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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일왕, 아베 개헌 저지 위해 왕위 던졌나...'전쟁 꼭두각시' 피하려
[헤럴드경제=문재연 기자]“아베의 개헌을 저지하기 위해 퇴위라는 강수를 뒀다” 아키히토(明仁) 일왕이 13일 생전 양위할 뜻을 밝혔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일본 온라인에서는 이같은 글이 떠돌았다. 일본의 온라인 매체 ‘초간 선데이’(秒間 SUNDAY) 는 “(일왕이 퇴위할 경우) 왕실전범 개정이 헌법 개정보다 우선되기 때문에 이 같은 이야기가 나온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아키히도 일왕이 ‘생전 퇴위’ 카드를 던진 속내는 아베 신조(安倍 晋三) 일본 총리의 보통국가로의 개헌을 막기 위한 초강수라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현재 일본헌법은 일왕을 단순 ‘국민 통합의 상징’으로 두고 왕실의 정치 개입을 제한하고 있기 때문에 ‘퇴위’라는 강수를 뒀다는 것이다. 아베가 이끄는 개헌 세력이 최근 참의원 선거에서 개헌발의 정족수를 채우면서 일본의 군사보유 및 무력행사를 금지하는 일본 헌법 9조에 대한 개정이 이뤄질 공산이 커졌기 때문이다.

아베로부터 일본 왕실의 실질적인 지위를 유지하기 위해 아키히토 일왕이 퇴위 의사를 밝혔다는 분석도 있다.



지난 3일 마이니치 보도에 따르면 자민당이 공개한 개헌 초안에는 현행 헌법 상 “일본 국민의 상징”인 일왕을 국가의 “원수”로 승격하는 조항이 담겨 있었다. 자민당 헌법초안에 따라 일왕을 ‘원수’로 명문화할 경우, 일왕은 기존의 의례행사만 담당하는 것이 아니라 조약 체결 등 실질으로 국가를 대표하는 권한을 갖게 된다. 얼핏보면 일왕의 권력이 강해지는 것 같지만 이는 메이지 시대를 이끈 원훈 세력이 각종 정치적 책임을 회피하기 위해 메이지 일왕의 내세웠던 수법과 동일하다. 즉, 일본 내각과 왕실 사이의 권력관계를 봤을 때 왕실의 입지는 오히려 약해지는 것이다. 더구나 자민당의 헌법 전문은 국민이 일왕을 ‘모시는’ 상하관계로 두고 있어 국민주권을 침해할 소지가 있다고 마이니치 신문은 지적했다.

아키히토 일왕과 아베 총리의 갈등은 일본 정계에서도 공공연한 사실로 알려져왔다. 패전 70주년을 맞아 아키히토 일왕은 사상 처음으로 ‘반성’을 추도문에 담았다. 반면 아베 총리는 일왕보다 하루 먼저 주어를 생략한 채 ‘반성’과 ‘사죄’가 담긴 담화문을 발표했다. 패전을 둘러싸고도 서로 다른 인식을 갖고 있는 것이다. 당시 자민당의 한 관계자는 주간 포스트(週刊ポスト)에 “같은 날 일왕과 총리가 다른 입장을 내놓게 되지 않을까 싶었다”며 총리와 일왕이 각각 다른 날 패전 70주년 담화문을 발표한 배경을 설명했다.

아키히토 일왕이 퇴위해 ‘일왕 임기제’가 마련될 경우 일본 왕실을 둘러싼 정치공학은 더욱 복잡해질 전망이다. 일왕이 퇴위하면 나루히토(德仁ㆍ56) 왕세자가 왕위를 물려받게 된다. 나루히토 왕세자는 국제연합(UN) 연설에서 일본 평화헌법을 적극 알리고 아베 내각이 “헌법을 지키는 입장에서 필요한 조언을 구하며 일에 임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고 발언한 바 있다.

문제는 그 다음이다. 나루히토의 후계를 이을 ‘왕자’는 나루히토 왕세자의 동생 후미히토(文仁)의 아들인 히사히토(悠仁ㆍ9) 밖에 없는 상황이다. 왕실전범에 따라 일본은 부계자손이 왕위를 잇기 때문이다. 후미히토는 2011년 “왕도 정년을 정해야 한다”고 주장한 왕자로, 평화헌법을 지지하면서도 일본 보수세력과 긴밀한 관계를 유지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렇기 때문에 일본 내부에서는 일본 극우세력이 나루히토 왕세자보다 후미히토 왕자를 차기 왕으로 적극 추진하고 있다는 소문이 나돌았다. 때문에 히사히토가 어린 나이에 나루히토의 뒤를 이에 일왕 자리에 오를 경우, 후미히토가 히사히토 뒤에서 일본 보수담론을 조성할 수 있다는 소문도 등장했다.

일왕의 이번 퇴위 발언이 평화헌법을 둘러싼 일본 내의 미묘한 정세와 연관됐는지는 확인되지 않았다. 일왕은 지난 2003년 전립선 암 수술을 받고 최근 행사에서 순서를 착각하는 모습을 보여 치매설에 휘말리는 등 건강이상설에 시달렸다.

하지만 궁내청 차관이 “생전 퇴위 사실은 일절 없다”고 말해 건강 상 문제가 있을 가능성이 희박해지자 일각에서는 아키히토 일왕을 둘러싼 퇴위설이 ‘정치적인 계산’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의혹을 제기했다.

한편, 로이터 통신은 14일 일본 정부 관계자의 말을 빌려 일왕이 궁내청에 “일왕인 이상 공무는 모두 수행한다. 그렇지 않으면 일왕으로서 합당하지 않다”며 건강이 좋지 않다는 이유로 공무를 줄이기 보다는 왕에서 물러나는 게 현명하다고 주장한 사실이 확인됐다고 전했다.    

munja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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