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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뇌전증환자 7중 추돌참사…“면허취득 봉쇄 vs 편견심화 곤란”
정치권 일부 법개정 추진
외국은 되레 규제 완화 움직임
인권침해등 또다른 차별 우려도



[헤럴드경제]부산 해운대에서 7중 추돌사고를 낸 김모(53) 씨가 뇌전증 판정을 받은 사실을 숨기고 운전면허 적성검사를 통과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뇌전증 환자의 운전면허 취득을 금지해야 한다는 여론이 높아지고 있다. 뇌전증 환자들과 관련 단체들은 이번 사고로 이전부터 이어져온 뇌전증에 대한 사회적 편견이 심화될까 전전긍긍하고 있다.

한국뇌전증협회 관계자는 헤럴드경제와의 통화에서 “그동안 운전면허 응시 때 뇌전증 병력을 경찰에 알려야 한다는 점을 환우들에게 누누이 강조해 왔음에도 이런 사고가 나 안타깝다”고 입을 뗐다. 그러나 이번 사고로 뇌전증 환자 전체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확산되는 것은 경계했다. 이 관계자는 “결혼이나 취업에서 배제되는 등 한센병 다음으로 사회적 편견 받아온 뇌전증 환자에 대한 편견이 심해져서는 안된다”고 강조했다.

뇌전증 환자들은 운전면허 취득은 정상적 삶에 한걸음 다가가기 위한 발판으로 인식해 왔다. 현대 사회에서 자동차 운전은 필수적 요소기 때문이다.

현재 도로교통법상 뇌전증 환자는 원칙적으로는 면허취득이 불가능하다. 다만 전문의 등으로 구성된 도로교통공단 심사위원회의 심사를 받아 운전을 하는데 이상이 없다는 판정을 받을 경우 면허 취득이 가능하다. 대한뇌전증학회에서 뇌전증 판정을 받은 이가 2년 간 발작이 없거나 수면시에만 발작했던 경우 1년 간 무발작 상태가 이어지면 운전면허 취득이 가능하다는 가이드라인을 제시한 데 힘입은 것이다. 


그러나 이번 사고 이후 이들의 면허 취득을 사실상 막으려는 움직임이 감지되고 있다. 새누리당 하태경 의원은 지난 2일 “선진국처럼 치매나 뇌전증 환자 등 중증 정신질환자의 운전면허를 정지하는 법 개정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실제 뇌전증 환자가 일반인에 비해 운전 능력이 떨어지고 사고 가능성이 높은지는 의문이라는 지적이 많다. 뇌전증은 원인이 다양하고 예후도 천차만별인 만큼 뇌전증 환자 모두가 ‘도로 위 폭탄’인 것은 아니라는 게 학계의 입장이다.

하 의원의 설명과는 달리 외국의 경우 3개월에서 2년까지 발작증세가 없을 경우 원칙적으로 면허 취득이 가능한 경우가 많다. 오히려 규제를 완화하는 방향이다. 1960년 이후 뇌전증 환자의 운전을 금지해왔던 일본은 1993년부터 3년간 발작이 없는 환자에게 운전을 허용하기 시작했고 2002년 법 개정을 통해 무발작 기간을 2년으로 단축했다.

미국 아리조나 주에서는 2000년대 초반 운전 면허 취득을 위한 무발작 기간 기준을 12개월에서 3개월로 줄였으나 뇌전증 환자의 교통사교율이 의미있게 증가하지 않았다. 벨기에 교통국이 조사한 교통운전사고 상대적 위험도에서도 뇌전증 환자의 사고 위험도는 낮게 나타났다. 상대적 위험도란 한 특성을 가진 집단이 교통 운전 사고를 야기하는 위험성을 그렇지 않은 집단과 비교한 상대적 지표다. 뇌전증 환자의 경우 ‘1.8’로 이는 25세미만 남성의 위험도 ‘7.0’이나 여성의 ‘3.2’, 심지어 76세 이상 노인의 ‘3.1’보다도 낮은 수치였다.

뇌전증 환자의 운전면허 취득을 제한하기 위해 병력정보를 무분별하게 수집하는 것 역시 차별이라는 반발이 나온다.

경찰청은 현재 6개월 이상 입원치료를 받는 정신질환자 정보에 더해 뇌전증으로 장애판정을 받은 환자 명단을 관계 기관으로부터 제공받겠다는 입장을 내놨다. 이를 통해 환자들에게 수시적성검사를 받도록 하겠다는 것. 장기적으로는 의사나 가족들이 환자가 운전이 불가능하다고 판단할 경우 경찰에 통보하도록 하거나 일정 기간 약을 처방받은 명단을 건강보험공단으로부터 수집하는 것도 고려하고 있다.

그러나 지난 2002년 경찰청이 뇌전증 환자를 포함한 정신질환자 1만3000여명의 건강정보를 건강보험공단으로부터 받아 이중 1만2800여명을 수시적성 검사대상으로 통보하자 국가인권위원회는 “운전에 문제가 없는 정신장애인들의 평등권을 침해한다”며 제지한 바 있다. 대상자들이 개인의료정보 유출 등을 이유로 반발했기 때문.

병력을 숨긴 환자에 대해 1년이하 징역 300만원 이하 벌금이라는 처벌조항이 있는 만큼 병력을 숨긴 환자에 대한 처벌을 강화해야한다는 게 협회 관계자의 설명이다. 이 관계자는 관련 법 개정 움직임에 대해 “이미 기존 가이드라인이 있는 만큼 관련법 개정도 가이드라인 내에서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원호연 기자/why37@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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