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위기시계
실시간 뉴스
  • ‘4권분립’ 국가에서 ‘전제정’으로 향한 에르도안의 14년
[헤럴드경제=문재연 기자] 군부 쿠데타를 진압한 에르도안 대통령은 20일(현지시간) 국가비상사태를 선포하고 절대왕정식 독재 권력을 손에 쥐었다. 집권에 성공한 지 14년만이다. 에르도안의 비상계엄령으로 행정, 입법, 사법, 그리고 ‘군부’가 견제와 균형을 유지했던 ‘4권 분립’의 터키 민주주의가 무너질 위기에 처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에르도안의 ‘무슬림을 위한, 무슬림에 의한, 무슬림의 경제’=

무엇보다 빛을 발한 것은 철저한 ‘이슬람주의’에 입각한 경제정책이었다. 에르도안은 2002년 총리로 집권한 이후 주류세를 인상하고 무슬림에 각종 경제혜택을 제공했다. 터키는 국민의 95%가 무슬림이다. 덕분에 에르도안은 저소득ㆍ저학력의 이슬람 유권자들로부터 지지를 받을 수 있었다. 식료품 등 생필품의 가격을 최대한 낮추는 대신 자동차 및 사치품에 과세를 한 것도 지지기반을 공고히 하는 데 도움이 됐다. 

[사진=게티이미지]

터키는 1994년 물가가 125.5% 상승하는 등 20여 년간 연평균 물가상승률이 50%를 넘었다. 2003년 총리가 된 에르도안은 화폐개혁을 단행해 기존의 100만 리라를 새 1리라로 설정했다. 에르도안 집권 이후 터키의 국내총생산(GDP)는 10년간 연 7%의 상승률을 기록하고 1인당 국민소득이 3배 이상 증가했다. 3번의 총리를 연임한 에르도안이 개헌을 통해 대통령에 당선될 수 있었던 이유는 ‘경제’였다.

▶에르도안, ‘경찰’로 ‘군부’ 견제 나서다=

경제로 지지기반을 확보한 에르도안은 경찰력을 강화해 군부를 견제하기 시작했다. 한국 근현대사에서 군부는 이따금 ‘독재’를 떠올리게 한다. 하지만 터키 군부는 터키 공화주의의 상징이었다. 오스만 제국이 붕괴될 위기 속에서 ‘개혁’을 이끈 케말 아타튀르크(아타튀르크는 ‘튀르크 민족의 아버지’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는 군인이었다. 그와 함께 술탄 왕조를 폐하고 세속주의 터키공화국을 세운 것도 젊은 장교들과 사관생도들이었다. 

[사진=게티이미지]

경찰력을 강화할 명분은 충분했다. 아나톨리아 동부 지역에서 쿠르드 족이 분리 독립운동을 벌이기 시작한 것이다. 오스만 제국의 지배를 받던 쿠르드족 3000만 명 중 터키의 지배를 받게 된 1500만 명은 터키 정부를 상대로 끊임없이 테러를 감행했다. 군대를 동원할 경우, ‘외부세력’을 격퇴한 것이 되지만 경찰을 동원하면 ‘치안활동’의 일부가 되기 때문에 에르도안은 이러한 명분으로 경찰력을 강화했다. 공교롭게도 15일 쿠데타를 제압한 핵심세력은 경찰이었다.

▶ ‘정적 제거’를 통해 ‘유일무이’한 지도자가 된 에르도안=

에르도안 대통령이 터키 민주공화국을 ‘술탄’(이슬람 세계에서 종교지배자를 일컫는 말)이 통치하는 국가로 전환시키려고 한다는 의혹은 2000년대 후반부터 제기됐다. 터키 내 세속주의자들은 에르도안이 음해세력에 맞서 강력한 리더십을 발휘하는 ‘1인자’의 모습을 연출했다고 주장해왔다. 

[사진=게티이미지]

2007년 에르도안 정부는 쿠데타 모의 혐의를 적용해 군장성에서부터 터키 각계 인사들을 검거했다. 이것이 바로 터키의 최대 쿠데타 모의사건인 ‘에르게네콘’(Ergenekon) 사건이다. 당시 터키 검찰은 ‘에르게네콘’이라는 반정부 조직이 군부를 동원해 에르도원 내각을 암살하려는 모의를 일으켰다며 피고 275명을 대대적으로 숙정했다. 이대 바시부 전 총사령관과 퇴역 장성 5명, 퇴역 대령 2명 등이 종신형을 선고받았다.

이때 일등공신이었던 페훌라흐 귈렌은 돌연 2013년 에르도안 대통령의 지시에 따라 체포당할 위기에 처했다. 당시 에르도안 내각의 주요 인사 52명에 대한 부패스캔들 세상에 알려졌는데 에르도안이 그 배후로 귈렌을 지목한 것이다. 돈세탁 및 뇌물수수 혐의를 받는 이들 중에는 에르도안 당시 총리의 3남 발랄 에르도안도 포함돼 있었다. 당시 에르도안 부자가 10억 달러(약 1조730억원) 상당의 현금을 숨기는 계획을 논의하는 녹음 파일이 유튜브에 공개되면서 파문이 확산돼 탁심 게지공원에서 대규모 시위가 발생했다. 하지만 터키 국민의 다수를 차지하는 농민과 서민층은 경제 재건에 성공한 에르도안의 손을 들어줬다. 터키 국민들은 귈렌이 “사법적인 쿠데타를 저지른 테러리스트”라는 에르도안 총리의 주장을 믿었다.

▶절대권력 얻은 에르도안, 민주주의 질서 지킬 수 있을까=

비상사태가 선포되면 대통령과 내각회의는 칙령을 시행할 권한을 갖게 된다. 터키 행정부가 발의한 칙령은 의회의 사후 승인을 필요로 하지만, 집권 정의개발당(AKP)가 터키 의회의 전체 550석 중 317석을 차지하고 있기 때문에 견제는 불가능하다.

서방국가와 국제기구들은 에르도안 정부가 독재체제로 전환하는 것을 우려하고 있다. 장마르크 에로 프랑스 외무장관은 터키가 이번 쿠데타를 “반대 세력을 침묵시키는 ‘백지수표’로 사용해서는 안 된다”며 법치를 준수할 것을 촉구했다. 자이드 라드 알후세인 유엔 인권 최고대표는 성명을 통해 “터키 정부가 인권 보호의 시계를 거꾸로 되돌리는 일이 없기를 촉구한다”고 밝혔다.

하지만 에르도안은 20일 알자지라와의 인터뷰에서 “외국이 이번 실패한 쿠데타에 관여했을 수도 있다”고 말했다. 그동안 에르도안의 측근들은 미국이 쿠데타를 묵인했거나 지원했을 수 있다고 주장해왔다.

munjae@heraldcorp.com
맞춤 정보
    당신을 위한 추천 정보
      많이 본 정보
      오늘의 인기정보
        이슈 & 토픽
          비즈 링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