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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프리즘] 벌거벗은 임금님과 신하들
동화 ‘벌거벗은 임금님’에는 정치보다는 ‘새 옷’에 관심이 많은 임금님 얘기가 나온다. 국방이나 내치에는 관심이 없고 궁궐에만 틀어박혀 살던 임금님은 온종일 신하에게 새로운 옷을 찾아오라고 독촉하고 어떻게 하면 새 옷을 자랑할까만 생각했다. 결국 임금님은 ‘세상에서 아무도 본 적이 없는 천’을 만들 수 있다는 사기꾼에게 속아 벌거벗은채 나라 안을 행진하다 “임금님이 벌거벗었다”고 소리치는 한 용감한 소녀에 의해 온 나라 백성들에게 창피를 당한다.

왜 임금은 벌거벗을 수 밖에 없었을까. 사기꾼은 “우둔한 자와 자기 지위에 어울리지 않는 자는 이 옷감을 볼 수 없습니다”라고 임금님을 현혹한다. 임금은 먼저 재상과 비서를 차례로 보내 현장을 방문하게 한다. “아니 옷감이 보이지 않잖아. 그러면 내가 바보…? 그럴 리가…. 혹시 내가 재상 자리에 어울리지 않는…? 말도 안 되는 소리.”

“이 옷감은 너무나 곱구려!”

이제 재상의 눈에는 현명하고 자기 지위에 맞는 능력을 지닌 자에게만 보인다는 요술 옷감이 보이기 시작한다. 물론 비서와 임금에게도 마찬가지였다.

대한민국 국민에 실망과 충격을 준 최순실 국정농단 의혹, 당사자들인 박근혜 대통령과 김기춘 전 비서실장, 조윤선 전 장관 등도 이처럼 ‘현실의 옷’이 아니라 ‘그들이 보고 싶어하는 옷’만을 보아온 것은 아닐까.

지인과 이와 관련해 얘기를 나눴더니 그의 말은 이랬다. “대통령은 아직까지도 ‘촛불 집회’같은 ‘현실의 옷’이 아니라 보이지 않으면 안되고 보이든 말든 상관없이 보여야 한다고 믿는 ‘태극기 집회’ 같은 ‘옷’만 보인다고 믿고 있는 것 같아요.” 그의 말처럼 ‘보이지 않는 옷’에 연연하는 움직임은 적지 않다. 보이지도 않는 옷을 보고 있다고 믿고있는 대통령은 탄핵이 기각되면 아무 죄없는 자신을 핍박하는 검찰과 언론을 ‘손 봐준다’는 뉘앙스를 흘리고 있고, 최순실은 마치 ‘민주투사’인양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그들만이 아니다. 보수단체는 ‘군대여 일어나라’라는 구호까지 외치며 안보공포증을 부추기며, 재벌은 ‘내가 아니면 대한민국 경제는 끝장난다’고 은근히 강조하는 행보를 보이고 있다. 그들에게 ‘사회 정의’란 사치품이고 광화문과 전국을 뒤덮은 천만 민심의 외침은 공허한 울림인가 보다.

교수신문은 지난해 12월 20일부터 22일까지 전국의 교수 611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 ‘군주민수(君舟民水)’를 2017 사자성어로 선정했다. ‘강물(백성)이 화가 나면 배(임금)를 뒤집을 수 있다’는 이 단어를 꼽은 이는 32.4%(198명)였다. ‘군주민수’에 이어 ‘천리를 거스르는 자는 패망하기 마련’이라는 의미의 ‘역천자망(逆天者亡)’과 ‘이슬이 모여 바다를 이룬다’는 사자성어인 ‘노적성해(露積成海)’가 둘째, 셋째를 차지했다.

보이지 않은 옷을 멋지게 걸치고 자기에게 맞지 않는 지위에서 있지도 않는 희망과 미래의 한가운데를 행진하는 임금님과 그의 신하들에게 과연 우리의 미래를 맡겨도 될까. 답은 민초들이 알고 있다. k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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