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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훈 소설의 주인공들은 왜 초라할까
[헤럴드경제=이윤미 기자]“역사의 하중을, 시대가 개인에게 가하는 고통을 견딜 수 없어서 도망가고 미치광이가 돼 세상의 바깥을 떠도는 인간을 그렸죠.”

소설가 김훈(70)이 5년만에 낸 신작 장편소설 ‘공터에서’(해냄출판사)를 설명하며, 자신의 주인공들을 이렇게 소개했다. 만주를 25년간 떠돌다 돌아와 6.25전쟁을 겪고 가정을 꾸리지만 평생 방랑의 삶을 산 마동수와 그런 아버지처럼 될까 두려운 두 아들 마장세, 마차세 부자의 이야기는 그의 자전적 요소가 겹쳐 있지만 지난 한 세기 이 땅의 범부들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현실이 무서워 생활에 뿌리 내리지 못하고 겉돌거나 어떻게든 열심히 살아보려 애쓰지만 번번히 시대의 힘에 떠밀리는 평범한 사람들이다. 



그는 “1910년 나라가 망한 해에 태어난 저의 아버지와 1948년 정부를 세우던 해에 태어난 나에게 두 숫자는 운명의 좌표와 같아 결코 도망갈 수 없었다”며, “저나 저의 아버지나 그 시대의 참혹한 피해자”였다고 말했다.

소설 제목인 ‘공터에서’는 그런 비애감이 묻어있다. 주택 사이에 버려진 땅, 역사적 구조물이나 건물이 들어있지 않은 곳, 때로 가건물이 들어섰다 이내 헐리는 곳, 그런 공터가 우리 시대의 삶의 터전이었다는 얘기다.

소설은 1920년대 독립군이 활동하던 만주, 상해 등지부터 6.25전쟁과 흥남부두, 피난지 부산, 베트남 전쟁, 80년 신군부와 언론통폐합까지 현대사의 굵직한 흐름을 다루지만 그 속에 묻히진 않는다. 거대 서사 속 한 장면만을 집중 조명하고 빠르게 이동하는 글쓰기다. 그는 이를 스냅사진과 크로키 전략이라 불렀다.

“시대 전체를 묘사할 수는 없었어요. 고심참담해서 돌파한 기법은 스냅적인 기법을 써 빠른 속도로 골격만을 그려내고 세부사항을 그려내지 않는 크로키 같은 기법을 썼는데, 부분적으로 성공했고 많은 부분에서 실패했습니다.”

세 배 많은 분량을 썼으나 거둬낸 것도 그런 이유다. 그는 소설을 쓰면서 70년대 신문의 사회면을 참고했는데, “유구한 갑질의 전통이 악의 유산으로 우리사회에 이어져 오고 있는 것을 보고 소름이 끼쳤다”고 했다.

그는 지난해 연말 촛불집회에 홀로 두번 참가했다. 정확히는 관찰자로서였다. “태극기와 성조기를 보면서 ‘내가 서 있는 자리가 어딘가’, ‘해방 칠십년이 공회전 하듯이 같은 자리에 와있는 거 아닌가’, 그런 생각을 했어요.”

그래도 그는 낮게나마 희망을 얘기했다. “난세를 함성으로 정리한다는 건 불행이지만 그 안에 희망이 싹터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분노의 폭발로 끝나지 않고 새로운 나라를 건설하는 동력으로 연결하는 게 정치지도자의 몫이겠죠.”

이윤미 기자/meel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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