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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여성 일왕도 괜찮아”…日 왕위계승 논란으로 본 일본의 여성인식 변화
[헤럴드경제=문재연 기자] 요미우리(讀賣)신문은 10일 유권자를 상대로 벌인 여론조사에서 왕실과 관련된 법률인 ‘왕실전범’(皇室典範)을 개정해 여성 일왕을 인정하자는 응답자가 72%에 달했다고 보도했다. 1996년 여론조사업체 중앙조사에서의 여론조사에서 27.8%의 응답자가 여성 일왕에 찬성한 것을 고려하면 큰 변화다.

아키히토(明仁)일왕이 생전퇴위 의사를 밝힌 이후로 여성이나 여계(女系) 일왕을 인정하자는 논의가 다시 도마에 올랐다.요코다 고우이치(横田耕一) 규슈(九州)대학교 헌법학과 명예교수 등 일부 헌법학자들은 아버지에게서 아들로, 혹은 형제가 왕족혈통을 잇는 ‘남계 남자’(男系男子)를 원칙으로 하는 왕실전범이 헌법 정신에 위배된다며 개정을 촉구해왔다. 하지만 지난 2006년 아키히토의 일왕의 차남인 후미히토(文仁) 왕자와 기코(紀子)공주 사이에서 아들 히사히토(悠仁)왕자가 태어나자 여성 일왕에 대한 논의는 자연스럽게 사라졌다. 

왼쪽부터 마사코 왕세자비와 나루히토 왕세자, 아이코 공주 [사진=일본 궁내청]

왕실 남아의 수가 적다고 하더라도 일단 아들이 있으면 후계구도를 바꿀 필요가 없다는 개정할 필요가 없다는 인식 때문이다. 아베 신조(安倍 晋三) 일본 총리는 지난 2012년 월간지 문예춘추와의 인터뷰에서 “왕실 역사와 단절된 여계 일왕에는 명확하게 반대”한다고 밝히기도 했다.

여성 왕족을 둘러싼 일본 보수층의 시각은 아키히토 일왕의 장남인 나루히토(德仁) 왕세자의 아내인 마사코(雅子) 왕세자비만 봐도 알 수 있다.

마사코(雅子) 왕세자비는 본래 외교관으로, 부친에 이어 외무직에 오른 엘리트 여성이었다. 나루히토 왕세자의 끈질긴 청혼 끝에 일본 왕실에 발을 들이기로 한 그는 1993년 기자회견에서 왕세자보다 30초 더 발언했다는 이유로 비난을 받아야 했다. 일본 주간지 ‘여성 세븐’(女性セブン)에 따르면 왕실 관리기관인 일본 궁내청의 관계자는 “저하(나루히토 왕세자)는 9분 9초, 마사코는 9분 37초 발언했다”라며 불만을 표출했다. 마사코 왕세자비는 이후에도 나루히토 왕세자보다 키가 크다는 이유로도 보수층의 비난을 받았고, 남존여비 성향이 강한 왕실 가족 사이에서 적응하는 데 어려움을 겪었다. 이에 1996년 미국의 뉴스위크 지는 “황금새장 속에 들어간 공주”라는 제목의 특집기사를 통해 남존여비 성향이 강한 일본 왕실문화와 전통을 비판했다.

2004년 나루히토 왕세자가 기자회견에서 “마사코의 경력과 인격을 부정하는 움직임이 있었던 건 사실”이라고 발언해 논란이 되기도 했다. 요미우리(讀賣)신문도 이를 크게 보도하며 마사코 왕세자비와 궁내청 내 불화에 주목했다. 결국 마사코 왕세자비는 적응장애 판정까지 받고 11년 간 언론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이후 2014년 10월 궁중만찬에서 마사코 왕세자비가 무려 11년 만에 모습을 드러내자 영국 데일리 메일은 “마사코 왕세자비가 왕실 시집에서의 고독한 싸움을 극복하고 만찬에 참석했다”라고 보도했다. 주간 포스트를 비롯한 일본의 보수 매체는 “마사코 왕세자비로 인해 일본 왕실의 전통이 외신으로부터 오해를 받게 됐다”라며 “해외의 왕세자비 동정론이 마사코 왕세자비를 둘러싼 새로운 갈등을 초래한 측면도 부정할 수 없다”라고 꼬집었다.

여성 왕족을 둘러싼 일본 여론은 변하고 있다. 중앙조사에서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1996년 여성 일왕에 찬성한 응답자는 27.8%에 그쳤지만 2001년에는 55.2%를 기록해 절반을 넘어섰다. 2010년대 들어서면서 ‘여성 일왕’ 찬성률은 70%대를 꾸준히 넘고 있다. 반대한 응답자는 2001년 기준 21.4%에서 2001년 7.9%로 하락했다. 11일 요미우리가 공개한 여론조사에서 여성일왕에 반대한 응답자는 15%에 불과했다.

성차별적인 언행은 일본 사회에서 고질적인 문제 중 하나다. 지난달 도쿄도지사 선거에서 이시하라 신타로(石原 愼太郞) 전 도쿄도지사가 유일한 여성후보인 고이케 유리코(小池百合子)에 “짙은 화장을 한 여자에게 도쿄를 맡길 수 없다”라고 말했다. 같은 여성인 후쿠시마 미즈호(福島瑞穂) 사회민주당 의원은 고이케가 “겉으론 여자지만 속은 강경파 남성”라고 비난했다.

고이케 후보가 도쿄(東京)도지사 당선되자 BBC와 블룸버그 등 서구 언론은 “일본 정치권 내 여성차별을 극복했다”라고 평가했다.

munja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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