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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폭력시대…저항과 동조의 틈에 살다
-크리스마스 캐럴
린치당한 채 죽임당한 가족을 위해
괴물이 돼야하는 우리사회의 슬픈 민낯

-해방자들
돈 없으면 사랑할 권리조차 빼앗기는 현실
부조리에 맞서는 이들의 용기 담담히 그려

-스파링
불우한 성장기 소년, 권투와 운명적 만남
세상의 폭력성에 정면승부…정공법 눈길



안전하다고 여겨온 사회신뢰시스템이 붕괴되면 개인들은 모든 상황에서 스스로 생존의 길을 찾을 수 밖에 없다. 이럴 경우 개인의 정신적, 물질적 부담이 커지고 사회적 비용도 커진다. 무엇보다 이런 속에서는 폭력과 악이 더욱 판을 친다는 사실이다. 폭력의 시대를 살아가는 생존법을 다룬 암울한 소설 세 편이 나란히 출간됐다.

‘열외인종잔혹사’ ‘반인간선언’으로 부패한 사회 구조의 현장을 느와르식으로 그려온 소설가 주원규가 이번에는 ‘크리스마스 캐럴’을 출간했다. 고요하거나 신나야할 터이지만 주원규식 캐럴은 왠지 수상하다.

소설의 첫 장면부터 요란하다. 커피숍 탁자가 뒤집어지고 흡연실 유리창이 박살난다. 얻어맞은 남자는 만신창이가 돼 널브러져 있고 난동을 부린 주인공, 주일우는 순순히 수갑을 받는다. 



사건은 몇달 전, 크리스마스에 벌어졌다. 임대아파트 지하 물탱크에서 주일우의 쌍둥이 형제 주월우의 사체가 발견된 것. 오래돼 몸이 불은 얼굴은 린치를 당한 흔적이 역력하지만 부검도 없이 화장처리되고 만다. 일우는 경찰서에서 월우의 마지막 통화기록을 알고 싶었지만 거부당하자 비정한 현실에 비정한 대응을 하기로 결심한다. 난동은 월우와의 마지막 통화에서 일진 패거리들의 목소리를 들었던 일우가 복수를 위해 선택한 수단이었다. 소년원은 또 다른 폭력을 양산해내는 폭력제조공장이다.

규율이라는 이름으로 무차별 폭력을 휘두르는 잔악무도한 교정 교사 한희상, 월우를 죽음으로 내몬, 폭력에 기생하며 폭력을 키워가는 일진 패거리, 일말의 죄의식조차 없는 냉혈한 고방천 등 폭력은 폭력을 부르고, 변종을 낳으며 더욱 잔인해져간다. 이 세계에서 살아남는 유일한 방법은 괴물이 되는 것 뿐이다.

작가는 “한국사회는 물리적이든 정신적이든 모든 국면에서 폭력에 무방비로 노출되어 있”다며, “사회라는 이름의 학교, 그 학교로부터 이탈된, 추방된 열외들이 쏟아내는 폭력의 도가니 속에서 우리들은 어느새 괴물이 되어 있는 우리 자신, 우리 사회의 실체와 조우하게 된다”고 말한다.

“이곳에서는 하루하루 나이를 먹는 것 말고는 확실한 것이 없었다. 일하고 싶어도 일자리가 없고 먹을 때보다 굶을 때가 잦았다. 곳곳에 빈둥대는 젊은이들이 상처입은 들개처럼 서로를 물어뜯으며 하루하루를 소모했다. 다압에서 아름다운 것은 언젠가 이 곳을 떠나리라는 희망, 렌막에 가서 사람답게 살아 보겠다는 꿈 뿐이었다.”(‘해방자들’에서)

김남중의 소설 ‘해방자들’의 열여덟살 지니가 살고 있는 다압은 죽음의 도시다. 굶주림과 폭력이 만연한 자기나라를 떠나 렌막에 이주하기를 손꼽아 기다려온 지니는 단 한번의 기회인 기술자격시험에 떨어져 결국 목숨건 밀입국을 단행한다. 아기 돌보는 일을 배운 지니는 브로커의 명령대로 ‘클럽 캥거루’에서 일한다. 클럽을 찾는 이들은 아기를 가질 수 없는 무자격자들이다. 그들은 비싼 술값을 내고 지니가 데려온 아기의 아빠노릇을 한다. 렌막에서는 부유층만이 가족을 꾸리고 아기를 낳을 수 있다.

사랑할 권리마저 앗아간 사회의 모습은 충격적이다. 그러나 그곳에서도 저항자들은 있다. 정부는 저항자들을 캐내 진압하려 하고 자유를 쫒던 시민들은 위기를 맞는다. 작가는 사회에 대한 날카로운 문제의식으로 폭력과 저항의 가상의 세계를 비교적 담담하게 그려내지만 섬뜩할 정도로 냉혹하다.

올해 문학동네소설상 수상작인 도선우의 ‘스파링’의 주인공 장태주는 화장실에서 태어났다. 엄마는 막 열일곱살이 된 여자아이다. 여자아이의 자해와 자살 소동으로 잠시 아기는 엄마와 지내게 되지만 결국 보육원신세를 지게된다. 초등학교에 입학한 장태주는 먹이사슬의 최하층에 위치하게 되고 아이들에게 멸시받고 괴롭힘을 당한다. 그런 장태주에게 학교 교사들이 제시한 해결책은 학교 사육장의 새와 토끼를 돌보라는 것. 가해자를 제재하는 게 아니라 피해자를 격리시키는 방식이다.

그러던 중 장태주는 애정을 쏟아 기르던 새 ‘알리’를 동급생 오재호에 의해 잃고만다. 무능력해서 남들이 노력해 얻은 것을 받아먹고 사는 주제에 자립하려는 의지도 없는 약한 것들이란 비난을 듣고 , 장태주는 세상이 자신에게 불리하게 기울어져 있다는 걸 인식하게 된다.

“어차피 이 세계에서 제대로 살아갈 수 없다면 그래, 그렇다면 제대로 살지 않으면 그만이다.”

위악과 폭력으로 맞서며 소년원에 끌려간 장태주는 소년원 담임의 지도로 권투를 배우게 된다. 모처럼 따스하고 유쾌한 시간을 보낸 장태주는 올림픽 복싱 국가대표 선발전에서 또 한번 좌절을 겪는다. 연맹 소속 선수에게 유리하게 내려지는 편파 판정 때문에 떨어진 것. 가까스로 스스로를 일으켜 세우면 무너뜨리는 사회는 장태주를 괴물로 몰아간다.

“살아가며 저돌적으로 인파이팅한 기억을 갖지 못하면, 언젠가 부딪히게 될 현실의 무게에 놀라 도망만 다니게 될 수도 있거든. 그래선 그 현실을 극복할 수도 없고 스스로를 증명할 수도 없으니까 살아가며 한 번쯤은, 모든 걸 다 걸고 정면승부를 겨뤄봐야 할 필요가 있어.”(222쪽)

이윤미 기자/meel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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