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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南島여, 너는 벌써 ‘봄망울’을 터뜨렸구나
-여수 오동도·금오도 동백꽃길엔 봄처녀 싱그러운 웃음소리…울긋불긋 조명 밝힌 여수 밤거리 청춘남녀 희망의 속삭임이…

금오도와 오동도 동백이 꽃망울을 터뜨리자, 여수 밤바다가 다시 들썩인다.

2월 초입인데, 성급한 봄의 전령이 여수에 상륙했다. 휴일인 지난 5일 금오도를 찾은 트레킹족들은 매봉과 미역널방으로 향하는 막바지 고비에서 겨울 옷들을 벗어 허리에 묶은 채 이마에 흐르는 땀을 연신 훔치며 정상을 탐했고, 밤이 되자 울긋불긋 조명으로 치장한 이순신광장과 종포해양공원에는 청춘남녀들이 희망의 봄을 재잘거리고 있었다.

금오도(金鰲島)는 여수 돌산도 남쪽에 자리잡은 여러 열도들의 형님격이다.



화태대교가 코 앞에 있는 돌산읍 신기선착장을 떠나 배로 30분 남행하면 금오도 여천(汝泉) 선착장에 다다른다. 금오도 동백은 태평양을 향하고 있는 절경의 ‘비렁길’에서 감상할 수 있다. 비렁은 ‘벼랑’의 남도 사투리이다.

1코스가 5060세대들을 위한 편한 코스라기에, 5060 여행자들은 ‘3040코스’라는 별명이 붙은 3코스 비렁다리~매봉전망대길 트레킹을 감행하려고 직포마을로 향했다.

‘출렁다리 민박집’ 개가 어리광을 부리는 3코스 초입을 지나면 정겨운 오솔길 좌우엔 방풍나물이 지천이다. 풍을 예방한다는 뜻의 이 나물을 먹으면 풍 치료는 물론이고 남자의 바람기 까지 없애준다는 설이 있어 흥미롭다. 우거진 산림 속에 희귀식물인 고란초 군락이 반기고 취나물, 고사리, 참가시나무, 생강나무, 비자나무, 목이버섯 등이 자라는 ‘약(藥)섬’이다.

아스팔트 도로에서 내린지 10분만에 완만한 경사의 밭길을 넘으면 지중해빛 바닷물 위에 놓인 비렁다리와 사다리통 전망대를 만난다. ‘갈바람통’이라는 절벽 사이에 걸쳐진 이 다리 한가운데 유리발판이 놓여, 에메랄드색 바닷물이 비렁과 쉼없이 부딪치는 모습을 아찔하게 감상할 수 있다.

비렁길 3코스는 오르막 내리막이 잦다. 힘들다 싶으면 내리막이 있어 한숨 돌리고, 다시 오르막길이다 싶으면 바다를 연모하는 동백꽃이 활짝 웃으며 트레킹족의 피로를 잊게 한다. 매봉 정상을 100여m 앞두고 짙은 어둠의 대나무숲을 빠져나가면서 경사가 심한 오르막길이 대미를 장식한다. 음력 정월임에도, 이마에 땀이 맺히고 등줄기가 젓는다.

막판 고생한 만큼 기쁨은 두 배이다. 남동쪽 해안에는 거북이 모양 ‘곶’들이 줄지어 바다를 탐하는데 비해, 멀리 거문도, 제주도, 마라도, 이어도 쪽 ‘남남서’ 태평양 방향은 탁 트여있다. 낮은 바닷물 온도에 비해 육지 날씨가 서서히 풀리면서 해무(海霧)가 만들어지고 있었는데, 태평양쪽을 굽어보면 희뿌연 해무 때문에 천상에 와 있는 기분이 든다. 국민MC 김성주가 스위스 알프스 운무 윗쪽 리기산 정상에서 하늘나라에 온 듯한 느낌이 들어 선친을 생각하며 눈물 흘렸던 것 처럼 말이다.

비렁길 안쪽에는 승하한 임금의 관 짤 나무 등 조선 궁궐 건축재, 황장목이 자라는 금오숲이 있다. 금오도엔 왕실 벌목장과 사슴목장 등이 있어 일반인 출입을 금하다 왕권이 오락가락 하던 갑신정변~갑오개혁 무렵에야 개방됐다. 2004년 전도연 주연의 ‘인어공주’, 2005년 차승원 주연의 ‘혈의 누’ 등 많은 영화의 배경지이고, 최근 ‘아빠 어디가’, ‘불타는 청춘’ 등 예능 촬영까지 이뤄졌다. 비렁길 5개 코스와 그 합인 종주 코스의 길이는 18.5㎞이고 8시간 30분 걸린다.

여수 백야도~직포선착장 노선의 배를 탔다면 금오도 서쪽인 용머리(용두), 과거 미역을 지게에 짊어지고 올라와 말렸다는 미역널방, 두포, 굴등, 직포 촛대바위, 매봉전망대에 이르는 해안 절벽과 기암괴석, 바닷물이 들어가는 9개의 구멍 등이 만든 ‘절경 병풍’을 한꺼번에 훑어 볼 수 있다.

직포마을에서 동쪽으로 2.9㎞를 가면 우학리에 한국 기독교 1세대로 일제 신사참배를 거부하다 순교한 이기풍 목사의 기념관이 있다. 한국 기독교 성지 중 한 곳인데, 아직 찾는 이가 많지 않다. 한국관광협동조합(이사장 이정환)이 성지순례 프로그램 중 한 코스로 개발중이다.

평양장로회신학교를 1회로 졸업한 한국인 최초 목사이자, 남들 꺼리는 제주도, 금오도 등에 기꺼이 임해 복음을 전파한 실천형 교회 지도자이다. 1938년 일제의 신사참배 강요를 거부하며 반대 투쟁을 하다 체포됐으며, 심한 고문으로 병보석 출감했지만 조국 해방을 3년 앞둔 1942년 금오도에 눈을 감았다. 호남 기독교의 최고 지위에 오르고도 1934년 일흔의 나이에 금오도 행을 자처하며 우학리 교회를 개척했다.

기독교인이라면, 여수 북쪽 율촌면 손양원 목사의 순교지인 창천교회(등록문화재)에서 남쪽 섬의 우학리 교회까지 성지순례하는 동안, 여수의 비경과 낭만을 함께 누릴 수 있겠다.

동백은 오동도 등대 옆에서도 활짝 꽃망울을 터뜨렸다. 엑스포 공원 남쪽 엠블호텔 인근 오동도 입구 주차장에서 768m 방파제 길을 따라 10여분 걸으면 도착한다. 연인들의 사랑싸움과 길거리 뽀뽀가 감행되는 이 길은 ‘한국의 아름다운 길 100선’에 선정된 바 있다.

3000여그루의 오동도 동백나무는 1월 말 섬 남쪽에서 피기 시작해 2월 들어 전역으로 번지고 있다. 음악분수대가 있는 중앙광장을 지나, 발바닥 아파도 건강에 좋은 맨발공원을 따라 올라 가다 보면 시누대로 무성한 양 갈래의 길이 나온다. 오동도에는 동백과 더불어 시누대가 곳곳에서 자라는데, 충무공 이순신이 이곳에서 군사를 조련하고 시누대를 잘라 화살로 사용했다고 한다.

시누대 나무터널을 거쳐 후박, 동백 군락지를 지나면 오동도에서 가장 넓고 길게 바다 쪽으로 나간 갯바위와 65년 된 등대가 있는 정상을 차례로 만난다. 동백꽃을 감상하는 봄처녀들의 웃음이 싱그럽다. 동백은 4월까지 오동도를 붉게 물들일 것이다.


겨울철에는 쉬는 중앙광장의 음악분수대는 주인공자리를 동백에게 내어주고 차분한 모습으로 봄을 기다리고 있었다. 광양만과 남해바다로 쭉 뻗어 있는 중앙광장 동쪽의 방파제는 낚시터로 유명하다.

오동도와 돌산도, FDA(미국식품의약국) 지정 청정해역인 가막만을 한거번에 조망할 수 있는 자산공원에서 돌산읍 돌산공원까지, 1.5㎞ 바다를 가로지르는 해상케이블카가 2014년 말부터 운행되면서, 돌산 공원을 찾는 관광객이 케이블카 설치 이전의 4배로 폭증했다. 여수시의 강한 추진력을 말해준다.

강원도가 스위스의 관광대국화, 여수의 성공을 일궈낸 그 케이블카를 설악산에 설치하려 하지만 ‘반대를 위한 반대’에 부딪쳐 발을 동동 구르는 모습이 문득 떠오른다.

아마추어 버스커들을 비롯한 문화예술인들의 지원 등을 통해 도시에 활력을 불어넣던 여수시가 이번에는 엑스포공원 북쪽 만성리 검은모래 해수욕장 인근 배후부지 개발에 나섰다. 민관 매칭으로 792억원을 투자해 복합 휴양레저단지 조성이라는 2017년 ‘입춘대길’을 선언한 것이다.

금오도를 다녀왔던 트레킹족, 오동도 동백 파티를 즐기던 가족 나들이족, 이순신 광장의 거북선에 올라 충무공-수병 놀이를 하던 아베크족이 해가 지면서 오색 조명 요란한 종포공원 등 여수밤바다에 집결한다.

봄의 전령이 막 상륙한 이 곳엔 날이 갈수록, 날이 좋아서 혹은 날이 적당해서, 버스커 버스커의 ‘여수밤바다~’가 더욱 크게 울려퍼질 것이다.

함영훈 여행선임기자/abc@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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