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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쉼표] 이화원에서 죽어간 미남들
중국 베이징에서 북서쪽으로 40리쯤 가면 청 말기 권력자 서태후의 휴양지 이화원이 있다.

인공호수 곤명호와 파낸 흙으로 쌓은 금수산, 집무실과 침소 등을 합쳐 여의도의 10배 정도 크기이다.

주지하다시피, 서태후는 권력욕 때문에 정적은 물론 가족까지 살해한 인물로 알려져 있다. 사실상 ‘자의’로 27세에 과부가 된 그녀이다.



이화원의 낙수당(樂壽堂)과 곤명호 가운데 떠 있는 남호도 이야기는 애처롭다. 남호도는 서태후의 침소인 낙수당에 매일 밤 수청 들러 불려가는 미소년ㆍ청년들이 강제 수용된 섬이라 미남섬으로도 불린다.

서태후는 낙수당에서 매일 미남들과 욕정을 불태웠다고 한다. 이화원이 1888년에 생겼으니 이 곳에서 서태후가 미소년ㆍ청년을 농락하기 시작한 때는 53세였다. 물론 그 이전, 황궁의 서궁에서도 비슷한 행각이 있었다고 한다.

젊어지려고, 아기한테 가야할 산모의 젖을 매일 먹었다는 얘기도 있다.

능욕 당한 젊은 미남들은 다음날 아침 죽임을 당했다. 남호도의 동료가 불려가면 죽는다는 사실을 알기에 섬에 갇힌 미남들은 씻지 않았다고 한다. 퇴출되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기 때문이다.

허황된 얘기이지만, “서태후로 인해 중국에 미남의 씨가 말랐다”, “중국 미남은 씻지 않는다”는 말이 나온 것도 이 때문이다. 지어낸 얘기이지만, 이 속설은 미소년ㆍ청년의 희생을 기반으로 한다.

농락한 미남을 죽이기 전, 서태후는 살인의 명분을 찾기 위해 한 가지 질문을 했다. “낙수당에서 무엇을 보았느냐”라고. 숱한 희생자들 아무도 원하는 답을 말하지 못했다.

정답 같지 않은 정답은 후세에 나왔다. ‘장생불로 봉황 한마리’

그랬던 서태후도 73세에 죽었다. 이 답은 길지 않은 권력을 영생으로 이으려던 서태후의 과욕을 비꼬고 있다. 함영훈 선임기자/a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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