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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좌파와 우파는 어떻게 태동했나
18세기 佛혁명·美독립혁명 싸고 대논쟁
“혁명은 통제불능 국민결속 붕괴할수도”
버크, 과격파 맞서 英정권 방어자 자처



최근 대선을 치룬 미국을 보는 시선이 복잡하지만 미국 정치의 본질은 보수와 진보의 길항관계로 얘기된다. 이는 미국에 국한하지 않고 자유주의 사회의 특성이기도 하다. 서로 적대적이며 분열을 조장하는 듯한 보수와 진보의 뿌리는 사실 18세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2005,6년 백악관 국내 정책보좌관을 역임한 정치사회학 박사 유벌 레빈은 ‘에드먼드 버크와 토머스 페인의 위대한 논쟁’(에코리브르)에서 보수와 진보의 탄생과 역사를 통해 정치적 맞수에 관해 서로 배울 수 있는 자리를 책에 마련했다.

1788년 8월18일, 혁명시대의 정치 대논쟁에서 가장 치열했던 두 인물이 식탁을 마주했다. 증언에 따르면, 둘은 즐겁고 화기애애했다. 주인공은 에드먼드 버크와 토머스 페인. 버크는 그날 오전 친구에게 “이제 곧 페인이라는 대단한 미국인과 함께 저녁식사를 할 예정이네.”라고 편지를 썼다. 페인은 나중에 이렇게 썼다. “미국 독립혁명에서 버크 씨의 역할을 생각하면 내가 그를인류의 벗으로 여기는 것은 자연스럽다.”

그러나 둘의 만남은 치명적이었고 수 세기에 걸친 파문의 시작이었다.

특히 프랑스혁명을 둘러싼 둘의 논쟁은 저자에 따르면 “이제껏 영어로 이뤄진 가장 중요한 이념 논쟁”으로 불린다.

프랑스혁명에 반대론을 펼친 버크의 ‘수사학의 걸작’으로 평가받는 ‘성찰’과 그에 대한 답신 형식으로 맞선 페인의 ‘인권’ 대립을 말한다. 
에드먼드 버크와 토머스 페인의 위대한 논쟁 / 유벌 레빈 지음, 조미현 옮김 / 에코리브르

프랑스 혁명 초기, 버크의 동료들인 휘그파는 프랑스인이 영국의 자유를 거울삼아 자국정부를 자유화하려 한다며 환호했지만 버크는 신중했다. 구정권의 부당성은 인정했지만 혁명가들의 격렬한 열의에 버크는 우려를 표했다. 1789년 10월, 군중이 젊은 왕비를 공격해 죽일 뻔한 폭력사태를 보면서 혁명이 통제불능일 뿐 아니라 국민결속에 필수적인 뿌리깊은 정서와 사회적 애착을 허물어뜨리는 데 열중한다고 확신했다. 그는 오래된 모든 사회 제도 및 관습을 근절하고자 하는 이론 정치의 맹습에 맞서 영국 정권의 단호한 방어자를 자처했다. 특히 버크는 과격파들에 대해, “메뚜기 대여섯 마리가 양치식물 아래서 성가시게 잘랑대는 소리로 들판을 가득 채우는 사이, 수천 마리 소 떼는 묵묵히 되새김질하며 브리티시오크나무 그늘 아래서 휴식을 취한다고 해서 시끄러운 놈들이 들판의 유일한 거주자라고 부디 상상하지 마십시오”라며 명문을 쏟아냈다.

이에 맹공에 나선 페인의 ‘인권’ 역시 위력적이었다. 페인은 구정권의 폐단에 대해서는 거의 분량을 할애하지 않고 인간의 자유에 대한 열렬한 주장을 펼쳐나갔다. 페인은 버크를 포함한 반대파의 반론은 단지 그들의 낡고 부당한 특권과 억압적인 제도가 위험에 처해 있음을 깨달은 자의 불안이라고 몰아세운다. 페인의 논리는 원칙 위에 세워진 정치였다. 잘못된 원칙 위에 세워진 정치적 조직체를 구제하는 유일한 방법은 그것을 해체하고 원점에서부터 재건하는 것이다.세습정권의 시대는 왔다가 사라졌다고 그는 주장한다.

버크와 페인은 수 세기에 걸쳐 전 지구적으로 파문을 일으켰지만 둘의 지향점은 크게 달라 보이지 않는다. 저자는 “버크와 페인은 정치가 언제나 유동적이며, 정치가의 도전 과제는 사회의 이익을 위해 변화를 다스리는 것이라는 데 의견을 같이했다.”고 평가했다. 이들의 논쟁이 오늘날 우리로 하여금 어떻게 정치적ㆍ문화적 제도를 바꿔야 하는지에 대한 궁극적 답을 제공하진 않지만 좌파와 우파가 어떻게 탄생했으며 변해왔는지 돌아보는 것만으로도 서로를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준다.

이윤미 기자/meel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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