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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소헌왕후에게 바친 세종의 뒤늦은 사랑 노래, 국보로
[헤럴드경제=함영훈 기자] 소헌왕후(昭憲王后:1395~1446)는 상왕 이방원과 남편인 세종 이도 간 갈등 속에 정치적 음모가 난무하면서, 국모(國母)임에도 억울하게 부모를 잃고, 숱한 후궁들에 둘러싸인 채 인내하면서, 상왕에게 핍박받고 정치꾼들의 농간에 힘겨워하던 지아비를 보필한 ‘국모의 표상’이다.

슬하에 8남2녀의 많은 자녀를 두었는데, 친정아버지를 죽음으로 내 몬 무리들이 왕비 만은 살려두는 이유였다. 하지만 그의 어진 성품과 국모로서의 자태 때문에 차마 반대세력도 소헌왕후까지는 침탈하지 못했다는 설이 우세하다.

[사진설명=국보 제320호 ‘월인천강지곡 권상(月印千江之曲 卷上)’]


세종 이도가 인고의 세월을 보낸 비운의 아내 소헌왕후가 52세로 죽자, 월인천강지곡을 지어 바쳤다. 세종대왕도 아내의 살아 생전, 남편으로서는 그리 훌륭하지 못했다. 세종은 소헌왕후가 숨진 지 4년만에 승하했다.

문화재청(청장 나선화)은 3일 살아 생전 아내를 맘껏 사랑하지 못하고 죽은 뒤에야 그녀의 영전에 존경과 사랑의 뜻으로 바친 세종의 ‘월인천강지곡(月印千江之曲) 권상(卷上)’ 등 2건을 국보로 승격, 지정했다.

또 오바마 미국대통령이 반환한 ‘국새 황제지보(國璽 皇帝之寶)’와 요즘으로 치면 고시ㆍ공시수험서인 ‘협주명현십초시(夾注名賢十抄詩)’ 등 6건을 보물로 지정했다.

▶이도의 회한, “중전, 미안하오”= 국보 제320호 ‘월인천강지곡 권상(月印千江之曲 卷上)’은 한글을 창제한 세종이 아내인 소헌왕후의 공덕을 빌기 위하여 직접 지은 찬불가이다. 국모로서의 인자함를 그리고, 백성의 존경과 세종 자신의 연민을 담았다. 소헌왕후가 겪은 인고의 세월에 대한 세종의 회한도 행간에 묻어난다.

훈민정음 창제 이후 가장 빠른 시기에 지어져 활자로 간행된 점에서 창제 후 초기의 국어학 연구와 출판인쇄사를 연구하는 데 매우 중요한 문헌이다. 비록 일부만 남아 있으나 이 책이 갖는 국어학적, 출판 인쇄사적 가치가 매우 높아, 국보로 승격 지정했다.

[사진설명=국보 제48-2호 ‘평창 월정사 석조보살좌상(平昌 月精寺 石造菩薩坐像)’]


국보 제48-2호 ‘평창 월정사 석조보살좌상(平昌 月精寺 石造菩薩坐像)’은 전체적으로 양감이 강조된 모습이며, 균형 잡힌 안정된 자세와 적절한 비례를 갖추고 있다. 보관과 귀걸이, 팔찌, 가슴 영락(瓔珞, 구슬 목걸이) 장식 등 세부표현도 화려하고 섬세하다. ‘평창 월정사 팔각 구층석탑’(국보 제48호)의 남쪽 전방에 무릎을 꿇고 앉아 두 손을 가슴 앞에 모아 탑을 향해 공양을 올리는 자세를 비롯해 발굴조사 결과 탑과 공양보살상이 같은 지표면 위에 만들어졌다는 점 등을 살펴볼 때, 원래부터 탑과 공양보살상은 하나의 구성으로 만들어진 것으로 이해된다. 이와 같은 탑전(塔前) 공양보살상은 이전에는 찾기 힘든 고려 전기적 특징이며, 다른 나라에서는 볼 수 없는 우리나라만의 독창적인 도상과 구성이라는 점에서 중요한 가치와 의미를 지닌다.

[사진설명=보물 제1618-2호 ‘국새 황제지보(國璽 皇帝之寶)’]


▶오바마의 통큰 반환
= 보물 제1618-2호 ‘국새 황제지보(國璽 皇帝之寶)’, 보물 제1618-3호 ‘국새 유서지보(國璽 諭書之寶)’, 보물 제1618-4호 ‘국새 준명지보(國璽 濬明之寶)’는 한국전쟁 중 미국으로 유출된 것을 2014년 버락 오바마(Barack Obama) 미국 대통령 방한(2014.4.25.~26.) 당시 돌려받은 문화재이다.

[사진설명=보물 제1618-3호 ‘국새 유서지보(國璽 諭書之寶)’]


‘황제지보’는 고종이 1897년에 제작한 대한제국 국새이고, 1876년에 제작한 ‘유서지보’는 국왕의 명령서인 ‘유서’에 사용되었던 국새이며, 1889년에 제작한 ‘준명지보’는 세자시강원 관원의 교지에 사용되었던 국새이다.

[사진설명=보물 제1618-4호 ‘국새 준명지보(國璽 濬明之寶)’]


▶양구군, “그러게 우리가 백자의 고향이라니까요”= 보물 제1925호 ‘금강산 출토 이성계 발원 사리장엄구 일괄(金剛山 出土 李成桂 發願 舍利莊嚴具 一括)’은 태조 이성계(李成桂)가 조선을 건국하기 직전에 많은 신하와 함께 발원한 사리장엄구로서 1932년 금강산 월출봉 석함 속에서 발견된 것이다. 이 석함 안에서 사리외기(舍利外器)인 백자대발(白磁大鉢) 4개 등이 발견됐다. 이 유물 중에는 발원자와 발원 목적과 내용, 제작 장인 등 조성경위를 알 수 있는 명문이 있어 사료적 가치가 크다. 특히, 백자사리기는 기년명 고려백자라는 점과 제작자가 ‘방산 사기장 심룡(方山 砂器匠 沈竜)’이라는 도공임을 알 수 있다는 점에서 도자사에도 중요한 자료이다. 금강산 자락, 백자박물관을 두고 있는 강원도 양구가 백자의 실질적인 고향이라고 주장하는 이유이다. 

[사진설명=보물 제1925호 ‘금강산 출토 이성계 발원 사리장엄구 일괄(金剛山 出土 李成桂 發願 舍利莊嚴具 一括)’]


▶공시생들 참고서 보물로= 보물 제1926호 ‘협주명현십초시(夾注名賢十抄詩)’는 과거 시험 준비생들의 수요를 염두에 두고, 권람의 교정을 거쳐서 간행한 한국(신라)과 중국의 시인 30명의 시선집이다. 내용은 각 시인의 작품 중에서 7언 율시 각 10편씩 총 300편을 뽑아 주해(註解)를 붙인 것이다. 이 책은 경상도 밀양부에서 간행한 지방관판본으로서, 한국인이 그 대상을 선정하고 직접 주해한 최초의 한ㆍ중 시선집으로 매우 귀한 사례이자 고려 시대의 한문학과 지방 출판사 연구에도 중요한 의미가 있다. 

[사진설명=보물 제1926호 ‘협주명현십초시(夾注名賢十抄詩)’는 과거 시험 준비생들의 수험서이다.]


보물 제1927호 ‘박동형 초상 및 함(朴東亨 肖像 및 函)’은 1728년에 그려진 박동형의 ‘전신좌상본’ 및 1751년에 그려진 ‘반신상본’과 각 함(函)이다. 박동형(1695~1739)은 무신란 당시 반란 주동자 중 하나인 박필현의 포획에 결정적 역할을 담당하며 공신 반열에 올라 충주박씨 가문을 공신 가문으로 격상시킨 인물이다. 섬세한 필치에 사실적인 묘사가 돋보이는 작품이다.

abc@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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