드 데크는 파라솔이나 테이블을 놓을 수 있을 정도로 넉넉하고, 부대시설인 옆 건물의 카페와 연결된다. 어디까지가 시설이고 어디부터 카페인지 경계 흐리기가 설계의 목적이다. 일반인들이 놀러가고 싶은 장소로 카페를 만들고, 노인들이 데크를 건너와 카페에서 일반인들과 자연스럽게 뒤섞이도록 만드는 것이다. 카페의 이야기 소리가 요양시설에 들리고, 요양시설에서 노인들이 노래하는 소리가 카페에 들리게 하는 것, 카페에서 미니콘서트를 함께 즐기는 것, 이런 것들이 데크 하나로 가능해진 것이다.

이 시설의 또 다른 특징은 주방. 세 끼 조리한 일반 가정식을 직접 조리해 먹는 걸 원칙으로 한 주방은 ‘모임의 장소’ 옆에 설치해 음식을 하면서 떠드는 소리나 음식냄새가 풍김으로써 사람사는 냄새를 나게 하고 기억을 소환하는 장소역할을 하게 된다.

이 요리아이의 성공은 우선 직원들의 열정에 있지만 이게 다가 아니다. 돈은 늘 부족하고 급료는 적고 일은 고된 간병일을 하려는 이들은 적게 마련이다. 해결의 실마리는 간병을 공동체의 몫으로 돌린 데 있다. 101명의 후원자를 비롯, 기부자들이 있고, 직원들이 손수 만든 딸기잼과 바자회를 기다리는 사람들, 가게에 모금함을 놓게 해주는 사람들 등 다양한 사람들이 만들어간다.

또 재능기부하는 건축설계사가 있고, ‘시설 답지 않은 시설’을 허용해주는 공무원도 있다.

책은 1991년 복지사 시모무라가 한 독거치매 노인을 만난 순간부터 2015년 특별한 노인요양시설 ‘요리 아이’를 설립하기까지의 과정을 다루고 있다. 직원들이 여름철 축제현장을 돌아다니며 돈벌이를 하고 집집을 돌며 모금을 하고 직접 데크에 쓸 삼나무에 도료를 칠하며 요리아이 집을 짓는 이야기는 노인요양시설의 한 모델로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적지않다.

/meel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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