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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47일간의 세계여행] 132. 페리타고 40분…바다 저편 ‘다른 풍경’ 유럽ㆍ아프리카
[헤럴드경제=강인숙 여행칼럼니스트] 탕헤르의 메디나에서는 길목의 카페마다 모로코 남자들이 앉아 민트차를 마시고 있다. 수크의 번잡함과 바글거리는 사람들 사이를 걷는 기분은 묘하게 설렌다. 이곳은 파울료 코엘료의 소설 <연금술사>의 배경이다. 양치기 산티아고가 이집트의 피라미드로 가기 위해 바다 건너편 스페인 땅 타리파에서 탕헤르로 오면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크리스털 가게에서 일하던 산티아고가 자칫 현실의 안락함에 빠져 자아의 신화를 찾는 것을 포기하고 머무를 뻔했던 도시가 바로 탕헤르다. 

3주간의 휴가로 방금 모로코에 도착했다는 프랑스인 피에르와 메디나로 나간다. 1942년 문을 열었다는 카페 바바(Cafe baba), 골목의 특이한 그림, 유대인이 살던 골목들을 기웃거린다. 거리에서 만난 모로코인이 데려간 아르간 오일(Argan oil) 파는 가게에서는, 진짜 연금술사라도 되는 것처럼 흰 가운을 입은 사람이 마술쇼 같은 퍼포먼스를 보여준다. 카펫 가게 주인은 나이 지긋한 프랑스인인 피에르가 말을 거니 좋아하는 눈치다. 고급 카펫이라 아무나 들이지도 않는다며 매장을 선뜻 열어주는 것이다. 피에르는 금방이라도 구매할 것처럼 주인과 이야기를 나눈다. 탕헤르의 메디나를 프랑스인과 돌아다니는 것은 편하기는 했다.

호스텔 옥상에서는 바다 건너 스페인땅이 보인다. 모로코를 떠나는 날이라 체크아웃 시간에 맞춰 배낭을 지고 길을 나선다. 숙소에서 처음 만난 한국인 에스는 밤기차로 마라케시로 떠날 예정이라 시간이 남고, 피에르는 해변에 가고 싶었다며 나와 함께 호스텔을 나선다. 설탕 듬뿍 넣은 민트티처럼, 메디나의 골목들도 그리울 것이다.

큰 길을 건너 메디나를 뒤로 하고 항구를 향해 걷는다. 피에르와 에스는 가벼운 차림이지만 나는 배낭을 다 짊어지고 나왔다. 항구에는 페리회사가 두 군데다. 두 회사에 페리시간을 알아보는 일은 피에르가 왔다갔다 해준다. 다음 배는 한 시에 있다. 해변에 있다가 점심이나 먹고 출발하면 그럭저럭 페리시간을 맞출 수 있을 것이다.

그들과 탕헤르의 바닷가를 걷다가 이곳의 대학생 림과 하파를 만난다. 친절하고 호기심 많은 하파와 프랑스어를 잘하는 림은 지척의 스페인에도 가 본 적이 없다. 그러면서도 모로코 사람들이 국왕을 존경하고 좋아한다고 말해준다. 2010년 이후 소위 “아랍의 봄”의 반정부 시위가 일어난 중동과 북아프리카 나라들과는 달리, 모로코에서는 시위가 없었다는 이야기를 자랑처럼 한다. 모로코의 다른 지역에서 만난 모로코 사람들도 그랬다. 모로코인들의 시선은 유럽을 향하지만 내부적으로는 폐쇄적이다. 

서민들이 가는 맛집을 소개해 달라고하니 바닷가 근처 작은 생선튀김 가게에 우리를 데려다준다. 커다란 유리진열장에 싱싱한 물고기들이 산처럼(?) 들어가 있는 가게에서 주문까지 해주고 작별인사를 한다. 나는 그들이 함께 점심을 먹으로 가는 걸로 알았는데 피에르는 단호하게 선을 긋는다. 림과 하파도 데려다만 주는 것이라며 안녕을 고한다. 한국식으로는 이해가 잘 안가는 상황이지만 프랑스인과 모로코인들의 정서가 그렇다면 할 수 없다. 게다가 나는 곧 떠나야 할 사람이라 그들을 붙잡을 수도 없다.

홉즈와 콩수프 조금, 그리고 작은 새우튀김과 엄청난 양의 생선튀김이 서빙된다. 포크나 스푼 같은 것은 없다. 셋이서 다 먹지도 못하는 신선한 생선 튀김이 100디람, 우리 돈 만원이 조금 넘는다. 남은 튀김은 당연히 두고 가는 줄 알았는데 피에르가 튀김을 챙겨 자기 가방에 넣는다.

식사를 마치고 항구의 이미그레이션으로 간다. 드디어 모로코에서 떠날 순간이다. 혼자 쓸쓸한 발걸음을 돌리게 될 거라고 생각했는데 한국인 에스와 프랑스인 피에르의 배웅까지 받으며 퇴장한다. 감사하다는 의미의 아랍어 “슈크란”이 절로 튀어나온다.

승선을 하고 보니 모로코에 오던 날이 떠오른다. 한국인들 둘과 터키아저씨를 만나 긴장을 풀 수 있었는데 지금은 혼자가 되어 다시 타리파로 간다. 페리로 40분 거리, 이편의 아프리카와 저편의 유럽은 달라도 너무 다르다.

그리하여 도착한 타리파는 스페인의 아름다운 항구도시이자 휴양지다. 길을 물어 정해둔 숙소로 찾아가는 것도 어렵지 않다. 도로에서 지나가는 차들이 나를 위해 멈추는 것이 무슨 대접이라도 받는 것 같다. 보행자 무시하고 휙휙 달려대던 모로코의 차들과 비교를 안 할 수가 없다. 콘도처럼 커다란 호스텔은 건물도 나뉘어 있는데다가 전자식 열쇠라서 덩그러니 큰 건물에서도 카운터의 직원 한 사람뿐 부딪히는 사람이 없다. 환경과 문화가 전혀 다르면서 따뜻하고 물가도 싼 나라가 이렇게 지척에 있다는 것은 스페인 사람들에게는 거의 행운이다. 

아직 본격적인 휴가철은 아니라서 관광객이 많지는 않고 계절도 여름이 아니지만 수영을 즐기거나 비키니 차림으로 선탠하는 사람들이 보인다. 고운 모래에 발을 파묻고 해변을 걸어보기도 한다. 불과 몇 시간 전 탕헤르에서는 히잡을 두른 젊은 여자와 남자가 경찰에게 잔소리 듣는 것을 목격했다. 피에르 아저씨 말이 모로코에서는 공공장소에서 남녀가 애정행위를 과하게 하면 경범죄로 처벌받을 수 있다고 한다. 같은 바다를 지척에 두고 달라도 너무나 다른 풍경들이다. 

스페인의 남쪽 끝, 유럽의 최남단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많은 사람이 찾는 곳이다. 타리파에는 로마와 무어의 유적이 남아있다더니 10세기경에 건설되었다는 구스만성(Castillo de Guzmán)이 멀리 보인다. 윈드보드를 들고 차에서 내려 우르르 달려가는 사람들도 있다. 지중해 서부 연안에 부는 강한 동풍 레반테(Levante)는 봄과 가을에 지브롤터 해협에서 가장 센 바람이 된다고 한다. 이베리아반도의 최남단인 이곳은 최고의 윈드 서핑지이기도 하다.

북유럽 사람들은 유럽의 남단 타리파의 따뜻함, 하얀 백사장, 시골스러운 소박함돠 더불어 윈드서핑을 즐기러 온다. 스페인만을 여행하며 타리파에 들렀다면 이베리아 반도의 끝, 유럽의 최남단이라며 꽤나 감상에 젖었을 텐데, 모로코여행을 마치고 돌아온 나에게 타리파는 그저 거대도시다. 돌이켜보면 “끝”은 언제나 끝이 아니었다. 끝이라 생각했던 것 너머에 무엇이 있을지, 가보지 않고는 모르는 것이다. 

호스텔 주방에 내려가 간단히 저녁을 만들어 먹으며 와이파이를 켠다. 저 바다 건너 탕헤르에 있는 에스가 카톡으로 말을 건다. 아까 남아서 싸가지고 갔던 생선튀김을 피에르아저씨가 소스까지 얹어서 요리했다며 사진을 찍어 보낸다. 에스는 오늘밤 마라케시로 떠나고 피에르는 내일 아침 라바트로 가게 될 것이다. 탕헤르 호스텔의 루프탑에서 보이는 바다를 떠올리며, 예쁜 인테리어의 타리파 호스텔 주방에서 끼니를 때운다. 같은 바다를 사이에 두고 다른 밤이 깊어간다.

정리=강문규기자mkkang@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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