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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잇단 여진 공포의 일상화] 日 지진매뉴얼 구하고…美 알림앱 깔고
日정부 책자 보고 가구 재배치

美서 개발한 앱 스마트폰 설치

美지질학회 지진파 그래프 기웃

국내정보 불신 심화 씁쓸한 단면


포항에 사는 대학생 김재민(28) 씨는 최근 일본 정부가 발간한 ‘지진 대처 매뉴얼’<사진>을 보고 있다. 지진이 400여 차례 이상 계속돼 걱정하던 상황에 주변에서 일본 책을 적극적으로 추천했기 때문이다. 김 씨는 이 매뉴얼에 따라 최근 집안 가구배치를 다시 했다.

그는 지진 알림 애플리케이션도 일본의 한 방송사가 만든 프로그램을 사용하고 있다. 김 씨는 “한글로 쓰여 있는데다 그림 설명까지 있어 훨씬 유용했다”며 “한국은 피해 주민들에게 아직도 지진 매뉴얼을 주지 않고 있는데, 오히려 일본한테 도움을 받고 있는 느낌”이라고 했다.

5.8 규모의 역대 최강 지진에 크고 작은 여진이 계속 이어지는 상황에서 국민안전처의 지진 알림 등이 계속해 오류를 내자 시민들은 “차라리 외국 정부가 더 믿을만하다”며 자구책 마련에 나서고 있다. 가까운 일본이나 중국 지진센터에서 지진 알림을 받는가 하면, 직접 외국의 지진 대처 매뉴얼을 사는 경우도 있다. 전문가들은 지진 예보부터 대처까지 미숙한 대처를 보인 정부를 시민들이 더는 믿지 못하는 상황이 문제라고 지적했다.


앞선 김 씨의 경우처럼 지진이 발생하자 오히려 지진 대비가 철저한 일본에서 자료를 찾아 대비하겠다는 시민들이 늘어났다. 실제로 지난해 재난대비 매뉴얼인 ‘도쿄방재’를 발간한 일본 도쿄도는 최근 한국인들의 문의가 늘어나면서 비매품이던 책을 시중에 판매하기로 했다. 도쿄도청 관계자는 “원래 일본에 거주하는 외국인들에게 집집마다 방문해 지급하던 비매품이었는데 관련 문의가 늘어 의아했다”며 “최근 한국어 매뉴얼을 구매해 한국에 보내겠다는 요청이 늘어나 시중 서점을 통해 140엔에 추가 공급하고 있다”고 밝혔다.

매뉴얼 뿐만 아니라 지진 알림도 외국산 프로그램을 쓰는 경우가 늘어나고 있다. 울산에 거주하는 직장인 서모(35) 씨는 최근 미국의 한 지진연구소가 개발한 지진 알림 애플리케이션을 스마트폰에 설치했다. 지진이 발생하고 10여분 뒤에 알림이 오는 국민안전처 애플리케이션과 달리 미국 프로그램은 지진 발생 1분 만에 한국의 지진 소식을 전했다. 서 씨는 “어떻게 태평양 건너편 나라에서 지진을 더 빨리 알려주는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며 “당장 안전이 중요하기 때문에 영문 프로그램이지만 어쩔 수 없이 사용하고 있다”고 했다.

인터넷에는 미국 지질학회가 공개하는 실시간 지진파 그래프를 생중계하는 인터넷방송까지 등장했다. 해당 사이트는 지진파 관측기는 한국에 설치돼 있지만, 실시간 정보를 공유하는 미국 사이트를 이용하고 있다. 국내에서는 지진파 그래프를 실시간으로 공개하는 행위가 불법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용자들은 “지진파가 발생했는지 여부를 직접 확인할 수 있어 좋기만 하다”는 반응이다.

기상청 관계자는 “지진 관측자료를 실시간으로 공개하면 오히려 혼란만 가중할 뿐이고, 이를 공개하는 행위는 엄연히 불법”이라며 “현행법에 따라 해당 사이트에 대해 조치 통보를 내린 상태”라고 했다. 그러나 해당 인터넷 방송 운영자는 “미국 사이트를 그대로 인용한 것인데다 안전 문제가 우선이라 생각한다”며 “운영 중지 계획은 없다”고 했다.

전문가들은 강진으로 수도권까지 지진파가 느껴지면서 전 국민이 지진 공포에 빠진 상황에서 정부 대처가 미흡하자 집단적인 ‘정부 불신’으로 이어졌다는 분석을 내놨다. 김윤태 고려대 사회학과 교수는 “강진에 여진까지 이어지면서 국민들 공포는 극에 달했지만, 정부와 학계 모두 지진 대비는 부족했던 것이 사실”이라며 “이번 지진 사태 초반, 정부가 국민에게 믿음을 주지 못했기 때문에 당분간 ‘정부 불신’ 현상은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유오상 기자/osyoo@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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