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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왜 우리는 밤낮 울고불고 살아야한다든?”…
-고전각색 귀재 고선웅 연출의 연극 ‘산허구리’

1930~1940년대 연극계 큰별 함세덕 초기作
참담한 삶속의 비극원인 찾으려 몸부림

일제강점기 서해 어촌마을 가족의 삶 그대로
“이젠 무엇을 실천해야 할지 고민했으면…”


“왜 우리는 밤낮 울고불고 살아야 한다든? 왜 그런지를 나는 생각해볼 테야. 긴긴 밤 개에서 조개를 잡으며, 긴긴 낮 신작로 오가는 길에 생각해볼 테야.”

극 중 어린 사내의 대사가 한 연출가의 가슴에 꽂혔다. 대학 이후 사실주의 연극은 해본 적 없다는 고선웅 연출(48)은 희곡 ‘산허구리’속 대사 때문에 도전을 결정했다. 일제강점기, 궁핍하고 참담한 삶 속에서 비극의 원인을 찾아보려 하는 한 아이의 깨달음이 마음 한 편에 크게 다가온 것이다.

‘고전 각색의 귀재’라 불리는 고 연출은 2005년 극공작소 마방진을 창단한 이후 ‘칼로막베스’ ‘홍도’ ‘푸르른 날에’ ‘아리랑’ ‘곰의 아내’ 등으로 주목을 받았다. 지난해 ‘조씨고아, 복수의 씨앗’으로 동아연극상 연출상, 대한민국연극대상 연출상, 한국연극연출가협회 올해의 연출가상 등을 휩쓸며 현재 국내 공연계에 가장 주목받고 있다.

연극, 뮤지컬, 창극 등 장르를 넘나들며 다양한 작품을 선보여왔지만 ‘산허구리’같은 사실주의 극은 고 연출에게도 도전이었다. 각 배역과 비슷한 연배의 배우를 찾아 캐스팅해야 하고, 무대도 당시 상황과 유사하게 만들어야 하는 등 영세한 자본의 극단에서는 시도하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고 연출은 “국립극단이라는 좋은 프로덕션의 지원 덕분에 작품을 준비했다”며 “이번 작품을 위해 당시 상황에 대한 역사적 고증을 거치고, 배우들이 서해안에서 직접 조개를 주워오는 등 실제 상황과 같은 느낌을 내기 위해 힘을 썼다”고 설명했다.



‘산허구리’는 1930~1940년대 한국 연극계에 큰 족적을 남긴 극작가 함세덕(1915~1950)의 초기작이다. 함 작가가 1936년 ‘조선문학’을 통해 발표했지만, 월북 작가라는 한계 탓에 충분히 조명받지 못했다. 작품은 일제강점기 삶의 터전이자 처절한 생존의 공간이었던 서해안의 어촌 마을에 사는 한 가족의 이야기를 통해 당시 사회의 모순을 그린다. 바다에 나간 남자들은 계속 죽어 나가고, 아무리 고된 일을 반복해도 궁핍한 삶은 나아지지 않는다.

그동안 한 번도 제대로 공연된 적 없던 ‘산허구리’는 국립극단 ‘근현대 희곡의 재발견’시리즈를 통해 관객과 만나게 됐다. 앞서 유치진의 ‘토막’, 이근삼의 ‘국물 있사옵니다’, 김영수의 ‘혈맥’등을 선보인 국립극단은 근현대 희곡을 통해 한국인의 정체성을 묻고, 확인하려는 시도를 이어가고 있다. 김윤철 예술감독은 “근대 천재 희곡 작가들이 남긴 연극적 유산이 참 많은데 너무 오랫동안 외면하고 돌보지 않았다. ‘산허구리’는 상황 전개나 언어 사용, 성격 창조 등 여러 면에서 뛰어난 작품”이라고 소개했다

고 연출은 원작에 거의 손을 대지 않고 그대로 무대에 올린다. 등장인물이나 대사 속 방언 등은 변함이 없지만, 극의 결말만큼은 새로운 해석을 덧붙였다. 그는 “왜 우리가 밤낮 울고불고 살아야 하는지를 생각해보겠다는 대사에 작품의 핵심이 있다. 불행의 이유를 ‘생각’해보는 것을 넘어 과연 그 다음 어떤 것을 ‘실천’해야 할지, 관객 분들께서도 함께 고민해보셨으면 한다”는 바람을 밝혔다. 오는 31일까지 서울 서계동 백성희장민호극장.

뉴스컬처=양승희 기자/yang@newsculture.t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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