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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47일간의 세계여행] 115. ‘대항해시대’ 영광 품은 곳…바스코 다 가마를 만나다
[헤럴드경제=강인숙 여행칼럼니스트] 트램이 다니는 유서 깊은 도시에서는 마음이 푸근해진다. 리스본은 특히 그렇다. 호스텔과 가까운 테주 강변의 코메르시우 광장으로 가서 28번 트램을 기다린다. 어제 같은 도미토리에서 만난 한국인, 제이와 엠과 의기투합해서 셋이 벨렝(Belen) 지구로 가기로 했다. 일요일이기 때문인지 트램을 타려는 사람들로 줄이 길다.
비록 28번 트램은 빈티지한 트램이 아니라 현대적인 트램이었고 오래 기다려서 타긴 했어도 트램을 타는 일은 언제나 즐겁다. 우리는 벨렝 지구의 제로니무스 수도원(Mosterio dos jeronimos)으로 향한다. 어디서 내릴지 묻지 않아도 대부분의 사람들이 내리는 곳이 바로 제로니무스 수도원이다.


수도원 근처에 진짜 유명한 에그타르트 가게 파스텔 데 벨렝(Pasters de Belem)이 있다. 옛날 수도원의 수녀들이 수녀복을 빳빳하게 하려고 계란 흰자를 사용하고 남은 노른자들을 모아두었다가 만들기 시작했다는 제로니무스 수도원의 에그타르트 비법을 그대로 전수했다고 한다. 워낙 유명해서 우리나라 매체에 하루에 1억 원 매출을 올리는 가게로 소개가 되었다. 그 명성 때문인지 가게에서 나온 줄이 벌써 한참이나 늘어져 있다.


일단 순서를 기다려 에그타르트를 산다. 세계 최고라는 에그타르트 시식부터 끝내고 그 맛의 원천 제로니무스 수도원으로 향한다. 입안에서 살살 녹는 그 부드러운 맛은 에그타르트가 다 거기서 거기겠지 하는 의심을 한방에 날린다. 여행 중 먹은 음식 중에 손에 꼽는 맛으로 기억될 정도다. 여섯 개를 샀으니 다시 맛 볼 기회가 있다.


탐험가 바스코 다 가마와 그를 후원한 엔히크 왕자의 업적을 기념하기 위해 지어진 제로니무스 수도원은 화려하고 섬세한 마누엘 양식의 건축으로 유명하다. 대항해시대 포르투갈의 영광은 대지진에도 끄덕 없이 그대로 간직되어 있다. 마누엘 양식은 이 수도원을 건축한 마누엘 1세 시대의 화려하고 풍부한 장식이 특징이니, 제로니무스 수도원은 마누엘 양식의 표본인 것이다.
교회 입구에는 바스코 다 가마와 시인 카몽이스가 석관 위에 누워 있다. 카몽이스라는 시인은 여행 전에는 알지 못했는데 리스본의 광장에도, 이곳에도, 로카곶에도 그 흔적이 있으니 자연스럽게 푸르투갈의 대시인임을 알게 된다. 


포르투갈의 영광이 집약된 지역이라서인지 공원이나 광장, 레스토랑 등 편의시설이 쾌적하게 조성되어 있다. 일행과 근처 공원 벤치에서 쉬다가 해변 근처 발견의 탑으로 간다. 발견의 탑은 대항해 시대를 이끈 엔히크 왕자 사후 500주년 기념비다. 바다를 열망하는 엔히크 왕자, 바스쿠 다 가마, 카몽이스 등의 인물들이 조각되어 있다. 비록 지금은 유럽의 낙후한 나라지만 이곳에 새겨진 역사는 포르투갈 사람들에게는 얼마나 가슴 뿌듯할까?


벨렝의 탑(Torre de Belen)은 ‘테주 강의 귀부인’이라 불린다고 한다. 테주강과 대서양이 만나는 곳에 역시 마누엘 양식으로 세운 곳이다. 대항해 시대에는 배를 타고 세상을 향해 떠났고, 왕이 항해에서 돌아온 사람들을 맞이하는 장소이기도 했고 근대에는 정치범의 감옥으로 사용되기도 했던 파란만장한 역사를 가진 곳이다.
다시 28번 트램에 올라 언덕을 내려온다. 트램은 다시 코메르시우 광장에 우리를 내려 준다. 리스본에 온 첫날, 로스 할머니와 이야기를 나누던 테주 강변이다. 그 옛날에는 이 강변이 무역선이 정박했다고 한다. 대항해시대의 영광이 남아있는 벨렝 지구에 다녀오니 지나치던 이 풍경 속으로도 타임머신이 돌아간다. 


아침에 호스텔 직원이 추천해준 근처의 레스토랑에서 포르투갈의 해산물 요리와 와인을 먹는다. 준비 하나도 없이 20일간의 휴가를 떠나와서 정보가 하나도 없는 엠과, 아일랜드에서 자원봉사를 마치고 이 여행 뒤에 한국으로 돌아가는 제이, 장기여행에 지쳐있는 나까지 셋 다 리스본이 여행하기 좋은 곳임은 인정하면서도 감동(?)까지는 받지 못하고 시큰둥한 상태여서 공감대가 크다. 여럿이 이야기하며 먹는 식사에 혼자였으면 엄두 내지 않았을 요리들을 먹어보는 즐거움도 더한다.


식사 후엔 맛있는 디저트를 먹겠다고 유명한 아이스크림 가게까지 일부러 찾아간다. 이 역시 혼자라면 별로 하지 않을 일이다. 에그타르트도 그렇게 한참을 줄 서서 샀는데 산티니라는 이 아이스크림가게도 기다리는 건 마찬가지다. 아이스크림 역시, 최고의 맛이다.
전망대인 산타주스타 엘리베이터에 셋 다 아직 못 올랐다고 해서 거기로 간다. 일요일이라서 가는 곳마다 줄을 서야 한다. 아무래도 줄이 너무 길다. 전망대에서 해지는 리스본의 전경을 보고 싶었지만, 수다 떨며 30분쯤 서 있다가 포기하고 만다. 나는 오늘 밤 버스를 타고 세비야로, 엠은 기차를 타고 그라나다로 떠나는데 시간이 촉박해지기 때문이다. 제이는 나보다 하루 늦은 내일 세비야로 간다고 한다. 그렇게 산타주스타 엘리베이터를 안타까운 기억으로 남긴다.


엠과 제이와 함께 했던 꿈같은 24시간은 이것으로 모두 소모되었다. 어제의 예기치 않은 만남과 오늘의 이별을 담담히 받아들인다. 다시 혼자다. 리스본 국제 버스터미널에서는 별도의 체크인이 필요하다고 해서, 창구에서 체크인을 하고 받아온 버스 플랫폼 넘버를 찾아간다.
포르투갈의 버스시스템은 스페인과는 다른 것인지, 장거리 버스지만 미리 오지는 않는다. 장기여행에도 결코 익숙해지지 못하는 장면이 바로 혼자 버스나 기차를 기다리는 이 장면이다. 방전된 전자제품처럼 기분이 가라앉는다. 걱정과 달리, 결국 버스는 제시간에 도착한다. 유럽 대륙의 서쪽 끝에서 작은 점이 되어 있는 지도 위의 나를 상상한다. 버스가 출발하자, 그 작은 점이 조금씩 움직이기 시작한다. 여행의 배터리도 다시 충전되기 시작한다.


정리=강문규기자mkkang@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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