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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출판사, 이 책!] 허균·박지원·박제가·이옥·정약용…‘조선의 파워블로거’ 참신한 문장의 맛
출판사 나이가 열다섯이 되니, 다시 손을 봐 개정판을 내는 책도 따라 늘어난다. 가을에 접어들면 다음 해에 출간할 신간 목록을 확정하는데 그때마다 책이 빼곡히 꽂힌 출판사 서가에서 먼지 앉은 책들을 돌아본다. 인간사처럼 책들도 나름의 생애가 있다. 채 피어보지도 못한 책, 굴곡 없이 평탄하게 오래오래 사는 책, 태어나 내내 별처럼 주목받는 책……. 그중 작년 이맘때 다시 선보이겠다며 꼽은 책은 ‘조선의 명문장가들’이다.

‘백탑시파’라 불리는 우리 문학사에서 가장 중요한 동인 그룹을 발굴하고, 새로운 문체로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지만 이류로 취급되던 소품문(小品文)을 복원해 어엿한 문장으로 감상할 수 있는 길을 연 안대회 교수가 10여 년의 연구 결과를 종합해 낸 책이다. ‘10여 년의 연구’, ‘종합’ 등에서 이미 눈치챘을 것이다. 맞다. 누워 잘 때 베개로 쓴다는 800쪽이 넘는 ‘벽돌책’이다. 

상투성, 낡은 사유, 천편일률, 공리공론 따위의 옛글에 대한 편견을 바꿔놓을 새롭고 파격적인 글이 가득 담겨 있어서 이 책은 태어나 2년간은 활짝 피었더랬다. 아쉽지만 벽돌책의 독자는 딱 그만큼이었다.

8년이 흘러 다시 편 이 책은 여전히 매력적이었다. 그때와는 조금 다른 각도에서.

18~19세기 낡은 사유와 전형적인 틀에 갇힌 고문(古文) 대신 낯설고 실험적인 문장을 취한 새로운 시대정신의 등장, 오랜 세월 폄훼 당한 소품문의 복원, 개성적이고 정서적이며 자신의 내면을 스스럼없이 표현하는 조선 에세이스트의 발견 등 문학사적 가치를 제치고도 다시 독자들을 사로잡을 이유가 충분했다.

소셜네트워크나 블로그에 글을 써 자신을 표현하는 많은 이들에게 참신한 레퍼런스가 될 수 있을 거란 생각에서였다. 일상의 사사로운 것, 시시콜콜하고 자질구레한 것을 다루면서도 개성적인 글, 날이 선 글, 품격 있는 글을 쓸 수는 없을까 고민하는 사람들에게 살아 있는 예문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좋은 글을 읽는 것 만한 글쓰기 공부가 없다. 그렇다면 남은 건 벽돌책의 다이어트. 스물세 명의 문장가를 다룬 ‘조선의 명문장가들’에서 작품의 품격, 참신성, 흥미를 고려해 허균, 이용휴, 박지원, 이덕무, 박제가, 이옥, 정약용 등 일곱 명을 가려 뽑아 300쪽으로 홀쭉하게 묶었다. 좋은 문장에 대한 갈급을 겨냥해 ‘문장의 품격’이라는 제목을 짓고, 현대의 에세이 같은 장르인 소품문의 특성과 독자의 필요를 살펴 ‘조선의 문장가에게 배우는 치밀하고 섬세하게 일상을 쓰는 법’이라는 부제를 달았다.

극도로 짧으면서 절제된 이용휴의 문장, 지극히 묘사적이면서도 간결한 이덕무의 문장, 비약이 심하고 희작적인 박지원의 문장, 괴상하고 기발한 이옥의 문장을 소리 내 읽어보시길 권한다. 마치 이 시대의 파워블로거처럼 형식과 내용의 제약에서 벗어나 일상에 대한 다채롭고 섬세한 글쓰기를 한 이들의 글을 통해 ‘문장의 맛’을 제대로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보너스! ‘문장의 품격’에 담긴 이야기를 저자에게 직접 듣고 싶다면 팟캐스트 〈독자적인 책수다〉에 접속해보시길. 무려 9시간 동안 저자와의 데이트가 보장된다.

휴머니스트 편집주간 황서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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