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위기시계
실시간 뉴스
  • 영화속…역사속…그길 기억의 저편을 거닐다
“칠푼들아, 팔푼들아…는 아니다. ‘대한독립, 대한독립’이렇게 들리지 않니?”

1919년 3월10일, 전국으로 확산 일로에 있던 거리 만세 시위로 일제가 휴교령을 내리자, 이화학당 고등과 2학년생 중 유관순과 이정수 등 고향이 충남인 동기생들은 그달 13일 기차로 낙향하고 있었다.

한 친구가 반복되는 기차바퀴 소리를 들으며 바보를 칭하는 ‘칠푼들아, 팔푼들아’라고 하는 것 같다고 하자, 의지가 곧은 유관순은 ‘대한독립’을 반복하는 것 같다며 벗들과 결기를 다졌다.



앞서 유관순은 신특실, 유점선, 노예달, 서명학, 김복순, 김희자, 국현숙 등 이화학당 선후배들과 3.1 만세운동을 주도했다. 김독실 등 선생님들도 도왔다. 지금의 이화여대 담이 높았어도 여학생들은 대거 월담해 만세 시위에 가담했다.

고향으로 돌아온 유관순은 치밀한 준비를 마친 뒤 그해 4월1일 주민 수천명이 벌인 병천 아우내 독립만세 시위를 주도했고, 부모님의 사망을 현장에서 지켜보는 가운데 체포된다.

형 확정 후 서울 안산 남동쪽 자락 서대문형무소에 수감된 유관순은 옥 속에 갇혀서도 수감자 전원이 동참하는 만세운동을 주도했다. 형무소의 만세 소리가 하도 커서 금화산 너머 이대 후문과 사직동까지 들렸다고 한다. 유관순 열사는 그러나 무자비한 고문끝에 1920년 9월 28일 오전 8시20분, 만 17세 9개월의 나이로 순국한다. 오는 16일은 유 열사의 114회 생일이다.

고향친구이자 급우인 이정수는 이화여전에 진학한 뒤, 살아 남은 죄 아닌 죄를 가슴에 품고 고국을 떠나 현재 대한민국 정부의 법통을 만든 상해 임시정부에서 허드렛일을 도왔다. 유 열사가 살아있었다면 이화여전(지금의 이화여대)에 진학했을 것이다. 최순실 딸 정유라가 퇴출된 바로 그 대학이다.

안성기ㆍ차인표의 ‘한반도’=유관순 열사가 숨진 서대문형무소는 학생, 시민들의 거룩한 비폭력 평화시위의 정신이 오롯이 남아있는 곳이다. 안산자락길은 이화여대 후문, 봉원사, 서대문형무소, 독립공원, 무악재, 홍제원, 서대문구청, 연희숲속쉼터, 연세대를 아우른다. 요즘 같은때 마음 곧추세우기에 딱 좋은 길이다.

서대문형무소에서 북서쪽으로 올려다보면 나라가 누란의 위기에 있음을 알리던 봉화대가 있다. 총연장 7㎞의 길과 나무데크로 이어진 자락길을 걷다보면 메타세콰이어 등 심신을 상쾌하게 해주는 나무 숲이 무성하다.

봉화대에선 인왕산, 북한산이 한눈에 들어온다. 서대문형무소와 안산자락길은 유관순 드라마는 물론 안성기,조재현,차인표가 열연한 ‘한반도’를 비롯해 ‘밀정’, ‘흑수선’, ‘광복절특사’ 등 나라를 생각하는 영화가 많이 촬영됐다. 문체부와 관광공사는 우리에게 감동과 교훈을 선사했던 영화 촬영지를 ‘12월에 걷기 좋은 길’로 선정했다. 영화 속, 역사 속 그 길에서 나는 유관순도 되고, ‘광특’ 차승원도 되는 것이다.

▶‘최악의 하루’=서울 동네골목길관광코스 16코스 세종마을은 요즘의 ‘핫 플레이스’ 종로구에 있다. 세종마을은 인왕산 동쪽과 경복궁 사이에 있는 마을로, 요즘 유행하는 ‘그녀를 만나는 곳 100m 전’, 즉 국민 촛불 대열의 최전방이다. 영화 ‘최악의 하루’가 세종마을(서촌) 일대에서 촬영됐다.

세종대왕의 생가터, 백사 이항복의 집터가 있다. 또한, 옥계시사가 열리고 겸재 정선의 인왕제색도와 추사 김정희의 명필이 탄생한 마을이기도 하다. 근ㆍ현대에는 이중섭, 윤동주, 이상, 박노수 등이 거주하며 문화예술의 혼이 이어졌고, 현재 600여 채의 한옥과 골목, 전통시장, 소규모 갤러리, 공방 등이 어우러져 문화와 삶이 깃든 마을이다.

박근혜 후보는 청와대 가기 전 세종대왕과 독일 메르켈 총리를 본보기로 삼겠다고 했지만, 그러지 않았다. 이곳에선 3대 대통령 후보로 나섰다가 대선(1956년) 열흘 전 의문의 죽음을 당한 야당 지도자 신익희 가옥, 통의동 백송터, 창성동 한옥마을도 만날 수 있다.

▶‘변호인’=부산관광공사가 운영하는 부산 원도심 스토리투어(6개코스) 중 1코스 깡깡이길과 5코스 흰여울길은 영화 ‘변호인’, ‘친구’, ‘범죄와의 전쟁’등이 촬영된 곳이다.

‘퍼펙트게임’과 ‘친구’촬영지인 1코스 깡깡이길은 항구도시 부산 사람들의 치열하고 정감 넘치는 삶을 느낄 수 있는 곳으로, 자갈치시장, 영도다리와 조선산업이 최초로 시작된 남항 등이 있는 길이다.

5코스 흰여울길에서는 영화 ‘변호인’으로 잘 알려진 흰여울문화마을과 굽이치는 파도와 더불어 절경을 이루는 절영해안산책로를 만나게 된다. 영도의 절벽에 자리잡은 흰여울문화마을은 부산 특유의 해안마을 풍경을 간직하고 있다.

▶공동경비구역 ‘JSA’=충남 서천 금강2경 도보여행길의 종착지인 신성리갈대밭은 영화 ‘공동경비구역 JSA’ 촬영지이자 국내 4대 갈대밭 중 하나이다. 이 갈대밭은 남북병사들이 서로 알아가는 계기가 되는 배경지로 활용됐다.

이 길은 신성리갈대밭, 조류생태전시관, 철새도래지를 거치는 생태탐방로이다. 금강 자전거도로를 따라 걷게 되는데, 이 일대가 대부분 농경지이므로 먹이를 찾는 철새들의 군무를 손쉽게 볼 수 있다. 석양과 철새의 조화가 환상적이다.

칸 영화제 히로인 ‘밀양’=밀양아리랑길 1코스는 삼한시대 부터 이어지는 밀양의 역사와 함께 할 수 있는 길이 열렸다. 밀양의 문화와 만나고 밀양 시내의 대표적인 유물유적들과 눈을 맞추며 걸을 수 있는 길이다. 길 이름은 밀양아리랑에 얹었다. 영화 ‘밀양’은 비밀스런 햇빛인데 비해, 지명으로서 밀양은 ‘촘촘하고 밝게 비추는 햇살’을 뜻한다.

이 길은 밀양읍성에서 시작해 관아, 오리배선착장, 조각공원, 삼문송림, 야외공연장, 아랑각, 무봉사, 박시춘생가, 천진궁, 영남루로 이어지는 도심형 구간으로, 역사와 문화, 도심속의 자연공원을 체험할 수 있다.

밀양은 영화 ‘밀양’, ‘광해’, ‘똥개’ 등 여러 영화가 촬영된 도시이다. 영화 속에 등장하는 밀양역, ‘준피아노’ 등을 밀양아리랑길에서 만난다.

▶‘서편제’=완도군 청산도 슬로길 1코스는 한국영화 최초 100만 관객을 동원한 ‘서편제’에서 주인공 세사람이 ‘진도아리랑’을 부르며 돌담길을 걷는 명장면이 촬영된 곳이다. 봄에는 유채꽃과 청보리, 가을에는 코스모스가 길에 수놓아지며, 언덕 위에는 드라마 ‘봄의 왈츠’세트장이 그림처럼 자리 잡고 있다.

이밖에 ▷‘8월의 크리스마스’, ‘타짜’, ‘장군의 아들’ 등의 배경이 된 군산 원도심 구불길 6-1코스 ▷‘아름다운 시절’에서 동양화 같은 여백미로 시선을 사로잡았던 임실 구담마을과 장구목의 섬진강길 1코스 ▷‘건축학개론’ 촬영지인 제주 남원 일대 올레 5코스 ▷‘범죄의 재구성’, ‘고양이를 부탁해’, ‘파이란’등의 배경인 인천 월미동 일대 둘레길 12,13코스 역시 추위가 와도 박차고 일어나 걸을만한 길이다.

함영훈 여행선임기자/abc@heraldcorp.com
맞춤 정보
    당신을 위한 추천 정보
      많이 본 정보
      오늘의 인기정보
        이슈 & 토픽
          비즈 링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