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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국사회 갈등의 용광로…‘정치개혁’ 희망의 촛불로 승화하다
민노총 전국 노동자대회 병행
전농 쌀값폭락 대책호소
대학생은 대학구조조정 성토
장애인들은 차별해소 대책요구
교복부대 입시부정 분노폭발


“현재 한국 사회 내 불만의 화살의 모두 이 집회를 향해 있다”

지난 12일 민중총궐기에 100만명이 넘는 촛불 시민들이 모이자 일본 아사히TV는 그 이유에 대해 본국에 이렇게 타전했다. 제 3자의 냉철한 분석이 담긴 이 한 마디는 우리 스스로도 깨닫지 못 했던 한 가지, “왜 지금 이곳에 100만명이나 모였는가”에 대한 해답을 우리 앞에 제시했다. 
지난 12일 촛불집회는 단지 최순실 개인의 국정농단과 박근혜 정권의 무능 만을 비판하는 자리가 아니었다. 우리 사회에 누적된 모순과 갈등이 한꺼번에 표출되고 하나로 모여 이를 해결할 ‘진짜 민주주의’를 요구하는 자리였다. 이날 오전부터 시내 곳곳에서는 다양한 계층이 모여 자신의 주장을 내세웠다.

당일 거리의 분위기는 오전부터 심상치 않았다. 서울 시내 곳곳에서 11시부터 벌어진 사전집회에 이미 13만명이 넘는 인원이 모여들어 각자 이 시국을 바라보는 자신들의 목소리를 내고 있었다. 경찰이 추정한 전체 촛불집회 참가자 17만명에 육박하는 인원이었다.

서울시청광장에서는 민주노총 및 그 산하 조직원이 전국 노동자대회를 열었다. 이미 각 부문별로 별도 집회를 가지고 이곳으로 모인 조합원들은 최근 정부가 밀어부치고 있는 공공부문 저성과자퇴출제와 성과연봉제 반대의 목소리를 높였다. 특히 13일이 전태일 열사가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고 외치며 산화한 지 46년이 되는 날이었지만 여전히 노동환경의 현실이 크게 나아지지 않았다는 목소리가 높았다. 조상수 전국공공운수노조 위원장은 대회사에서 “이날 대회 참여로 박근혜 대통령 하야는 물론 노동개악과 성과퇴출제 분쇄, 철도노조 파업 승리를 이끌겠다”고 외쳤다. .

전국농민회총연맹은 숭례문 일대에서 농민대회를 열었다. 쌀 소비는 줄어드는 마당에 수입은 늘어나면서 쌀값이 폭락했다. 이같은 현실 속에 농민들에게 쌀 수매가 동결은 생존의 문제였다. 이들은 수매가 현실화를 대선 공약으로 내걸고도 이행하지 않은 박근혜 정권 영정을 매단 상여를 들쳐메고 나오기도 했다.

최순실의 딸 정유라 이화여대 부정입학의 직접적인 피해 당사자인 대학생들은 대학로 마로니에공원에서 시국대회를 열었다. 그러나 이들의 분노는 단지 최순실 일가로만 향한 것은 아니다. 최근 정부가 밀어붙이고 있는 프라임 사업과 미래라이프대학 등 대학 구조조정과 취업학원화에 대한 비판이 쏟아졌다.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는 세종문화회관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그동안 장애인 차별을 해소하기 위해 박 대통령에게 장애등급제, 부양의무제 폐지를 요구했는데 최순실에게 말했어야 했다”며 “박 대통령도 폐지시키자”고 말했다. 같은 시각 전국 여성노조 200명은 동화면세점 앞에서 여성 저임금 해결과 성차별 해소를 요구하며 박 대통령 퇴진을 외쳤다.

그러나 무엇보다 큰 불만의 목소리는 청소년으로부터 나왔다. 오후 3시 동화면세점 앞에서는 중고생 1000여명으로 구성된 ‘교복부대’가 출현했다. 수도권 일대 청소년들이 SNS를 통해 모인 것. 이들은 “정유라 입시 부정을 보며 지금까지 자신의 노력이 허무하게 느껴진다”며 “사회의 잘못됨을 바로잡는 데 내 작은 힘이나마 보태고 싶다”고 외쳤다. 자신이 살아가야 할 사회가 정의롭지 못하다는 것에 분노한 것이다.

오후 4시가 되면서 이들은 각자 자신의 주장을 적은 피켓과 최순실 국정 농단을 풍자하는 조형물을 든 채 행진을 시작했다. 목표는 서울광장과 광화문광장. 어느새 100만개의 촛불은 이들의 불만을 녹여내 국민이 주인이 되는 ‘진짜 민주주의’를 세우겠다는 ’희망’을 주조했다.

다양한 계층이 모인 민주사회에서 갈등은 나쁜 것이 아니라 자연스러운 것이다. 갈등을 조정하고 해결해 공익을 창출해야 할 권력이 갈등으로부터 눈을 돌릴 때, 최순실과 같은 사사로운 개인이 권력을 이용해 사익을 챙기게 된다는 것을 국민들은 깨달았다.

이제 “우리 민주주의가 더이상 우리를 위해 작동하지 않는다”는 깨달음은 결국 정치권에 대한 ‘정치개혁’ 요구로 이어질 것이다. 개헌 논의 역시 단순히 권력구조만 다루는 ‘원포인트’ 개헌에 그칠 수 없는 이유다. 자신의 요구를 외면하는 정치권을 심판할 힘이 있다는 것을 유권자는 지난 총선에서 똑똑히 보여줬다. 유력 대선주자와 야당 의원들, 심지어 새누리당 일부 의원까지 촛불집회 장소에 나와 이들의 목소리를 들은 것 역시 이같은 주권자의 힘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정당과 정치권이 또다시 사회적 갈등에 눈 감고 자리 다툼에만 연연한다면 국민의 분노는 정치권 전체에게 ‘불만의 겨울’을 안겨주게 될 것이다.

원호연 기자/why37@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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