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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시간30분이 지겹다?…서곡 듣는 순간 바그네리안 될걸요”
국립오페라단 ‘로엔그린’ 단독 캐스팅…소프라노 서선영



묻지 말라면 더 묻고 싶고, 하지 말라면 더 하고 싶은 법. 호기심을 품고 진실을 마주하려는 건 인간의 본능이다. ‘판도라의 상자’를 열었다 비극을 면치 못하는 전설의 주인공이 있다. 뒤돌아보지 말라는 신의 경고에도 돌아봤다 아내를 영영 잃는 그리스신화 속 오르페우스가 있고, 같은 경고를 무시했다 소금 기둥으로 변한 성경 속 롯의 아내가 있으며, 에덴동산에서 선악과를 따먹지 말라는 경고를 어긴 아담도 비극의 진원지가 됐다.

독일 작곡가 바그너의 낭만주의 오페라 결정판 ‘로엔그린’의 엘자 역시 금기를 깬 존재다. 엘자는 자신을 구하러 하늘에서 날아온 기사 로엔그린의 존재를 묻지 말라는 경고에도 불구하고 호기심과 두려움 사이에서 갈등하다 결국 그의 존재를 묻게 된다. 기사는 엘자와의 사랑을 이루지 못하고 영원히 떠난다. 
소프라노 서선영은 무대 위에서 연기하는 것이 즐거워 오페라를 사랑한다고 했다. “연습 도중에 연출가가 제 눈빛 1mm 움직이는 것까지 잡아냈을 때, 제 욕구를 알아봐주신 거 같아 기뻤어요”라며 밝게 웃었다. 박남희 기자/banami@

16일부터 예술의전당에서 공연하는 국립오페라단 ‘로엔그린’ 엘자 역에 대해 연출가 카를로스 바그너가 “사람들의 마음을 대변하는 인물”이라 말했듯, 엘자는 진실에 목마른 이들의 대변자이다. 엘자 역의 소프라노 서선영은 “날벼락처럼 갑자기 등장한 로엔그린에 대해 사람들은 그가 연기처럼 사라질 줄 모른다고 생각하면서도 두려움에 진실을 묻어두려 한다. 하지만 엘자는 사람들이 받아들이기 싫은 진실을 물어본다. 총대 메는 사람”이라고 말했다.

한국예술종합학교 출신이자 뒤셀도르프 로버트 슈만 음대 최고 연주자 과정을 졸업한 소프라노 서선영은 2011년 차이콥스키 국제콩쿠르와 마리아 칼라스 국제콩쿠르에서 우승을 차지하면서 세계 성악계의 주목을 받았다. 스위스 바젤 국립극장 주역가수로 활동하다 2013년 ‘로엔그린’ 엘자로 데뷔해 “바이로이트의 새로운 주인공 탄생”이란 현지 언론의 극찬을 받았다.

작년 극장을 떠나 자유의 몸이 된 그는 지난 4월 국립오페라단 ‘루살카’로 국내 무대에 데뷔해 뛰어난 가창력은 물론 풍성한 연기로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당시 공연을 마친 후 관객의 반응을 실시간으로 확인했다는 그는 “더 좋은 내일을 위해 비평을 기쁜 마음으로 수용했다”며 “즉각적인 피드백을 받을 수 있는 환경이 유럽 무대와 달랐고, 그래서 더 뜻깊었다”고 말했다.

6개월여 만에 국내 관객을 다시 만나는 그는 장장 3시간 30분에 달하는 대작 ‘로엔그린’에 홀로 캐스팅됐다. 다행인 건 바젤에서도 혼자 엘자를 맡아 온몸에 두드러기가 날 정도로 혹독하게 연습했기에 이번 무대가 부담스럽지만 잘하리라는 믿음을 갖고 참여했다고 했다. “공부를 정말 많이 해야 해요. 그래도 하다 보면 푹 빠져서 벗어나질 못해요. 바그네리안(Wagnerian, 바그너팬을 지칭하는 말)의 심정이 이해되죠.”

그도 처음 바젤 극장의 제안에 난작이라 망설여지긴 했다. 하지만 무조성에 수많은 레치타티보로 구성된 ‘니벨룽의 반지’에 비해 ‘로엔그린’은 아름다운 선율로 짜여 거부감이 덜했다고 했다.

또한 이탈리아 오페라에 가까운 로맨틱한 표현을 살릴 수 있어 즐겼다. 이번 공연은 지휘자의 뛰어난 역량 덕분에 “극도로 정제된 피아니시모(매우 여리게)의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을 것”이라 전했다.

리릭 소프라노로서 다양한 레퍼토리를 쌓고 있는 그는 전속이라는 안정적인 위치를 내려놓고 탐험 길에 올랐다. 바젤 극장에서 독립한 후 유럽에서 활동하는 날이 아직 더 많지만, 절반은 고국 무대에 오르고 싶다고 했다. “다작도 중요하겠지만 제 목소리에 맞는 역할을 만나는 게 가장 중요하죠. 저를 혹사하지 않고 최상의 컨디션을 유지하는 게 관건이에요.”

아직 ‘로엔그린’으로 향하는 발걸음이 망설여진다면 서선영의 호언에 귀 기울여보는 건 어떨까. “너무 길고 지겹지 않으냐고요? 서곡이 흐르는 순간 저처럼 음악에 푹 빠지실 걸요?”

뉴스컬처=송현지 기자/song@newsculture.t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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