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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라이프칼럼] 풍자와 비판 없는 사회의 절망
이번 ‘박근혜 최순실 게이트’는 ‘국정농단’이라는 불미스런 단어를 끄집어내게 했지만, 차츰 드러나는 문화계에서 벌어진 일들은 ‘문화농단’ 역시 적지 않았음을 확인하게 만든다. 사실상 CJ의 문화산업들을 전방에서 이끌어왔고 그 성과 또한 크다고 평가되던 이미경 부회장이 어느 날 갑자기 일선에서 물러나 미국으로 떠났을 때 많은 문화계 종사자들은 의아해했던 것이 사실이다. 게다가 어느 날 갑자기 상암동 CJ E&M센터 1층에 ‘문화창조융합센터’라는 기묘한 공간이 들어섰고, CGV에서 영화가 시작하기 전 ‘국가 홍보 영상’이 흘러나왔으며, <국제시장>에서부터 <인천상륙작전> 같은 이른바 ‘국뽕’이라 불리는 영화들이 CJ에서 투자되어 만들어졌다는 것 역시 쉽게 이해하기 어려운 일들이었다. 하지만 이번 사안이 터지게 되면서 그 이해하기 어려웠던 일들이 하나씩 꿰어지고 있다. 그 이면에서 최순실 라인들이 움직였다는 것.

그런데 그 원인으로 지목되는 이유들이 우리를 더욱 절망케 한다. 지난 대선 당시 tvN 의 ‘여의도 텔레토비’라는 코너에서 박근혜 후보가 희화화됐다는 것과, <광해, 왕이 된 남자>나 <변호인> 같은 CJ에서 만든 영화가 진보적 성향을 띈 것들 때문이라는 것. 물론 그것이 진짜 주요한 이유인지는 아직 조사 결과가 더 나와 봐야 알 수 있는 일이다. 하지만 적어도 박근혜 정권이 들어선 후 의 ‘여의도 텔레토비’ 같은 시사 풍자 코너들이 사라져버렸고, CJ에서도 일련의 보수 성향의 영화들을 내놓았다는 건 분명한 사실이다.

의 원작인 미국판 을 보면 이번 미국 대선을 앞두고 후보들은 물론이고 오바마 대통령까지 대놓고 희화화하고 풍자하는 내용들이 가감 없이 방영되고 있는 걸 확인할 수 있다. 그렇다고 해도 거기에 대해 정치인들이 불편한 기색을 드러내는 경우는 거의 없다. 오히려 그렇게 풍자의 대상이 된다는 걸 하나의 관심 표현으로 받아들이는 모습이다. 이런 문화적 풍토와 비교해보면 우리네 시사 풍자코미디나 비판적인 뉴스 시사프로그램들에 대한 압력은 안타까움을 넘어서 우리 사회를 더욱 절망적으로 만드는 일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이번 게이트가 터져 나오면서 봇물처럼 시사 풍자가 코미디 프로그램에서 되살아나고 뉴스 보도에 있어서도 앞 다퉈 이번 ‘국정 농단’ 사태를 다루는 모습은 그래서 반가우면서도 씁쓸하다. 도대체 이렇게 날카로워질 수 있는 풍자와 비판들이 그동안 어떻게 침묵을 참고 있었을까. 또한 이런 작은 숨통 하나 틔워주지 못하는 현실 속에서 우리네 국민들이 느꼈을 답답함이란.

지난 12일 광화문 광장은 그런 점에서 보면 이렇게 꽉 막혀있던 숨통이 거대한 민심으로 분출된 결과라고 보인다. 결국 집회의 목적이란 목소리를 내는 것. 직접 국민들이 모여 한 목소리를 내게 된 건 결국 물 흐르듯 흘러야 할 언로들이 막혀져 점점 고이다 결국은 버티지 못하고 터져 나왔기 때문이다. 이번 게이트의 핵심 역시 소통해야 될 사람들과는 소통하지 않고 소통하지 말아야할 사람들과 내통해온 데서 야기된 일이 아닌가.

코미디를 포함한 대중문화가 갖기 마련인 ‘풍자’와 언론의 주요 기능이라고 할 수 있는 ‘비판’은 그 사회의 ‘소통의 숨통’을 틔워주는 중대한 역할을 갖고 있다. 그것을 막는다는 건 그래서 더 큰 사회의 절망을 예고하는 일이다. 풍자와 비판이 실종되고 대신 의도된 홍보만 가득한 문화는 위험하다. 그것이 이번 국정농단 사태에서 특히 그 문화농단에 주목해야 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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