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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쉼표] 압권(壓卷)이니 관광(觀光)이다
‘좋은 데 구경하는 것’은 영어로 ‘Sightseeing’이다. 우리는 ‘관광’이라 한다.

관경(觀景), 관풍(觀風)이라거나, ‘유커’ 처럼 ‘나그네 려’를 써서 여관(旅觀)이라고 하든지, 행관(行觀) 정도로 쓰는 것이 더 타당해 보이는데 굳이 ‘빛 광’자를 써서 관광(觀光)이라고 한 이유는 뭘까. 빛을 본다?

풍경ㆍ명소ㆍ풍속 여행이라는 뜻을 표현하기엔 다소 거리가 있어 보인다.



관광은 ’압권(壓卷)‘과 동전의 양면 같은 것이다. 이건 또 무슨 소리인가. 압권은 글자 그대로 풀면 ‘책을 누른다’는 뜻이다. 우리는 가장 뛰어난 것, 수작(秀作)을 말할 때 ‘압권’이라 한다.

압권은 과거시험 용어이다. 시험을 치른 뒤 최종 급제자가 정해지면, 시험관리 문신들은 급제자 답안지를 제본해 임금에게 제출한다. 이 때 가장 윗쪽에 장원급제한 1등 답안지를 놓는다.

수석합격 답안지가 다른 급제자의 답안지를 누르는 모양새가 바로 ‘압권’이다.

장원급제한 사람은 임금 앞에 나아가, 왕실 가족과 최고 귀족만 가까이에서 볼 수 있는 용안(容顔:임금의 얼굴)을 보는 특권을 얻는다.

압권이니, 관광이다.

과거시험 응시생들은 친지의 배웅을 받고 서울로 향하면서 “관광하고 오겠습니다”라고 말했다.

빛은 왕을 상징한다. 빛을 본다는 것은 바로 임금을 대면하겠다는 뜻이다. 즉, ‘관광하겠다’는 것은 ‘장원급제하겠다’, ‘압권 하겠다’는 결의이다.

1년에 몇 번 치르지 않는 과거시험에서 장원급제할 확률은 로또급이지만, 모든 응시생들은 압권을 꿈꾸며 관광을 떠났다.

보름에서 한달 걸리는 한양길에서 대한민국 구석구석 절경과 풍속을 만난다. 그 아름다움이 이미 압권이었기에 ‘Sightseeing’은 ‘관광이 됐을 것이다. 관광은 희망이고 꺾이지 말아야 한다.

함영훈 선임기자/abc@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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