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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몽마르트 집시는 사라지고 오만 파리지앵 친절해지다
환해진 미소·배려…선민의식은 오해·편견으로
여행 편의 인프라-곳곳 한글 안내문 눈에 띄고

세느강변 인공비치 1㎞엔 창조관광 마인드가…
더딘 공항철도 티켓 발매 등 일부 불편은 여전



[파리=함영훈 기자] ‘오만과 편견’이었을까. 지구촌 사람들이 파리를 동경하면서도 슬며시 볼멘소리를 내는 것은 그들의 찬란한 문화와 아름다운 라이프스타일을 보면서 느껴지는 파리지앵의 ‘선민(先民)’ 같은 이미지와 이에 대한 경계심 같은 것, 모두 이방인 마음 속에서 부질없이 제조된 허상은 아닐까.

어쨋든, ‘파리 비치’를 새로 조성한 세느강의 낭만은 말 없이 흘렀고, 에펠탑 아래 상드막스 공원은 평화로운 9월을 맞고 있었다.


8월을 보내는 날, 예술의 본고향 몽마르트 언덕 한켠에 세워진 구급차에 다리가 불편한 어느 아시아인 여행객이 누워있고, 프랑스 구급대원들은 분주히 움직이며 괜찮은지 확인한다. 달리(S.Dali)의 작업실과 멀지 않은 곳에서, 달라진 파리 풍경의 한 조각을 목도한다.

저녁이 되어 피갈거리를 걷는 동안 풍악이 울린다. ‘뽕기’가 살짝 들어간 유럽형 비트 음악이 한 레스토랑을 가득 메우고 사람들의 함성이 들린다. 8월의 마지막밤을 보내는 파리지앵과 관광객이 한 데 어우려져 춤추며 소연을 즐기고 있었던 것이다. 레스토랑 안쪽을 미소로 염탐하던 한국인 여행자는 그만 그들에게 체포된다. 옷소매를 당기며 함께 놀자고 한다. 주섬주섬 어색하게 몸을 움직이자, 나름대로 멋을 부린 40대 식당 주인 마드모아젤은 내 양손을 잡고 더욱 격한 율동을 추동한다. 작은 초대, 큰 감동이었다.

2016년 9월, 파리의 눈에 띄는 변화는 몽마르트 언덕과 노틀담 성당 등지 소매치기 집시(Gipsy)가 사라지고, 이방인을 대하는 시민들의 웃음과 미소가 늘었다는 점이다. 여행자의 편의를 배려한 인프라가 크게 늘었고, 한글 안내문이 눈에 띄게 많아졌다. 관광객 건강안전, 신변안전 요원들의 순찰도 눈에 띈다.

물론 공항철도 티켓 발매가 더딘 점, 지하철 역 구내에 대형 쓰레기차 트렁크가 방치된 점, 여전히 위험한 환락가 밤길 등은 프랑스 당국이 고쳐할 부분이지만, 이는 극히 일부분일 뿐, 대세는 ‘파리가 친절해졌다’는 것이었다.

파리 드골 공항 입국때 부터, 태권도를 소재로 한 광고판, 각종 한글 안내판, 한글 항공권 자동발매기가 반겼고, 심지어 공공 와이파이 접속 모바일 인터페이스도 예약번호를 입력하니 한글 화면으로 구현됐다.

공항철도 열차안에서 한 떠돌이가 복지단체 기부금을 요구하자, 앞좌석 프랑스인이 응하지 말도록 살며시 눈짓을 건네준다. 프랑스 사람이 남의 일에 먼저 관여해 호의를 베푸는 건 처음 본다.

외벽에 그림을 그려넣어 삭막한 느낌을 없앤 근교 공장지대를 지나 시내에 진입하자 가장 눈에 띄는 자유여행 인프라는 무료자전거 무인대여시스템 벨리브(velib)였다. 세계최고 권위의 자전거 대회 ‘투르 드 프랑스’의 본고장 답다. 30분이 되기전에 거치대가 있는 곳에 세워두면 공짜이다.

일광욕, 혼밥, 약속 장소로 활용된 피갈채플성당의 풍경은 신앙과 현실의 경계를 두지 않는 마인드로 읽혀진다. 9월을 맞는 아침이 되자 피갈 골목은 멀리 몽마르트 성당의 빛이 들면서 밝아지기 시작했다. 작은 발코니에 드리워진 꽃들이 화려한 자태로 깨어났고, 시청 위생과 직원들은 도로변 수도꼭지를 틀어 물청소를 했다. 파리사람들이 차도와 가까운 곳 테라스에서 마음놓고 식사를 즐길수 있는 것은 바로 도로와 인도 사이 턱에 붙어있는 청소용 수도꼭지 때문이다. 아울러 야근자와 교대한 대테러분대원들의 순찰도 이어졌다.



루브르박물관 건축 철학은 작지 않은 감동을 준다. 오래된 프랑스 요새의 해자(垓字:외침을 막기 위해 성 밖을 둘러 판 수로)를 리노베이션한 지하 진입로에는 “오래된 마티에르(물질)는 정신이다. 우리는 이 웅혼한 벽 앞에서 루브르의 기초를 본다. 그리고 우리는 시작한다”라고 적혀있다.

피라미드형 지상 출입구는 문명의 시원(始原)에 대한 존경심이 들어있다. 지하층엔 반대로 역피라미드 구조물이 있다. 바로 균형과 조화를 상징한다. 수많은 사람들이 찾는 곳인데도 지하 웰컴광장은 드넓다. 관광객 편의를 위해 티켓 판매대를 벽속에 들어가는 구조로 분산시키고 안내 브로셔들은 한 구석에 모아 스스로 집어가도록 했다. 루브르 스태프들은 인프라 개선을 위해 끊임없이 살피는데, 이는 비즈니스 정신이다. 최대 돈벌이가 최대 편의에서 비롯된다는 믿음이다. 이를 뒤집으면 휴머니즘이 된다.

공공부문 종사자 살만 몰락씨는 “한때 프랑스가 관광객에게 불친절하다는 설문조사가 있어, 내부적으로도 꾸준히 자정운동을 펼쳐가고 있다”면서 “혹시 여전히 먼저 다가가지 않는다면, 손님의 아이쇼핑(eye-shoping)을 방해할까봐 그러는 것으로 이해해달라”고 말했다.

집시의 구걸과 소매치기, 날치기가 사라진 몽마르트 언덕은 ‘파리 하늘 아래’, ‘예스터데이’ 등 거리악사의 음악이 흘러나오는 가운데 지구촌 사람들의 웃음과 재잘거림이 넘쳤다. 달리의 ‘구부러진 시계’ 작업장 인근엔 평지에서 몽마르뜨 언덕까지 상승하는 모노레일 정차장을 만난다. 파리 교통카드 하나로 관광지 전용 모노레일까지 이용할수 있다. 화가 들라클로와, 극작가 오스카와일드, 음악가 쇼팽, 팝 싱어송라이터 짐모리슨이 살던 곳에는 유명 레스토랑이 위인의 예술적 영감을 간직한채 영업하는 등, 그대로 보존돼 있다.

이 곳에서 한때 살다가 니스에서 숨진 가수 조르조무스타키는 은퇴 후 동네에서 빵 사러 다니고 작은 가게 공짜 공연하는 등 평범한 주민으로서 지역 공동체와 호흡했다고 한다.

몽마르트 화가에겐 자릿세 부담이 없다. 파리시청에 신청하면 순서대로 자리 사용권 준다. 투명한 행정은 경제 평화를 낳는다. 파리 행정당국은 최근 화장실 사용료를 받지 않도록 하는 조례도 만들었다.

프랑스는 문화재, 관광시설공사때 역사와 스토리, 실용성을 물고 들어간다. 이를테면 바스티유 감독 철거때 남은 돌은 콩코드 다리나 의사당 석재로 사용하는 식이다. 노틀담 성당 꼭대기에서 바깥으로 길게 목을 내민 몬스터는 다름아닌 건물 침식방지용 빗물 원거리 배출구이다. 파리시는 세느강변에 인공백사장 ‘파리비치’ 1㎞를 조성하는 창조관광 마인드를 발현하기도 했다.

작가 황석영은 과거 방북후 파리에서 2년여 살다가 베를린으로 이동한다. 그는 “파리는 자유가 만발한 꽃밭 같은 곳이라 내가 할 일이 없어 떠난다”고 말했을 정도로, 파리는 세계최고 문화의 도시이다. 마음속에 감춘 친절과 배려심을 최근 밖으로 꺼낸 파리지앵의 미소가 세계최고 문화를 더욱 돋보이게 한다. 한때 오만이라 여긴 것은 오해였음을 고백한다.

abc@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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