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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新 패권경쟁] 아태 ‘위협균형’시대...‘동맹’ 또 다른 패권이 되다
[헤럴드경제=문재연 기자] 동맹이 곧 패권(覇權)인 시대가 돌아왔다. 남중국해 대부분의 영유권을 주장한 중국의 주장을 인정하지 않은 국제 상설중재법정(PCA)의 판결과 함께 갈등 지역권인 아시아 태평양권의 국가들은 자국 입장에 따라 지지성명과 반대 성명을 발표했다. 역내 국가들은 타국의 성장을 ‘위협’으로 인식하고 각자의 이익에 따라 동맹구도를 짜기 시작했다. 바야흐로 아태(亞太) ‘위협균형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 아시아판 ‘거대한 체스판’=

국제정치학계 거물인 즈비그뉴 브레젠스키는 저서 ‘거대한 체스판’을 통해 중국과 미국을 중심으로 아시아 정세가 움직일 것이라고 예견했지만 현실은 조금 다르다. 12일 PCA 판결을 둘러싸고 역내 국가들은 각각의 이해관계를 드러내며 판세짜기에 들어갔다. 아시아 세력균형을 단순히 주요 2개국(G2)인 미국과 중국의 패권경쟁으로만 보기 어려운 이유다.

당장 PCA의 판결을 이끌어낸 국가는 필리핀이었다. 다른 남중국해 영유권 분쟁국가들도 자국의 이해관계에 따라 움직였다. 미국과 중국 중심으로 국가들이 세력화를이루고 있기보다는 필요에 따라 세력의 판세가 뒤바뀌는 형국이다.


 
[그래픽=문재연 기자]

이처럼 국가들이 강대국가의 성장 혹은 득세를 ‘위협’으로 인식하고 직접 세력균형에 개입하는 것을 ‘위협 균형’이라고 일컫는다. 위협균형론은 국제정치학자 스테판 왈트가 소개한 개념으로, 국가들의 상대국가의 국가력을 ‘위협’으로 인지하고 이를 견제하기 위해 자발적으로 견제에 나서는 것을 일컫는다. 강대국 중심의 양극체제가 아닌, 강소국들의 자발적인 세력형성이 눈에 띈다는 것이다.

12일 남중국해 영유권 분쟁권을둘러싸고 PCA 승소한 필리핀 정부는 즉각 중국과 대화할 여지를 시사하며 ‘저울질’에 들어갔다. PCA 판결이행을 강제할 수단이 없는 만큼, 남중국해를 두고 패권경쟁을 벌이고 있는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이권 챙기기에 나선 것이다.당장 베트남과 인도네이사, 말레이사 등이 PCA 판결을 지지한다고 밝혔지만, 중국과 긴밀한 경제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캄보디아는 입장을 밝힐 수 없다고 발표했다. 대만은 자국이 실효 지배하고 있는 타이핑다오가 ‘섬’이 아닌 ‘암초’라는 PCA 판결을 인정하지 않으며 중국과 협력할 것을 시사했다.

일본 정부는 PCA 판결이 나온 직후 지지성명을 발표하며 동중국해 일대 경계를 강화했다.

▶동맹ㆍ동맹ㆍ동맹…‘세력화’가 패권이다

위협균형 체제 속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동맹관계’다. 제 1차 및 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의 팽창주의 봉쇄에 나섰던 유럽 국가들이 구축한 위협균형 체계는 영국과 프랑스 등의 동맹관계가 소홀해지면서 무너졌다. 마찬가지로 전쟁을 이끌었던 삼국동맹 등이 허술해지면서 독일은 전쟁에서 참패했다.

PCA 판결로 미국은 남중국해 일대를 순찰하며 중국의 남중국해 진출을 견제하는 ‘항행의 자유’를 지속할 정당성을 확보했다. 이후 미국이 한국과 일본, 그리고 분쟁 당사국들의 군사협력을 촉구할 가능성이 높다. PCA가 판결이행 구속력을 가지고 있지 않은 만큼, 남중국해를 둘러싼 영유권 분쟁은 이제 주변국들의 지지를 얻거나 군사력으로 지역을 장악하는 방법 외에 해결될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채스 프리먼 전 미국 외교관도 PCA 판결을 놓고 “남중국해 문제가 힘으로만 해결할 수 있는 상황에 놓였다”고 말했다.

하지만 무력분쟁은 결과적으로 경제적인 손실과 장기적인 패권유지에 장애로 작용할 가능성이 높다. 특히 무역 및 금융 등 경제적 이해관계가 긴밀하게 얽혀있는 글로벌 사회에서 무력분쟁은 역내 국가들에게 부담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크다. 아태지역 국가들이 ‘내편 만들기’ 경쟁에 빠질 수 밖에 없는 이유다.

‘동맹관계’를 중심으로 한 아태지역 내 패권경쟁은 중국과 일본의 안보체계만 봐도 알 수 있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2014년 동남아와 인도양의 주요항구를 하나씩 꿰어 연결하는 ‘진주 목걸이’ 외교 전략을, 아베 신조 일본 총리는 2012년부터 미국ㆍ일본ㆍ호주ㆍ인도가 연계하는 ‘다이아몬드’ 외교 전략을 내세웠다. 역내 동맹국가가상대적으로 적거나 영향력이 미비한 중국은 남중국해에서부터 아프리카까지의 영향력 확대를, 일본은 강대국 미국과의 동맹관계를 공고히하고 지역적으로 중국을 압박할 수 있도록 역내 경제강국과 연계하는 자세를 취했던 것이다.

위협 균형을 위한 세력화(동맹화) 움직임은 PCA 판결 전후 중국과 일본의 대응을 봐도 알 수 있다. 중국은 PCA 판결 직전 60개국가가 중국의 남중국해 영유권을 인정했다고 주장했다. 대만이 자국이 실효지배 중인 타이핑다오에 대한 영유권을 인정받지 못해 PCA에 불만을 표시하자 중국 관영매체는 즉각 대만과 중국이 하나된 국가로서 남중국해 영토주권과 해양권익, 그리고 중화민족 전체의 근본이익을 수호해야 할 공동책임을 갖고 있다고 강조했다. ‘양안일치’ 논쟁에 대한 갈등을 접고 주권 담보를 위해 공조를 모색하기 시작한 것이다.

일본도 마찬가지다. 니혼게이자이(닛케이)신문은 일본 정부가 오는 15~16일 몽골에서 열리는 아시아 유럽 정상회의(ASEM)에서 중국의 국제법 준수를 촉구할 방침이라고 전했다. 나카타니 겐 일본 방위상은 동중국해 경계를 강화하고 기시다 후미오 외무상은 오는 26일 라오스에서 열리는 아세안지역안보포럼(ARF) 외교장관 회의에서 인도, 베트남, 말레이시아 등 동남아시아국가연합(ASEAN) 국가와 긴밀한 군사협력관계를 재확인할 예정이다.

1648년 베스트팔렌(웨스트팔리아)조약 이후 서구권 국가들이 겪은 주권분쟁이 약 370년이 지난 지금 아시아에서 재현되고 있다. ‘주권’이라는 개념에 사로잡힌 아시아 국가들이 자국 영향력을 강화하기 위해 모두 팀을 나눠 ‘체스판’을 짜고 있다.

한편, 한국은 사드(THAADㆍ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배치를 통해 중국과 대척점에 서는 모양새를 취했다. 남중국해 분쟁을 둘러싸고 한국은 모호한 입장을취하면서 급변하는 동북아 정세에 어느 편에 설지 선택을 강요받고 있다. 사드 배치결정에 이어 남중국해 판결로 한국은 미국과 중국 양국과 원만한 관계를 유지하기 어려운 상황에 놓였다. 어느 때보다 외교적 지략이 필요한 시점이다. 



munja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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