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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증오집단을 세상 밖으로 꺼낸 트럼프의 폭탄선언…“도둑맞은 美 민주주의”
[헤럴드경제=문재연 기자]“우리의 민주주의를 서서히 허물고 있다” “미국 민주주의가 도둑 맞았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공화당 대선후보의 선거불복 발언에 미국사회가 홍역을 치르고 있다. 미국의 정치학자 아담 쉐보르스키는 누가 승리할 지 아무도 확신할 수 없는 선거가 대표를 선출하는 유일한 방법이라는 것에 대한 국민적인 합의가 이뤄질 때 비로소 ‘민주주의 국가’라고 말할 수 있다고 주장한 바 있다. 또한, 선거는 ‘우리 동네의 유일한 게임’(The only game in my town)이라며 미국 민주제의 적법성을 밝히기도 했다. 이런 점에서 트럼프의 선거불복 주장은 증오집단(기존 정치에 대한 반감)을 세상 밖으로 꺼내고 있을 뿐 아니라, 미국 민주주의의 근간을 흔들고 있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사진=게티이미지]

▶ 美 해묵은 ‘선거조작’ 불씨에 부채질한 트럼프= 폭로전문매체 디인셉터는 이날 “선거조작론은 공화당의 DNA 속에 뿌리박혀 있었다”고 주장했다. 실제로 트럼프의 “투표권이 없는 수백만 명이 유권자로 등록했다”라는 주장은 2008년 존 매케인 (애리조나) 상원의원이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과 대선전을 펼칠 때 제기한 주장과 유사하다.

당시 매케인 후보는 오바마의 지지조직인 에이콘(ACORN)이 “사상 최대 유권자 부정 등록을 저지르려고 하고 있으며, 이는 민주주의를 왜곡하는 것이다”라고 주장했다. 매케인은 선거가 끝난 후에도 뉴스위크와의 인터뷰에서 “공화당 지지자의 과반인 52%가 에이콘에 의해 선거가 왜곡됐다고 생각한다”라고 말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트럼프는 미국 선거가 왜곡과 조작으로 가득차있다고 ‘단언’했다는 점에서 매케인이나 다른 공화당원들의 행보와는 다르다. 공화당은 그동안 ‘선거결과에 승복한다’라는 전제 하에 유권자 등록의 조작 가능성을 제기해왔다. 공화당이 우세한 주(州) 정부들이 민주당 대선후보의 득세가 예측될 때마다 유권자 등록체계를 바꿔올 수 있었던 이유이다. 당시 공화당 주는 “선거조작이 발생할 우려”가 있다는 이유로 유권자 등록체계를 바꿨지만, 아프리카계 미국인, 히스패닉계 미국인 등 소수인종의 투표를 저지하기 위한 개정안이라는 비난을 받아왔다.

실제로 다음달 8일 치러질 대선전을 앞두고 공화당 주로 꼽히는 앨라배마, 아리조나, 인디애나, 캔자스, 미시시피, 네브라스카, 뉴햄프셔, 사우스 캐롤라이나, 텍사스 등 14개 주는 유권자 등록법의 세부내용을 개정했다. 텍사스 주의 경우 지난 2012년 학생증은 안 되지만 ‘총기 소지증’은 신분증으로 인정하는 유권자 등록체계를 마련했다.

▶‘선거 조작론’에 편승하는 백인 노동자층과 분열하는 미국 사회= 트럼프의 ‘선거조작론’이 위험하다는 평가를 받는 이유는 ‘결과 승복’의 원칙이 깨지는 순간부터 ‘모든 이들의 발언을 수용하고 토론을 통해 개인의 자유를 보장하는 정책을 구성한다’라는 미국의 민주체계에 균열이 발생하기 때문이다.

문제는 트럼프의 전술이 트럼프의 지지자들을 중심으로 통하고 있다는 것이다. 트럼프의 대선 불복 발언 기사를 다룬 폭스뉴스 채널의 기사에 트럼프 지지자들은 “정치인들은 믿을 수 없다,” “트럼프가 지는 것은 곧 미국 민주제가 썩어빠졌다는 것을 증명한다”라고 반응했다.

트럼프 지지자가 공유하고 있는 특징인 ‘분노’는 지난 2008년 미 대선의 최대 변수였던 ‘인종’과 관련돼 있다. 올해 히스패닉 유권자는 2730만 명으로 추산됐다. 2008년 2000만 명보다 크게 증가한 것이다.

특히 경합주인 플로리다와 네바다, 콜로라도 주를 중심으로 히스패닉 유권자의 비중이 증가했다. 여기에 트럼프가 히스패닉 불법체류자들을 추방하겠다거나 이민자들을 범법자 취급하는 발언을 하면서 히스패닉 유권자 등록은 2012년 대선 때보다 대폭 증가했다. 본래 트럼프는 69%를 차지하는 백인 유권자 비율을 이용해 득표를 노렸다. 하지만 최근 수세에 몰리자 트럼프의 입장에서는 ‘백인의 분노를 부추겨 이들의 유권자 등록을 부추기는 전략’보다는 상대적으로 ‘유권자 수가 감소한’ 백인 노동자층의 분노를 부추겨 미국 유권자 등록체계의 정당성 자체를 흔드는 전략을 택한 것으로 볼 수 있다. 

결국 트럼프의 선거조작 프레임으로 미국은 인종을 중심으로 한 '분열'이라는 과제를 떠안게 됐다. E.D. 로저 NYT 편집위원은 이에 “트럼프가 이기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그의 음모론에 야유를 보내는 이들과 찬사를 보내는 이들을 어떻게 조화시킬 것인 지가 문제다”라고 강조했다.  또 다른 NYT 객원편집위원 아서 브룩스은 “정치에서 설득은 기본 공리(axiom)”라면서 “두 후보들의 근본적인 문제점은 이 기본적인 공리를 이해하지 못한 모습을 그대로 드러냈다는 데 있다”라고 꼬집었다.

munja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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